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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슈어 May 11. 2021

욜로족이 욜로하는 진짜 이유

공감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ep1

  욜로(YOLO)라는 신조어가 꽤나 인기다. You Only Live Once. 한 번 사는 인생, 후회 없이 즐기자는 슬로건이 참 와 닿는다. 거기에 서핑이나 해외여행 같은 멋진 이미지가 더해지니 어디 물 건너온 새로운 선진문화 같기도 하다. 나도 질세라 욜로족을 선언하고 나의 삶을 열심히 SNS에 퍼 나른다.


  가만 보니 욜로는 참 편리한 친구다. 어딜 가져다 놔도 찰떡같이 어울리니 말이다.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욜로를 쓰면 뭐든 그럴싸해진다. 특히 돈 쓰는 게 망설여질 때는 굉장한 효과를 발휘한다. 사실 돈 쓰는 게 망설여진다는 것은 스스로를 설득할 합리적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욜로는 충분히 합리적이고도 남는다. ‘인생 뭐 있냐~! 돈 아끼다 젊은 시절 다 보낼 거냐!’ 망설이던 마음이, 또는 죄책감이 ‘욜로’ 한 방에 무장해제다. 젊음의 특권을 낭비하는 것도 태만이다. 젊은 날은 되돌아오지 않으니까. 국방에 대한 의무가 있듯 청춘에 대한 의무도 있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 돈을 아끼는 건 배신이고, 권리포기이고, 인생낭비이다.


그래! 욜로, 한 번 사는 인생 아니더냐.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렇게 합리적으로(?) 인생을 즐기는데, 마음 한 구석이 못내 찜찜하다. 흠... 뭐랄까, 이미 들켜버린 거짓말을 계속해야 하는 느낌이랄까?  이미 들킨 건 알고 있지만, 시인할 수는 없어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게 되는 궁색함이랄까? 뭐.. 굉장히 찜찜하단 뜻이다. 이 찜찜함의 정체는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욜로를 추구하다 보면 ‘절제’와 같은 가치는 다소 폄하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아끼다 뭐할래?' 왠지 욜로 앞에서는 뭔가를 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영 쿨(cool)해 보이지가 않는다. 미래를 위해 당장의 소비를 미루는 모습은 숨기고 싶을 정도다. 오히려 앞 뒤 없이 질러 버리는 것이 쿨하게 느껴진다. 구시대적인 발상에 맞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단호함 같달까? 이런 건 공유각이다.

 

  한편 내가 욜로할 땐 몰랐는데, 간혹 놀고먹으면서, 분수에도 맞지 않은 소비를 하는 주변인을 보고 있자면 저건 아니지 싶다. 하지만 그들 또한 스스로를 욜로라며 쿨하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보니 이거 약간 위험하다. 나 또한 누군가의 눈에는 분수에 맞지 않게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욜로라면서 허세만 가득한 게 어쩌면 나의 모습이 아닐까? 찜찜함의 정체를 알 것만 같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욜로를 방패 삼아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단 것을.


열심히 포장을 했지만 욜로를 벗기고 나면 드러날 민낯의 실체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이렇다. 마주하는 현실이 녹록지가 않다. 길고 지루한 취업 준비를 거쳐 어렵게 들어간 직장은 나의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더럽고 치사한 직장생활을 견뎌내다 보면 차도 사고, 내 집도 마련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평생직장은 없고, 평생 일해도 내 집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게 진짜 현실이다. 그럼 뭐하러 이렇게 더럽고 험한 꼴 견뎌가며 버틴단 말인가. 현타가 오는 순간이다. 허리띠를 졸라 매든, 느슨하게 매든 어차피 결과는 똑같을 거란 생각에 전투의지가 사라진다. ‘포기’라는 단어가 스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포기’하면 참 편해질 것 같다.


  그러던 찰나에 욜로가 마치 물 건너온 선진 가치라도 되는 양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열심히 사는 게 참 의미가 없지?’ 포기를 부추긴다. ‘한 번밖에 없는 삶인데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궁상맞게 사는 건 네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 거야'. 삶을 사랑하라면서 포기를 권유하는 모순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들린다. ‘포기’보단 ‘욜로’하는 게 낫겠다. 왠지 나만의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 같기도 하니까.


  그렇게 욜로를 선택한다. 그리고 마치 새로운 가치관의 선봉에 선 듯 주변에 목놓아 설파한다. “그건 네 인생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니까!” 목소리를 높일수록 당당해진다. 가만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미 꽤 있다.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린다. 그러나 잘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하나뿐인 인생을  ‘욜로’라 쓰면서,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진정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이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내 삶이 그렇다. 더럽고 치사해도 하나뿐인 내 인생이다. 누군가는 비웃고 하찮게 보더라도, 나만은 내 삶을 어여삐 여기고 아껴주어야 한다. 욜로는 틀리지 않았다. 틀리게 사용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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