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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Oct 24. 2021

衣. 완성형 멋쟁이의 미니멀리즘 판타지

더할 것이 없는 상태와 뺄 것이 없는 상태

20년 가까이 매년 이맘때면 결단형 인간인 나답지 않게 과한 시간을 쏟는 고민이 있다. ‘지금 외출을 했다가 밤늦게 돌아올 건데 스카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일교차를 생각하면 하는 게 맞다. 10월의 12℃는 12월의 12℃보다 체감상 따뜻하지만 방심했다 감기에 걸릴 확률은 더 높은 것이다. 문제는 스카프가 어울리는 착장과 그렇지 않은 착장이 있다는 것인데, 모처럼의 외출이니 이 맑고 서늘한 가을 오후와 일별해야 하는 11월이 오기 전에 더 가볍게 입고 싶다. 스카프를 해도 안 해도 예쁘게 입을 수 있는 겉옷도 있지만 그거야말로 지금 꼭 입을 필요가 없다.


패션의 완성에 관한 유명한 정의 중 하나로 ‘더할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뺄 것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 있다. 말장난으로만 들려서 오랫동안 이해를 못 하다가, 다음과 같이 패러프레이즈를 해보고야 깨달았다.


부족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넘치지 않는 상태


나는 이쪽이 더 이해하기 쉽다. 또 이것은 내가 정의하는 ‘행복’과도 비슷한 데가 있다. 부족하지 않다는 것은 아쉬움도 불만도 없이 평온한 상태다. 넘치지 않는다는 것은 여기서 더 필요한 게 없는, 모든 것이 딱 알맞게 충족된 상태다. 손뜨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귀여운 올리브색 카디건에 단풍색 스커트를 맞춰 입고 까만 스타킹을 신는 것이 전자, 까만 스타킹 대신 비둘기색 스타킹과 금빛 버클이 달린 아이보리색 구두를 신는 것이 후자다. 지금은 여기 어울리는 스카프도 머플러도 없어 뭐 하나를 더했다간 넘치고 만다.


패션도 그렇고 일상 생활 거의 전반에서 나는 ‘ 끔찍이 싫어한다.  걸음도  걸어지는 고시원 방에  때부터 당장 쓸모가 없는 물건, 취향에 맞지 않는 물건을 주위에 두는  싫어했다. 화장품 샘플부터 휴대폰 대리점에서 주는 사은품에 이르기까지 내가 제값을 치르지 않은, 플러스 알파로 얻게  물건은  안에서 숨만 쉬어도 하루 2만원은 우습게 나가는  집구석 공간의 낭비, 안전한 공간에서 숨을  권리와 매초 맞바꿔야 하는  소중한 시간의 낭비를 초래할 뿐이었다. 더구나 원치 않는 물건은 갖고 있는 데도 버리는 데도 까지 든다. 덕분에 혼자서는  쓰지도 못할 대용량 소모품, 1+1 제품, 1 가구엔 효용도 없는 잡동사니와 부가 서비스까지 딸려오는 가전 제품은   문턱을 넘은 적이 없다. 선택권도 없이 안겨주는 명절 선물이 너무 싫어서 지하철에 두고 내린 적도 있을 정도다. (1 가구 세대주에게는 부디 현금성 선물을 주십시오.)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도 넘치지 않는 집을 갖기란 너무 어렵다.


워드로브나 물건 차원에서는 그래도 ‘덤’ 거부의 권리가 온전히 나한테 있다.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인간 관계다. 약속에 눈치없이 끼어드는 친구부터 시작해 꼭 날씨 좋을 때 결혼식을 올려서 내 주말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직장 동료에 이르기까지—가능하면 돈으로 때우려 하고 있지만 나는 비혼주의자니 나 좋을 일은 1도 없지 않은가— 이 ‘덤’ 처리가 성가시다. 상대가 사람이다 보니 관계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버리면 누가 수거해 가는 것도 아니다. 귀찮아서 방치했다가 의가 상한 관계의 뒷처리까지 모조리 내가 해야 한다. 그나마 친구보다 더 가까운 카테고리에는 사람을 두지 않아 ‘덤’에 발목을 잡히는 불상사는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만들어 주위에 사람을 주렁주렁 달고 사는 이들처럼 용감하고 거추장스럽게는 나는 살 수 없다. 대신 산뜻하게, 아쉬울 것 없이, 내가 원해서 들였고 더 원하지 않을 때 언제든 삶에서 몰아낼 수 있는 것들만 책임을 지면서 살고 싶다. 더할 게 없는 게 아니라 뺄 것이 없는 완성형으로.


그래서 오늘은 스카프 없이 외출할 생각이다. (약속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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