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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슈어 Oct 17. 2023

나는 무능력한가, 무기력한가

공감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ep6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회사에서의 활력이 나라는 사람 자체를 좌지우지했다. 어떤 프로젝트에서 나는 능력이 있었다. 모든 일에 의욕적으로 임했고, 활력 덕분에 사람 만나는 것도, 프로젝트 진행도 모두 수월하게 했었다. 간혹 빡빡한 일정에 체력이 부치기도 했지만, 성장하고 있다는 보람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문제는 무능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는 것이다. 하는 것마다 헛발질에, 유관부서와의 소통도 수월하지 않다. 보고는 한 번에 통과되는 법이 없으며, 반복되는 미팅에 지쳐 자리에 돌아오면 고객 불만을 처리해야 될 때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나의 무능력을 탓하게 된다. '에휴~너 왜 그러냐 진짜'


 나의 무능력은 점점 스스로를 지치게 했고, 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몰골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원 지하철에 실어 나를 뿐이었다. 이런 무기력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가끔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반짝 켜질 때가 있는데, 바로 나의 무능력함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이다. 그럴 땐 눈에 불을 켜고 방어에 나서야 한다. "그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습니다", "저는 의사결정권자가 아니잖아요", "협조를 안 해주니 뭐 방도가 있나요?"


 오늘도 어찌 저찌 나의 무능력 방어전을 마치고 퇴근 지하철에 몸을 맡긴다. 다시 전원이 나간 채 무기력이 엄습해 온다. 



이 무기력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

 어디선가 재밌는 실험을 본 적이 있다. 자기 몸에 몇 배는 높게 뛸 수 있는 벼룩을 20cm가량 되는 유리병에 가두어 놓고 뚜껑을 덮는 것이다. 벼룩은 20cm보다 훨씬 높게 뛸 수 있지만 뚜껑에 가로막혀 그 이상은 뛸 수가 없게 된다. 일정 시간을 그 상태로 두었다가 뚜껑을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 이미 답을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벼룩은 뚜껑이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딱 유리병 높이까지만 뛰며 더 높게 뛰지 않는다고 한다.


 벼룩이 무기력증에라도 걸린 걸까? 뚜껑이 없는데도 더 높게 뛰지 않다니, 벼룩은 아마 본인의 높이 뛰기 능력을 탓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벼룩은 유리병을 뛰어넘을 능력이 사라진걸까? 아니면 뛰어 넘을 수 없는 환경때문에 무기력해진걸까? 난 이 실험을 통해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무기력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 말해, 무기력함은 '무능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벼룩은 유리병을 뛰어넘을 '능력'이 충분히 있다. 다만,  '뚜껑'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것이다. 벼룩의 무기력함은 '능력'과는 관계가 없고, '뚜껑'이라는 환경과 관계가 있다는 얘기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린 분도 있을 것이다.



능력이 아니라 환경을 개선해 보자

 무기력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를 자책하고, 나의 무능력을 감추는데 에너지를 쓰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그보다는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의 방향을 바꾸어 보았다. '내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환경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이 바꾸기 어려운 면도 있다. 하지만 자기 파괴적인 자책에서 벗어나고,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에 쏟는 에너지를 아끼는 면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내가 처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을 하고 대처 방법을 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의 노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내가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무기력이 생기는 것 같다.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면 내 능력이 부족한 것은 대부분 노력으로 채울 수 있었다. 오히려 그 과정 중에 자기 발전을 느끼면서 활력을 얻게 되니 '능력'과 '무기력'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혹시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을 도무지 개선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우리가 벼룩과 다른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스로 유리병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가로막는 뚜껑이 회사 거나, 관계이거나, 학교 거나, 그 무엇이든, 도저히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고 판단이 들면 과감히 문을 열고 그 곳을 벗어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나를 무기력에 빠지게 만드는 환경에 오래 있을수록 벼룩과 같이 본래 가지고 있던 능력마저도 점점 퇴화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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