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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Oct 21. 2021

衣. 100%의 코트를 쫒는 모험

100% 한 벌 못지 않은 99% 열 벌의 코트 컬렉션

내가 성인이 돼서 번 돈으로 산 코트를 헤아려 보면 30벌은 족히 넘고 50벌까지는 아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대부분의 촉감과 생김새와 사게 된 맥락과 헤어진 연유에 대해서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너무 애용해서 모양이 다 틀어지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일별해야 했던 키라라 코트, 병적인 다이어트를 하던 시절에 단지 나 말고는 아무도 맞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강남역에서 충동 구매를 했던 회색 반코트(병이 낫자마자 맞지 않게 되어 버렸다), 계속 갖고 있었으면 지금은 레트로 스타일로 입을 수 있었을 텐데 손바닥만 한 고시원 방에 걸어둘 데가 더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처분해야 했던 카멜색 캐시미어 더플 코트… 근래 나의 십수 년은 100%의 코트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는 코트에 집착해 왔다. 겨울이면 서울에 영하 20도의 한파가 밀어닥치는 게 일상적인 자연 현상이 되기 전에는 코트만으로 4개월을 버티는 것이 가능했거니와, 무엇보다 코트라는 아이템은 멋지기 때문이다.


겨울철 체온을 보존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코트는 이미 제 기능을 다했다—바꿔 말하면 이 본연의 역할을 못 하는 코트는 코트가 아니다. 모직 코트는 울 함유량이 75퍼센트는 넘는 것을 사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대로만 샀다면 따뜻한 데다, 코트는 스타일을 빠르고 편리하게 완성시켜주기까지 한다. 안에 뭘 입었든 예쁜 코트 한 벌만 입으면 아무튼 만족스럽다. 체형도 커버되고 잘만 골랐다면 유행도 비교적 덜 타서 몇 년이고 입을 수 있다. 물론 이 '잘만 고른다' 부분이 쉽지 않은 탓에 비싸게 사놓고도 손이 안 가는 코트가 어느 집 옷장에나 한 벌쯤은 있다.


100%의 코트란 울뿐만 아니라 캐시미어도 함유하고 있고, 재단이 좋아서 모양이 쉽사리 망가지지 않으며, 클래식한 디자인 덕분에 10년도 20년도 너끈히 입고 내 몸에 꼭 맞는 것은 물론 내가 가진 옷들과도 잘 어울려 자주 입게 되는 환상의 아이템을 일컫는다. 시착 경험까지 합치면 평생 200벌은 넘는 코트를 걸쳐봤을 텐데 이 조건을 두루두루 만족시키는 옷은 당연히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트렌드도, 내 취향도 조금씩 바뀌다 보니 살 때는 예뻐라 했던 옷을 점점 멀리 하게 된다. 일교차가 10도인지 15도인지, 낮 최고기온이 0℃인지 10℃인지에 따라서도 쾌적한 의장은 달라진다. 나는 특별히 탁월한 안목이나 식견을 갖춘 사람도 아니어서 시행착오에 착오를 거듭하고서야 간신히, ‘100%의 코트에 한없이 가까운 99%의 코트 10벌’을 장만하는 데 성공했다.


100%가 아니라 99%인 이유는 ‘이거 하나면 됐어! 이제 다른 코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의 경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 그래도 어지간해서는 새 코트를 들일 마음이 생기지 않는 훌륭한 컬렉션이라고 자부한다. 비결은 품목을 다양하게 갖추되 1℃~5℃용 코트—최근 3년간의 기온 데이터에 따르면 코트철에는 이 기온 분포가 가장 흔하다—를 특히 100%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나는 이 구간의 코트 두 벌을 시작으로 -2℃~0℃용, 6~9℃용, 10~12℃용, 바람 초속 3m/s 이상용, …과 같이 기온별 또는 특수 목적별로 평소 나의 착장과 어울리는 다양한 컬러의 코트를 하나씩 사들여 왔다. 자주 입는 옷 스타일, 컬러, 두께, 질감 등을 모두 고려해 최적의 밸런스를 맞추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이 노력이 무색하지 않게, 이상 기후 현상이 더 심화돼서 거위털 패딩만 주구장창 입어야 되는 날이 오지 않도록 더는 새 옷을 사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자고 다짐 중이기도 하다.


양심상 내 옷을 더 살 수가 없으니 나는 남의 코트를 골라주는 데도 열심이다. 누군가 코트를 산다 하면 당사자보다 열심히 백방으로 정보를 찾아보고 자료를 스마트폰에 저장한 다음 매장에 가보자고 재촉한다. 혼자는 금방 지쳐 적당히 타협했을 친구도 덩달아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고 마침내 마음에 드는 걸 한 벌 고른다. 남이어도 득템하는 걸 보는 순간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밖에도 나는 누가 어떤 옷을 살까 말까 할 때 결정에 필요한 기준을 세워주고 아주 살짝 등 떠미는 것도 좋아하는데, 이 재능으로 돈을 벌 수는 없으려나.



99% 코트 열 벌 가진 사람으로서, 올겨울 새 코트를 장만하려고 계획 중인 분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팁은 다음과 같다.   


1) 내 겨울옷 사진 스마트폰에 저장해 두기

아무리 예쁜 코트여도 이미 가진 옷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거기 어울리는 옷을 또 사야 한다. 우선 가진 옷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그걸 토대로 새 코트를 물색하면 처음부터 범위를 좁혀서 시작할 수 있다. 이미 다른 코트가 있다면 그 코트의 장점을 취하고 싶은지, 단점을 보완하고 싶은지에 착안해 새 코트의 조건을 정리하면 된다.  


2) 코트는 꼭 입어보고 사기

모직 코트는 두꺼워서 입으면 자연히 모양이 잡히는데, 단면 사진이나 모델 착샷만 보아서는 내 몸에서 이 모양이 어떻게 구현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1센티미터 폭에 따라서도 핏과 착용감이 달라지는 게 코트이므로 직접 입어보고 성분표도 확인하고 사는 게 좋다. 그리고 새 코트 사서 들고 다니면 기분도 좋다. 나는 새 코트 효과가 한 달은 간다. 


3) 아주 작은 디테일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사지 말기

단추 하나, 포켓 하나의 디테일이 거슬리면 결국 그 옷을 입지 않게 된다. 이것은 코트만이 아니라 모든 옷에 적용되는 법칙인데 특히 코트가 유난히 그렇다. 예쁜 코트는 매년 생산되고 돈만 있다면 언제든 99%의 코트정도는 비교적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으므로, 조바심 내지 말고 어느 모로 보나 흠잡을 데 없는 코트를 사야 오래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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