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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슈어 Jun 19. 2021

어중간한 삶을 추천합니다

공감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ep4

아이유는 좋겠다,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김연아와 아이유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 타고난 재능이 부러웠고, 재능을 잘 발휘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되었을 테니 그 심플한 인생이 부러웠다. 그에 비해 타고난 재능이 부족한 나는 이리저리 기웃거려야만 했다.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끊임없이 비교하고 고민했어야 했다. 하지만 기회도 결국 성적에 맞게 주어지니 선택도 온전히 내 몫은 아니었다.


“아이유는 좋겠다.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시샘 어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왜 신은 어떤 이에겐 어중간한 재능을 주시고, 어떤 이에겐 탁월한 재능을 주신 걸까? 어중간한 재능을 받은 입장에서 고달프게 살아야 하는 인생이 억울하기만 하다. 나도 잘하는 게 분명했다면 고민도 방황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일찍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여 어린 나이에 정상에 선 아이유와 김연아가 부럽기만 하다.


  아이유는 데뷔 전에 20번의 오디션 탈락을 경험했다고 한다. 아니! 천하의 아이유가 오디션에서 탈락을? 믿기지가 않는다. 아이유의 목소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가능한가 싶으면서, 그때의 담당자들은 지금쯤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생각을 하니 괜스레 우습고 꼬시다. 그리고 이어서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유는 포기하지 않았구나’

어린 나이의 아이유는 반복되는 탈락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어린 친구의 의연함에 생각이 깊어진다.


처음부터 완성형인 줄 알았던 아이유도 20번의 낙방을 견디던 어중간한 시절이 있었다. 반복되는 탈락에 ‘나는 재능이 없는 걸까’ 라며 포기할 법도 한데, 어린 그녀는 탈락의 고배를 의연하게 견뎌내었다. 한 두 개의 서류 광탈에도 극심한 좌절을 겪었던 나의 과거와는 대조적이다. 결국은 어중간함을 견디는 끈기가 완성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신께서 차등적으로 주신 건 재능이 아니라 끈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버티다 보면 더 나은 미래가 올까?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서 겨우 겨우 3년을 채우고 퇴사를 했었다. 퇴사의 이유는 복합적이었지만 어중간한 시간을 견딜 수 없음이 가장 컸다. 회사를 다니는 하루하루가 낭비처럼 느껴졌다. 이 곳에 3년을 있으나, 10년을 있으나 아무 의미가 없을 거란 생각에 조급함은 커져갔다. ‘버티다 보면 더 나은 미래가 올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부정적이었다. 회사에서의 어중간한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불안해져 갔다. 나는 그렇게 퇴사를 했다.


그러나 불안은 회사의 안과 밖, 상관없이 존재했다. 그러니 문제는 회사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설익은 시기, 어중간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의 태도가 진짜 문제였다. 생각해보면 사회에 나온 지 3년밖에 안 되는 초년생이 준비가 안된 것은 당연했다. 내 부서 말고 타 부서와의 이해관계, 더 나아가 산업의 생태계,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것을 누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아주 순진한 생각이었다. 나의 조급함은 남들이 시간을 들이고, 부딪혀가며 쌓은 것을 단숨에 얻고 싶다는 생떼에 지나지 않았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김연아가 완벽한 점프에 도달하기 전에 뛰었을 수많은 점프들, 그 어중간한 점프를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어중간한 시기를 기꺼이 견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의 설익음을 인정하는 것,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것, 당장은 의미 없어 보이는 고군분투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성취에 다가가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다.


성취에 대한 조급함은 어중간함을 견디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빨리 좋은 차를 타고, 넓은 집에 살고 싶었다. 일반적인 루트를 견딜 수 없었던 건 이렇게는 빨리 도달할 수 없을 거란 조바심 때문이었다. 어딘가에는 지름길이 있을 거란 생각에 한 군데 진득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빠른 길을 찾아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름에 땀을 흘려야 가을에 수확을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왜 잊고 있었던 걸까? 좋은 터를 찾아다니는 데에만 시간을 쏟다가, 내가 가진 밭에는 물주는 걸 잊은  꼴이었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


  어디선가 봤던 영화의 대사이다. 이 짧은 대사가 담고 있는 강렬한 여운 덕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내가 주목한 것은 강함의 재정의였다. 흔히들 강하고, 재능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성취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진짜 성취하는 사람은 다양한 외부 자극을 이겨내고 묵묵히 제 갈길을 가는 사람이다. 진짜 강함과 재능은 결국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있음을 깨닫는다.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재능이 없어 실패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안심이다. 신에 대한 불만을 거두기로 한다.


  만약 3년을 갓 채운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퇴사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퇴사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후회하는 것은 회사에서의 생활을 의미 없다고 여겼던 오만함이고, 이 때문에 낭비했던 매일의 일상이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가졌더라면 하루 치의 경험이 매일같이 쌓였겠지. 그렇다면 그곳이 회사 안이든, 바깥이든 관계없다. 매일같이 성취에 다가가는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오늘도 어중간함을 견디고 완성에 조금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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