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산 청향과 차예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목이 칼칼했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눅눅하고 더웠는데, 오늘은 뜻밖에도 한결 선선했다. 밤새 바람이 방향을 바꾼 것 같았다. 냉장고에 차게 냉침해 둔 세작이 괜찮을까, 창밖으로 분주하게 지나가는 차량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티코스는 오후 세 시부터인데, 한낮의 기온이 어떨지 몰라 결정을 미뤘다.
오후 두 시 반쯤,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치고 나서 기온을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미묘하게 선선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봄 티코스를 마무리 짓기로 마음먹었다. 날씨가 계절의 경계선을 흐려놓는 날이 많아, 프로그램이 날짜에 맞춰 계절을 담기란 그리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우 부근에는 찻잎을 따고 봄과 여름의 경계에는 햇 차가 나오는 것이 차 시장이니까.
티룸에 도착해 커튼과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들였다. 포트를 연결하고, 물을 끓이며 오늘의 음악을 골랐다. 한켠에 널어둔 행주를 걷고, 냄비에 물을 앉혔다.
계절과 상관없이, 티코스가 있는 날이면 나는 늘 차예단을 만든다. 커다란 달걀 대신 자그마한 메추리알을 삶아 껍질을 벗기고, 우롱찻잎과 팔각, 향엽, 산초, 계피, 정향을 넣고 은은하게 오래 끓인다. 빈 속에 마시는 차는 자칫 속을 다치게 할 수 있으니, 찻자리에 앞서 위를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한참 분주히 움직이다 보니,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내가 좋아할 만하지만 처음 듣는 음악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가수와 제목을 확인해두었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마음이 잘 붙지 않았다. 바람 때문일까, 기운 빠지는 꿈 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음악을 몇 곡 지나친 끝에야 마음에 닿는 선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차예단에 생강을 아주 조금, 그리고 마른 고추 한 조각을 덧보탰다. 살짝 앙칼진 풍미를 더하고 싶었다. 날카로운 맛이 필요했다기보다, 오늘의 공기에 스며들 수 있는 무게감을 찾고 싶었다.
스타벅스는 어느 지점에서나 동일한 맛의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전 세계에 같은 원두를 공급한다고 한다. 일부러 강배전을 택해 풍미의 편차를 줄인다고도 들었다. 상업 공간에서의 음식과 차는 무엇보다 일관성과 재현성이 중요하다. 고객이 기억하는 맛을 언제나 제공하는 것, 그것이 프로페셔널한 일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프로보다는 매니아에 가까운 사람이다. 정확한 기준보다는 그날의 공기와 내 기분에 먼저 닿는 맛을 찾는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놓친 그 지점을 찾듯, 찻자리의 향과 맛도 몇 번이고 넘기고 골라가며 맞춰나간다.
오늘의 차는 아리산 청향. 타이완 아리산 중남부 해발 1200m 지대에서 자란 찻잎으로 만든 우롱차로, 벌꿀술처럼 엷은 노란 빛을 띠고 있다. 그리고 아주 은근한 난향을 품고 있다. 차예단에 넣은 우롱차도 바로 이 아리산 청향이다.
먼저 차예단을 하나 집어 입에 넣는다. 여러 향신료의 결이 우롱차의 둥글고 구수한 맛에 안긴다. 이어서 아리산 청향을 한 모금. 입안 가득 차 있던 짜고 맵고 단맛들이 천천히 목 뒤로 흘러가고, 그 자리에 고요하게 남는 난향.
오후 두 시 반의 제주는 아직 여름도, 봄도 아닌 듯 어정쩡했다. 급히 들어서며 열이 오른 손님에게는 따뜻한 녹차보다 시원한 냉침 녹차가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차예단은 어쩌나.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냉방 온도를 한도 낮추기로 했다. 공기가 조금 서늘하면, 따뜻한 차가 더 맛있게 느껴지니까. 꼭 생강과 고추와 팔각을 더한 나의 차예단이 덜 무안하기만을 바란 건 아니라고, 나름 조심스럽게 항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