프로젝트 파이낸스 강의/제2강(2)
Waiver 처리하느라 바쁜 부서
2-2. Waiver 처리하느라 바쁜 부서
이처럼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는 부서이니, PF 부서로 발령받으면 ‘아, 나도 곧 글로벌 금융인이 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석을 타고 전 세계 금융중심지로 여행하고, 근사한 호텔 회의실에서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며 엑슨모빌과 같은 글로벌 회사를 상대로 치열하게 협상을 벌이고, 저녁에는 와인 한 잔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런 삶을 그릴 수도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저 또한 출장이 잦을 때 한국으로 귀국하지도 못하고 런던에서 홍콩, 다시 홍콩에서 런던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광경은 PF 부서의 단면이지, 결코 PF 부서에 근무하는 이들의 일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제가 묘사한 광경은 주로 프로젝트 금융 승인 직전의 광경이기 때문입니다.1)2)
한편, 기업금융에서는 차주가 계속해서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 결과 차입금은 지속적으로 갱신(roll-over)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장기대출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PF는 상환기간이 10년이 넘는 (일부 인프라 사업의 경우 수십 년이 넘는) 장기대출입니다. 게다가 기업금융 대비 승인 건수가 현저히 적습니다.3) 그러니 출장 다니는 삶을 PF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매일매일의 삶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시간에는 무엇을 할까요?
Waiver를 처리합니다.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PF는 금융과 실물을 각종 약정들(covenants)4)을 통해 밀접하게 연결해 놓은 그물망입니다. 그 결과 그 구성요소 중 하나라도 틀어지면 복잡한 연결망을 거쳐 다른 구성요소들이 곧바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주단은 이러한 장치를 통하여 프로젝트를 통제하며, 이러한 장치는 사업주로 하여금 기업금융 대비 높은 레버리지로 PF 차입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됩니다. 그러나 PF 계약서가 수많은 약정들로 가득하다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약정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차주가 약정을 지키지 못하면 EoD가 발생하며, EoD가 발생하면 차주는 프로젝트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합니다. 즉, 모든 사안을 대주단에게 물어보고 처리해야 합니다. EoD가 지속되는 동안 배당이 금지되는 것은 당연하구요. 최악의 경우 대주단에 의한 강제집행이 개시되는 빌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차주는 약정을 위반하기 전에 미리 대주단에게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약정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양해해 달라는 요청(waiver request)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대주단은 요청 내용을 점검하고, 차주의 요청을 수락할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차주의 원안이 수용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 과정이 바로 waiver 처리입니다.
Waiver 중에는 LNG SPA(Sales and Purchase Agreement)에 따라 일정 기간 이후(예컨대 계약 체결 5년 후 등) LNG 가격5)을 재조정하는 등 업계에서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사안을 검토6)하는 경우도 있고, 사업소재지국에서 특별하게 요구되는 사안을 처리7)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얘기한 대로 인프라 프로젝트의 경우 통상 건설기간은 3~5년, 상환기간은 최소 10년 이상입니다. 그렇다면 한 부서에서 매년 5건의 PF 여신을 승인한다고 가정하면, 15년이 지나면 15×5=75개의 프로젝트에 대하여 사후관리(waiver 처리 등)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사후관리를 잘하려면 프로젝트 내용을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프로젝트 회사의 신용등급 문제8)와 채권이나 기업금융 대비 불균등한 원리금 상환 문제 등도 있겠지만, 바로 이런 성가신(?) 문제도 있기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이 선뜻 PF를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입니다.9) 물론 안정적으로 운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프라 프로젝트의 경우, 완공을 달성하는 순간 은행 대출금을 채권(bond)으로 리파이낸싱 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합니다.10)
결과적으로 waiver 처리란 프로젝트 관리의 유연성11)에 다름 아니며, 바로 이 유연성이야말로 채권 투자자 대비 금융기관이 지니는 장점입니다. 이는 특히 수많은 waiver를 처리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 건설기간에 매우 유용하게 작동합니다.
그런데 통상 금융기관에서 일상적인 waiver 처리는 일차적으로 젊은 직원들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팀장과 책임자는 프로젝트 승인 또는 구조조정, 또는 기획업무나 마케팅 업무를 주로 담당합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직원들은 ‘부가가치 낮고, 출장 갈 일 없는‘ 혹은 배우는 것 없고 번거롭기만 한 waiver 처리만 하다 간다는 볼멘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 부분은 저도 좀 아쉽게 생각하지만, 조직 전체의 인력운용과 맞물려 있는 사안이니만큼 당장 개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업무처리와 관련된 시스템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한편, 출장을 가서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PF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긴 합니다. 대형 사업 금융지원 결정을 주니어 직원들에게 맡기는 것은 보수적인 금융기관 특성상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협상을 하다 보면 현장에서 즉시 yes or no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주들도 대주단을 회의에 초청할 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이, 혹은 경영진과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이를 요구합니다.12)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바로 팀장이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담당자입니다. 그러니 통상 팀장이 책임자와 함께 출장을 갑니다.
그러나 분명 일상적인 waiver 처리가 신규 여신 승인이나 구조조정 업무에 비해 부가가치가 떨어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저는 waiver 처리 업무에 대한 가치를 과도하게 낮게 평가하는 분위기에 대하여는 우려가 좀 있습니다.
어찌 보면 여신 실사/심사 업무는 향후 이런 waiver request가 많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이를 점검하는 작업이라고도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사업주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혹은 사업주 중 하나가 건설회사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건설관리를 잘할 수 있다고 믿어 공정이 까다로운 석유화학 프로젝트를 LSTK13)가 아닌 cost-plus 방식으로 발주하기를 희망하는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물론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도 있지만, 확률상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공사 도중 환경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터파기를 하다 고대 유물이 발견될 수도 있고, 인허가가 지연될 수도 있고, 건설물가 또는 인건비가 예상보다 높은 수준으로 상승할 수도 있고, 대형 기자재 수송 문제14)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그 결과 LSTK 방식이 아닌 건설계약을 체결한 경우 공기지연 및 초과비용(cost overrun) 발생에 대처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금융기관 직원에게 이는 해결하기 까다로운 무수한 waiver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전에 이러한 waiver를 많이 처리해 본 경험이 있는 직원은 신규 여신 실사시에 LSTK 방식으로 건설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이유를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waiver 처리는 앞서 얘기한 ‘왜냐하면‘을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준비가 잘 된 차주의 경우 waiver request 사유를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때 쉽게 yes 사인을 주지 말고 끈질기게 따져보십시오. 스스로에게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쉽게 해당 사안을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죠. PF 거래에는 이러한 검토를 도와주는 전문가/자문사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분이 이것저것 물어보면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거든요!) 게다가 기본적으로 시간은 여러분 편입니다. 여러분이 요구하는 자료를 제때/충분하게 제출하지 못하여 waiver 승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업주가 입는 피해는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사업주라면 기한 내 여러분이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밤새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글러스 케네디는 「빅 퀘스쳔」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폴 발레리는... 매일 아침 일기를 썼다. 훗날, 그는 자신이 적은 일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의 삶을 기록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미련하게 보낼 권리가 생긴다.‘
저는 이를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업주가 왜 그러한 waiver request를 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나면, 팀장이 뭐라고 하더라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권리가 생긴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1) 또는 프로젝트 구조조정 협상 초기의 장면입니다. 다만, 이때의 협상 분위기는 프로젝트 승인을 위한 실사 출장 대비 무척이나 험악할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겠죠?
2) 인수금융의 경우, 입찰서류의 일부로 금융지원 확약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긴급하게 승인이 이루어지는 경우 또는 매우 정형화된 딜의 경우에는 출장을 다닐 시간적 여유가 잘 주어지지 않습니다.
3) 어떤 직원은 3년간 근무했는데 PF 여신 승인을 한 건도 못 해보고 부서를 떠난 적도 있습니다.
4) 진술 및 보장(representations and warranties)은 차주의 과거 또는 현재와 관련된 약속이라면, 약정(covenants)은 미래와 관련된 약속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5) 우리나라가 도입하는 장기 LNG 가격은 통상 P(LNG 가격) = α + β * JCC(Japan Crude Cocktail)로 정해집니다. 여기서 상수 α는 고정비용을 충당하는 역할을 하고, β는 원유와 LNG 간 열량, 시장의 수요와 공급 등을 반영한 계수입니다. 주로 가격 재조정 협상 대상이 되는 항목은 β입니다.
6) 프로젝트 회사에게 불리하지 않은 방식으로 프로젝트 계약이 재조정될 경우 특별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대주단은 커버비율(cover ratio)을 맞추기 위해 차입금 조기상환(buy-down) 필요성 등을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7) 프로젝트가 아직 완공되지도 않았는데 사회공헌활동 비용 지출을 요청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사회공헌활동 비용 지출은 통상 당기순이익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하는 것인데, 수년간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프로젝트 회사가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업소재지국 정부가 이와 관련된 규정을 도입한 경우, 대주단은 어쩔 수 없이 이에 동의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업소재지국의 법률을 지켜야 하는 것 또한 프로젝트 회사가 지켜야 약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8) S&P 기준으로 BBB 등급 이상을 부여받기 힘듭니다. 그러나, 국내 PF의 경우 프로젝트 회사의 신용등급이 모회사 신용등급과 거의 유사하게 나옵니다. 이런 부분은 아무래도 PF의 장점인 무소구/제한소구(non/limited recourse) 성격이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작동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9) 그러므로 은행 대출금 대신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 금융약정을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들로 최소화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기관투자자들은 이러한 프로젝트 사후관리 업무를 신용평가기관이나 PF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금융기관 또는 신용평가기관 앞 위임하기도 합니다.
10) EIB 등 MDB들은 사업소재지국 자본시장 활성화 등을 위하여 이를 장려하기도 합니다.
11) 그렇지 않아도 발주처의 입장에서 볼 때 PPP 사업은 (발주처 직발주 사업 대비) 운영의 유연성이 부족합니다. (예컨대, 서비스 대금 변경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주단의 waiver 처리마저 매우 힘들게 이루어지면 PPP 사업 관리는 매우 고된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12) 이는 대주단도 사업주에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13) Lump-Sum Turn Key의 약어로, ‘정해진 가격으로, 열쇠만 돌리면 공장이 운영이 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건설계약 용어입니다.
14) 무슨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발생했던 일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정유공장에 초대형 hydrocracker(수첨분해시설) 이송을 위해 우리 건설업체가 도로까지 지어야 했던 일이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석유화학단지는 해안가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