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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연속면 Oct 24. 2021

衣. 의도가 좋아도 결과만 좋아도 좋은 게 좋은 것

내가 가죽과 고기가 필요 없어서 동물을 죽이지도 않겠다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산 가죽 가방은 7년 전 중고 명품샵에서 건진 샤넬이다. 물론 예뻐서 갖고 싶어서 샀다. 이것 하나만 빼고 그전에 산 것들은 모조리 당근마켓에서 최저가에 처분하고 출퇴근길에는 천 가방을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죽 가방을 사지 않는 건 무겁고, 비싸고, 관리하기가 귀찮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가죽 구두도 신지 않는다. 겸사겸사 소든 양이든 한 마리라도 덜 죽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재작년쯤 출시된 애플워치 에르메스는 솔직히 좀 예뻤지만 에르메스는 가방을 만들려고 악어 도살장—악어 농장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도살하려고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나 그거나다—을 지었던 기업이라 역시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시작은 실용주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도덕적 명분도 따른 셈이다. 그렇다고 레더 백 하나 대신 에코백 열 개를 드는 게 딱히 더 환경에 유익한 것도 아니므로 최근 몇 년간은 가방 자체를 사지 않았다. 내가 뭘 들고 다니든 누가 1도 신경 안 쓰는 환경 덕도 아마 보았을 것이다. “사회인이 가방이 그게 뭐니? 이제 학생도 아닌데 좋은 거 하나는 있어야지.” 나는 이런 참견을 듣지 않을 자유 하나를 많은 것과 맞바꿨는데, 이 자유는 때로 조그만 신조 하나를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가죽뿐 아니라 나는 고기류도 별로 소비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포유류의 고기는 죽은 동물의 살결을 씹는 느낌이나 냄새가 싫다. 이것은 병적인 다이어트 경험에서 얻은 몇 안 되는 긍정적 결과물 중 하나로, 거리를 두다 보면 ‘아, 이것은 원래 내 입맛이나 체질에 맞지 않는 것이구나’ 하고 영원히 멀리하게 되는 음식이 있다. 육고기나 라면이 나한테는 그런 음식이었다. 두 개 다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해로우니 잘됐다 싶지만 “아, 저는 고기는 잘 안 먹어서요.”라는 발언에 동반되는 피로한 경험을 실은 수십 차례는 하였다. 회식 메뉴—COVID-19가 한국 사회에 미친 긍정적 영향 1) 회식이 없어졌다는 것 2) 길거리 흡연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며 팬데믹 국면이 진정된 후에도 두 개는 법적으로 금지됐으면 좋겠다, 안 되겠지만—를 정할 때 “아, 저는 고기는 잘 안 먹어서요”라고 하면 백이면 백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채식주의자세요?”


그것도 “커피 좋아하세요?”나 “주말 잘 보내셨어요?” 같은 일상적 질문보다는 의미심장하고 다소 무게도 있는 질문이다. “네”라고 대답하기라도 하면 당장 채식주의자들이 비(非)채식인들에게 가하는 사상적 압박—그런 것은 실존하지 않을뿐더러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헤테로 연애나 다이어트 압박에 비하면 어떤 권유도 새발의 피다—에 대한 피로감 호소,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믿음의 과학적 허점 지적, 동물은 불쌍한데 식물은 불쌍하지 않느냐는 식의 원론적 비난에 직면할 것만 같다. 공연한 망상인가 싶어 “네”라고 대답해봤다가 정말로 추궁을 당한 적도 있다. 어차피 나는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하여 변명하듯 “채식주의자는 아니고요, 그냥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라고 답하면 그제야 상대방은 말과 태도에 작게 돋친 가시를 거두고 ‘뭐 싫다면 어쩔 수 없죠’ 같은 태도를 취한다. 이쪽이 채식주의자건 고기 헤이터건 내가 고기를 안 먹고, 남이 먹는 고기를 보고도 속으로 비위 상해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입에 안 맞아서 안 먹는 건 괜찮고 환경이나 동물권을 위해서 안 먹는 건 안 괜찮나. 어떤 지점에서 이렇듯 상반된 수용이 일어나는지 알고자 나는 이런 말도 덧붙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기를 안 먹어서 소나 돼지를 덜 죽일 수 있다면 겸사겸사 좋잖아요.” 그러자 사람들이 거뒀던 가시를 또 슬그머니 세우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고기를 소비하는 것=그 고기를 제공하는 동물을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서 본의 아니게 기분을 건드렸나 보다. 하지만 나는 딱히 틀린 말, 못 할 말을 한 게 아니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돈육 소비량은 24킬로그램, 돼지 한 마리의 정육량이 55~60킬로그램쯤 된다 치면 한 사람이 약 2년간 돼지고기를 안 먹을 때 돼지 한 마리를 살릴 수 있다. 한국인의 연간 소고기 소비량은 돼지고기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대신 소는 돼지의 2배가 넘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그러니 나의 식성이 환경이나 동물권에 약간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건 데이터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무엇보다 고기를 안 먹는 건 내 쪽이고 채식주의자냐고 힐문한 건 저쪽인데 왜 저쪽의 기분이 상하는지 모르겠다.


최근 샤넬이니 버버리니 하는 명품 브랜드들의 탈모피, 탈가죽 열풍에 #착한소비 #가치소비 라는 태그가 붙기 시작한 것을 알고서야 나는 어렴풋이 그 이유를 추측했다. 혹시 내 말이 육식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으로 들렸나…? “내 개인적 입맛이 지구 환경에도 동물 복지에도 기여하면 좋잖아요”라는 말이 ‘당신은 왜 육식을 해서 환경과 동물에 해를 입히느냐’로 들린다면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내가 남이 먹는 고기까지 속으로 싫어하는 것은 내 비위의 문제지 그 사람의 도덕성에 대한 나의 판단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렇게까지 남의 내면에 관심이 있지도 않다. 근데 타인의 비거니즘—나는 비건조차 아니긴 하지만—에 비건이 아닌 본인의 도덕성이 훼손됐다고 느낀다면 비거니즘과 도덕성을 연결시키는 것은 대체 누구 쪽인가?


나는 의도가 좋든, 의도와는 관계없이 결과만 좋든 아무도 피해 입지 않고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은 거 아니냐고 속 편하게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다. 가죽은 비실용적이라 싫고, 고기는 맛없어서 싫고, 분리수거가 귀찮아서 일회용이 싫다. 심지어 ‘남보다 더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타이틀도 나는 필요 없으니, 왜 동물을 죽여서 고기와 가죽을 얻지 않느냐고 캐묻지 말고 지체없이 그 타이틀을 가져가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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