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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슈어 Oct 18. 2023

경쟁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공감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ep7

난 어렸을 때 인생이 달리기라고 생각했다.

출발점과 결승점이 정해진 달리기 말이다

모두가 결승점을 향해 뛰는 경기에 

나도 역시 참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실하고 꾸준히 뛰거나

남들보다 빠르게 뛰는 사람이

결승점을 먼저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성실하거나,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경기에 이기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가 필요했다.


좀 쉬어가면 안 되나?


남들보다 뛰어나기는 쉽지 않으니,

최소한 성실하기라도 해야 했다. 


사실 저 결승점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

동기부여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이 게임에 참여하게 된 이상

중간 이상은 가야 하지 않은가. 


나에게 나태함은 죄책감이었다. 

한가로이 쉬고 있을 틈이 없다.

뭐든 해야 했다. 


내가 멈춰있으면 그만큼 뒤처진다.

다시 맘을 가다듬고 

달리기 시작한다.


눈앞의 경쟁자


고등학교 때는 다들 비슷한 수준에서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경쟁이 심했었다.

점수로 명확하게 나뉘는 순위 때문에

1,2점에도 민감해졌다.


나는 미대진학을 위해 입시미술을 했었는데,

점수만큼이나 그림 점수도 중요했다.

잘 그린 그림은 교실 벽에 붙여주곤 했는데

벽에 붙은 그림의 개수 또한 나에게는 민감한 문제였다. 


선배 누나의 그림을 떼고 그 자리에 내 그림을 붙여주면

속으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반대로 내 그림을 떼어지고 다른 학생의 그림이 걸릴 때면

의연한 척했지만 내심 질투가 생겼다

(좀 점잖게 표현하고 싶어서 '질투가 생겼다'라고만 했다)




쟤는 뭔데, 반칙을 쓰지?


그렇게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겨우 사회에 나와보니 눈앞에 경쟁자는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다.


뉴스를 보면 사회에 특권 계층이 무수히도 많다.

각종 특혜를 받고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반칙을 쓰는 것만 같았다


나랑 같이 아등바등하고 있는 상대에게는

동질감 비슷한 것도 마저도 느껴진다. 

"참... 너나 나나..."


쟤랑 내가 아무리 아등바등해 봤자 

이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우리 중 하나는 아닐 것 같다.


성실하고 뛰어난 사람이 이기는 경기인 줄 알았는데

반칙하는 사람도 이길 수 있는 게임이라니..!!

주최 측에서 강력하게 막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더 이상 달리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근데 누가 인생이 달리기래?


반칙과 편법이 난무하는 경기를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것도 불만인데,

가만 보니, 설렁설렁 뛰는 사람도 

어느새 저만치 먼저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이거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가만,,, 이거 달리기 아닌가?"


내가 철석같이 달리기라고 믿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성실하거나, 뛰어나거나'라고 생각해 왔는데, 

막상 나를 앞지르는 사람들이 그렇지도 않은 걸 보면

인생이 달리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 많은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향해 뛰고 있는 걸까?



결승점을 내가 정할 수 있다면?


그러고 보니 결승점 너머에 뭐가 있는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다들 저 너머를 향해 뛰고 있으니

뒤처지기 싫어 같이 뛰었던 것뿐이었다. 

간혹 궁금증이 생기긴 했는데, 

'잡념'으로 치부하고 떨쳐내려 애썼다.


그동안 뭐를 위해 뛰는지 모르고

옆 사람이랑 경쟁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와 같이 뛰고 있는 사람은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고 뛰고 있는 걸까?


잠시 멈춰보기로 했다.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그제야

나와 다른 방향으로 뛰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멈추면 뒤처질 줄 알았는데

멈추니 다른 방향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저 방향에도 분명 다른 결승점이 있을 것이다.


결승점을 바꾸니 좋은 점


내 눈에는 설렁설렁 딴짓하던 사람이

어떻게 나를 추월해갈 수 있었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그는 나와 다른 방향으로 뛰고 있었던 것이었다


설렁설렁 뛴다고 오해한 건 순전히 내 관점에서였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방향으로 뛰고 있었겠지.


멈춰 선 김에 나만의 방향을 정하고

새로운 결승점을 세우려 한다. 


새로운 경기의 좋은 점은 결승점을 

언제든 내가 원하면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힘들면 돌아가도 되고, 

지치면 쉬어도 되고,

막히면 바꿔도 된다.


결승점이 주어졌을 때는

하기 싫어도 지친 나를 정신력으로라도 

질질 끌며 전진했어야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정한 결승점이니 말이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뛰어가는 인파에 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끌려가고 있다면

잠시 멈춰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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