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졸업할 때가 되자 다들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다.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고, 토익점수를 올리고,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받고... 다들 바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숨이 턱 막힌다. '저게 무슨 의미인가' 나지막이 중얼거려 본다. 저렇게 열심히 해서 취업하면, 직장상사 눈치에, 야근에, 늘어나는 뱃살에, 뭐하나 좋을 것 같지 않은 미래가 뻔히 보이는 듯했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아. 뭔가 특별한 걸 하고 싶어!”
고생을 하더라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적게 벌더라도 행복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남들 다하는 취업준비는 재껴두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막걸리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술인데 아쉽게도 평가절하되어 있었다. ‘제대로 브랜딩 한다면 승산이 있을 텐데!’ 패키지를 새로 하고, 전용 잔도 만들고, 지역별로 스토리도 만든다면...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나의 상상 속에서는 이미 막걸리가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리브랜딩 되어 있었다. 벅찬 맘으로 당시 가장 핫했던 막걸리 가게에 서빙으로 취업했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가치를 찾아, 고생을 선택한 자신이 무척 대견했다.
그렇게 졸업 후 가장 젊은 시절 2년여를 막걸리와 함께 보냈다.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은 내가 견뎌야 할 숙명이었다. 멀쩡한 대학을 졸업하고 서빙을 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부모님께 감사하다. 아들이 참 철이 없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하지 않은가? 성공했었더라면 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겠지. 결국은 막걸리 방황을 청산하고 늦게나마 취업준비를 거쳐 기업에 들어갔다. 2년여간의 방황과 1년여간의 취업준비를 거쳐 취업을 했으니 동기들보다 월등히 나이가 많은 건 당연했다. 신입이 왜 이렇게 나이가 많냐고 의아해하던 선배들의 시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취업을 하고 보니 낭비한 연차가 아깝다. 졸업 후 바로 취업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 이제야 좀 아쉬워진다. 아쉬운 마음에 그 당시를 돌이켜보는데, 막걸리에 대한 진심이 약간은 의심스럽다. '잉? 무슨 소리야? 새로운 일에 대한 갈망으로 막걸리를 선택한 당찬 젊은이 아녔어?'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솔직히 나도 속은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를 '남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이로 포지셔닝 해왔는데, 사실은 그냥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솔직히 취업이 자신 없었다. 남들처럼 열심히 준비할 자신도 없고, 그들과 경쟁해서 이길 자신도 없었다. 화려한 수상경력과 해외 교환학생, 어떻게 한 건지 대학생이 기업 인턴까지 한 친구들을 보면 난 그동안 뭐했나 싶다. 이력서에 적을 자격증이 운전면허밖에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이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게임이란 걸 느꼈다. 이기지 못할 게임이라면 그냥 판을 엎기로 한다. '야, 난 이런 거 시시해서 안 해. 내 스타일 아냐' 루저(loser)가 되느니 스스로 게임을 떠나기로 한다. 그렇게 메인 게임을 떠나 찾은 비주류 게임이 막걸리가 아녔나 싶다.
물론 막걸리에 대한 진심이 1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분야다 보니 스스로마저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었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게 가능하겠나 싶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까지도 그렇게 믿었으니까) 나를 속이고 나면 남들 속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넌 참 용기 있다. 나도 너처럼 살고 싶었다' 이렇게 주변의 공감까지 얻고 나면 완벽한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하지만 그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건 애초에 예견된 결과였다.
자신 없는 마음을 당찬 사명감으로 둔갑시키고, 스스로마저 세뇌시킨다.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 없어서 도망치는 건 공감받을 수 없으니까. 공감 없이 도망칠 수는 없기 때문에 도망칠 수 있는 합리적 이유를 찾는다. 나의 경우는 ‘새롭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비로소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주변의 공감을 받게 되면 마음이 한결 놓인다. 자신 없어서 도망친 나는 없고, 당차고 포부 있는 젊은이가 되는 것이다. 이제 마음 편하게 도망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내가 나 자신에게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에게만 집중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만약 같은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나에게 솔직한 결정이었다면 후회는 없다. 지금 내가 후회하는 것은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라도 남의 시선(공감)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