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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nu marketing 08화

아재개그로 역풍 맞은 브랜드

마케터에겐 더 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by UNSPIRED

[좋은 유전자(gene)와 좋은 청바지(jean)]

2025년 7월, 의류 브랜드인 아메리칸 이글은 배우 시드니 스위니를 앞세운 가을 캠페인을 공개했습니다. 광고는 "Sydney Sweeney Has Great Jeans(시드니 스위니는 멋진 청바지를 입었어요 / 좋은 유전자를 가졌어요)"라는 말장난을 활용했으며, 타임스퀘어 대형 전광판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대적으로 퍼졌습니다.

YFQYIYR2HFMRUBBZRAJH4Q67RU.jpg?auth=196990eb7075807d0907b3b1b99b6e80123e725ba8c4d4f5bf7cf333b0e939a5&width=1440 좋은 유전자(genes, 청바지 jeans와 발음이 비슷한 점을 활용)를 가졌다는 카피는 우생학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시드니 스위니는 미국의 여배우인데요.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졌고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유명합니다. 전형적인 미인에 가까운 그녀가 '좋은 유전자'를 외치는 장면은 금방 논란이 되었습니다. 우생학적 코드와 나치 미학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SNS에서는 이 광고가 특정 인종의 우월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의견들이 제기됐습니다.



[이게 다 트럼프 탓이다?]

한 전문가는 이번 논란을 단순한 도덕적 분노라기보다, 트럼프 정부 이후 다양성과 포용에 대한 감수성이 사회 전반에서 후퇴한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Siegel+Gale의 마케팅 총괄 도리 가핀클은 이 광고의 불편함을 단순한 메시지의 문제가 아닌, 광고 연출 방식 자체에서 찾습니다. 카메라가 스위니의 신체 일부를 훑는 방식이나, 남성 촬영자를 의식한 듯한 시선 처리는 과거 "남성 중심 시선"의 광고 연출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입니다. 광고 영상이 공개된 이후 SNS에서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반응과 "이런 감도 못 읽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며 격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같은 영상을 두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감도와 해석이 다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부정적 키워드 자체가 리스크]

이런 논란이 매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떠나, 브랜드에 부정적 키워드가 함께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메리칸 이글은 청바지 수익금을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에 전액 기부하겠다는 선의의 취지도 밝혔지만, 논란에 금방 가려져 버렸습니다. 몇년 전, 국내에서도 배스킨라빈스가 이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는데요. 아동 모델 '엘라'를 활용한 광고가 성적 대상화 논란에 휘말리며 해당 광고는 삭제되고, 브랜드는 공식 사과했습니다. 더불어 이 광고가 방영된 CJ ENM 또한 방심위로부터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 역시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보았지만, 누군가는 '성적 뉘앙스'를 감지하며 불쾌함을 표했고, 양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습니다.

ella.JPG 배스킨 라빈스는 아동을 성적대상화 했다는 소비자 의견에 광고를 중단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깊은 감도를 요구할 것]

이처럼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단순히 제품을 파는 존재가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갖는 주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위 '캔슬 컬처(cancel culture)' 현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보다 훨씬 더 소비자는 즉각적으로 의견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죠. 대체할 수 있는 선택지도 훨씬 많고요. 때문에 브랜드가 실수하거나, 감수성을 놓치면, 소비자들은 불매 운동이나 공개적인 비판을 통해 즉각 반응합니다. 광고 리서치 기관 WARC에 따르면, 글로벌 기준으로 2022년 이후 '소비자 반발로 인해 철회된 광고'의 수는 전년 대비 42% 증가했습니다. 특히 젠더, 인종, 정체성 등의 이슈와 관련된 논란은 2021~2023년 사이에 연평균 38% 증가하며 브랜드에 실시간 대응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렇기에 브랜드가 단순히 제품력이나 가격만으로 사랑받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앞으로 훨씬 더 브랜드는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 사회적 문해력, 그리고 진정성 있는 감수성을 요구받을 것입니다.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마케터들]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은 더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최근 ‘민생쿠폰’이 제공 금액에 따라 색상이 달랐는데, "이것이 차별처럼 느껴진다"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이로 인해 전 직원이 다시 쿠폰에 스티커를 덧대는 작업을 해야 했고, 이로 인해 물리적 인력 낭비와 비용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뭐가 맞냐 틀리냐를 떠나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감수성을 점검하고 대비하는 일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관련해 도움될만한 방법들을 함께 제시합니다.

20250725104211348eoow.jpg 민생쿠폰에 스티커를 덧대는 작업 중인 공무원

점점 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팀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화적·젠더적 다양성이 확보된 팀은 사전에 리스크를 감지하고 조율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특정 성별과 나이, 배경만으로 볼 수 없는 지점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겠죠. 의도뿐 아니라 해석의 다양성까지 고려한 테스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내부 리뷰만으로 캠페인을 확정하지 않고, 다양한 시선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외부 평가나 소규모 테스트 반응을 통해 검증하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또한 문화·사회 이슈에 대한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합니다. 캠페인을 기획하는 마케터나 디자이너가 단순히 숫자나 반응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연결된 언어, 시선, 맥락을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브랜드는 단순히 좋은 제품만 만들어선 안 됩니다. 사회적 감수성을 체화한 브랜드만이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그 감수성은 사소한 이미지, 대사, 표현 하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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