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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치 Apr 04. 2021

학생들의 사정 — 부모님

중학교에 올라온 아이들의 머릿속

최근 반 년 동안 14살짜리들을 가르쳤다. 3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13살, 초딩이었던 애기들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 가고, 몇 년 전 드림클래스 했던 때와 또 다른 나이대가 되었다. 20대 초반, 중반, 그리고 지금은 후반의 끄트머리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하기 부끄러운 나이면서도, 내가 학생 때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 중 내 나이였던 분도 계셨고, 한 20~30년 전만 하더라도 20대 중후반이면 충분히 어른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또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을 보면 다들 어른스럽기도 하고. 뭐가 됐든 14살짜리 앞에 내 나이 정도 되면 무조건 어른이다. 어른인 것이다.


언제나 하던 말이 있다. 애들한테 어른은 어른이고,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아무리 친구 같은 선생님, 형 같은 선생님이 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어른이니까. 드림클래스를 할 때 이 때문에 혼란을 겪던 선생님들을 아주 많이 봤다.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었는데 애들이 안 따라주는 것이다. 13, 14살짜리 애들은 규칙을 배우는 시기다. 규칙에 벗어나면 아주 이상하게 생각한다. 15, 16살 정도 되면 또 다르다. 그 나이대 애들은 규칙에 벗어나는 것을 아주 즐긴다. 재밌어 한다.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중1과 중2, 그리고 중3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다. 중3쯤 되면 말도 어느 정도 통하고, 어른스러운 면모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 애들의 머릿속에서는 천지가 개벽하는 수준의 재구성이 일어나지 않을까. 나도 그랬을까.


중1, 2, 3이 다르다 해도 공통점이 있다. 어른은 어른인 것이다. 매순간 느낀다. 그리고 두꺼풀의 벽이 존재한다. 선생님으로서의 벽, 어른으로서의 벽이다. 아무리 친근하게 다가오는 학생이라도 선이 존재한다. 애들에게 어른은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사는 전혀 다른 인간이다. 고양이가 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애들에게 세상은 학교와 집, 학원이 전부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다. 정해진 생활, 비슷한 사람들. 그렇게 사회화가 이뤄진다. 그 속에 애매하게 위치한 학원 선생은 학교 선생님, 부모님이 아닌 다른 어른 부류다. 별다르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무시하기엔 크고, 중시하기엔 작은 애매할 뿐인 비중이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의 벽에 뚫린 작은 교감의 통로도 없고, 부모자식 사이의 벽에 존재하는 커다란 창구도 없다. 학교 선생님, 부모님과 다른 개성이 있긴 하지만 하루 2시간, 시험을 위해, 공부를 위해서만 만나는 어른이니 벽을 뚫기란 다른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아싸기질이 아주 강한 사람이다. 대학시절 이것저것 하긴 했지만 사교적으로 다가가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사람이 학원에서 40~50명 학생을 가르치면서 재밌는 썰을 풀기도, 친근하게 다가가기도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예전부터 느꼈다. 다른 대학생들, 다른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신나게 얘기도 하고 놀 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언제나 벽을 느꼈다. 이건 내가 친 벽이다. 나이를 떠나 사람을 대할 때면 불쑥 솟아나는 벽이다. 벽을 넘어 손 한 번 내밀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다.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 할 거리가 없다.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말이 많은 성격이긴 한데 사람을 워낙 가린다.


사람을 가리면서도 몇몇 친구들과는 하루종일 이야기를 해도 끝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모든 친구 사이가 그렇겠지만 전화만으로도 3~4시간을 이야기로 꽉 채울 때가 많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대부분 쓸데없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과 할 수는 없다. 하면 되지, 왜 못하는가. 아이들은 이해하지를 못한다. 일단 어휘부터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또 내가 하는 생각, 내가 뱉는 이야기 자체의 이해에 어려움이 있다.


이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애들은 자기들만의 커뮤니티가 있다. 어른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보여줄 수도 없는, 보여주기 싫은 커뮤니티다. 자기들끼리 뭉쳐서 무슨 소통이 오가는지 어른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게 뭐냐면... 나도 알 수가 없다. 그들만의 소통방식이 있고, 그들만의 주제가 있다. 텔레파시로 연결된 프로토스들처럼 급식들의 머릿속에는 그들만의 연결포트가 존재한다. 굳이 이것을 알겠다고 파헤칠 필요도 없고, 궁금하다고 알 수도 없다. 아이들은 다른 포트를 열어 선생님과 교감한다. 어른이니까 아이들의 포트에 연결할 수가 없다.


그만두기를 앞둔 시점에, 그동안 아이들의 이야기를 몇 가지씩 들은 적이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고민, 괴로움, 기쁨. 아, 희노애락이다. 인상 깊은 이야기들은 주로 부모님과 관련된 것들이다. 아이들의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아이들의 사정을 듣고, 부모님의 심정을 듣고 하면서 여러 가정의 모습을 봤다. 대부분은 좋은 부모자식이다. 대부분이라 함은 충격적인 모습도 물론 있었음을 뜻한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좋아한다. 정말 위대한 문장이 하나 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정확한 뉘앙스는 모르겠다. 번역마다 다르니까.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아무튼, 행복한 가정은 닮아 있다. 마치 인류사의 절정에서 찾아낸 정답 같다. 그런데 불행한 가정은 정말 각기의 이유가 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불행하다면 그것을 벗어나면 행복이 아닐까 한다. 아프지 않으면 건강하듯이, 괴롭지 않으면 행복하듯이, 자기와 자식을 괴롭히는 망상을 끊어내면 불행하지 않겠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어느 정도 가정 형편이 되는 아이들이다. 특별히 가난해 보이는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25만 원 정도 되는 학원비를 내고, 영어까지 다니면 50만 원 정도 되는 학원비를 내고 다닐 수 있는 형편들이다. 요즘 세상에 학원 못 보내는 부모가 많겠냐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매달 50만 원 학원비 고정 지출이 있는 집이라면 가난 때문에 불행이 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그 돈 내고 학생이 공부도 안 하고 실력도 늘지 않으면 돈이 아깝기야 하겠지만 못 낼 정도는 아닐 테다. 돈 없어서 남들 하는 거 못하는 집은 아니겠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 때문에 괴롭다. 15살, 중2병이 지나가며 자기가 생겨난다. 14살까지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다. 힘들어 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99%가 부모다. 부모가 아닌 다른 이유로 힘들더라도 그 과정에서 부모가 해준 말, 부모의 얼토당토 않은 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덕분에 괴로워 한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쓸까 하다가 만다. 스스로 한 약속이 있다. 학생과 나 사이에 한 말은 절대비밀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뭐, 친구들에게 구두로 전하기는 하지만은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는 껄끄럽다. 누가 보겠냐만은...


어쨌건, 부모가 문제다. 아이가 이상하면, 아이가 어수룩하면, 아이가 기가 죽어 있으면, 아이가 상처를 받았으면 다 부모가 원인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면 다 부모 치료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도 마찬가지다. 개가 문제면 보호자를 치료한다. 개랑 아이랑 같지 않다. 다른데, 같은 면이 있다. 학생이나 개나 보호자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지만 나도 나이가 어리고, 뭐 대단한 현자도 아니고 하여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어렴풋이 알리는 수준 정도로는 말을 꺼내긴 하지만 못 알아 듣는 것 같으면 그냥 넘어간다. 부모자식 사이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끈끈함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간섭이고, 뭘 그렇게 잘 안다고 말을 꺼내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알리는 것은 아이가 가여워서 그렇다.


이렇게까지 글을 썼지만 사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를 잘 이해해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밝고 명랑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열심히 무럭무럭 자란다. 공부 조금 못하고, 시험 조금 못 봐서 눈물을 흘리면 어떤가. 그것도 다 자라는 과정이다. 몇몇 아이들의 경우가 문제다.


다음에는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써보고 싶다. 그래도 될지 모르겠다. 학원을 그만두고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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