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디 Apr 02. 2021

당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20대 시절의 여행, 그리고 <파도야 놀자>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동생과 함께 했던 유럽 여행이 아닐까. 20대에 겪었던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나는 타의 반으로 자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일을 하던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 한 순간에 백수가 된 나는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았기에 더 커다란 자멸감을 느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지, 나에게 이런 일이 왜 생긴 걸까?” 인생에서 정말 최악이었던 일도 돌아보면 다 추억이고, 지금은 그냥저냥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지만,  그때 당시 생각해보면 여행으로의 여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준 일종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느낀 인생 최악의 일도, 모두 다 지나고 나면 ‘워스트’가 아니었으며, 그저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준 하나의 계단일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이라는 건, 특히 이십 대 시절의 여행은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장엄한 자연 앞에서의 겸손함, 과연 인간이 만든 게 맞는지 의뭉스러울 정도로 장대한 예술 작품들, 그 안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예술가들의  열정과 초월의 경지까지.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좋았던 것은 나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자유’에서 왔다. 그것이 삼십 대, 사십 대 시절의 여행이 아닌 이유는 무언가 강압적이며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십 대를 지나, 그럭저럭 괜찮은 환경 속에서 나만의 의미로 만들어진 자유가 꽃피워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 혹은 커리어나 부수적인 역할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다. 모든 것이 그저 나로 하여금 용인되는 시간들.

 

워낙 계획대로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유난히도 그 시간 동안에는 ‘잘 봐 둬야겠다, 시간을 잘 써야겠다 뭐든 ‘잘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오롯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순간이 너무나 즐거워 있는 그대로 몰입했으며, 이리저리 재지 않았다. 많은 생각 해서 벗어나니 발걸음은 가벼워졌고,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여행 첫날 공항에서의 쭈뼛거리던 나의 회화는 마지막 날에 처음 만난 프랑스인과 꿈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을 만큼 자연스러워졌으며, 인생에 대한 태도를 바꿔준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한 달의 시간 동안 영어를 눈곱만큼도 배우지 않았지만, 잘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저 ‘나답게’ 함으로써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행복한 여행의 기억을 끄집어낼 때마다 생각이 나는   권이 있다. 그림책의 매력을 느끼게   작품이기도  이수지 작가의 <파도야 놀자> 나에게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소녀가 온전하게 파도와 하나 되는 느낌, 그리고  찰나에서 느낀 자유로움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 텍스트가 없기에 빛을 발한다. 읽을 때마다 다르고,  생생하다. 뜨거운 여름날, 바다의 출렁이는 파도와 만난  아이. 아이에게 거대한 파도는 자칫하면 두려움이   있었지만, 멈칫하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회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파도의 출렁임을 만끽했고 그것이 아이에게 새로운 세계를 가져다주었다. 나에게  ‘파도 여행의 기억과 오롯이 겹친다.




 자유로울 




다양한 경험과 여행의 기억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순간을 즐길  있는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으며그저 하나의 즐거운 일이 생긴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마음껏 즐기는 태도를 갖게  주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겪었던 생경한 기억과, 아름다움 그리고 추억들이 나에겐  자산이 되었고, 20 시절의 여행은 그렇게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거대한 파도와 같은 낯선 상황이나 두려움이 나에게 닥쳐와도 <파도야 놀자>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순간을 오롯이 느끼며, 즐기며, 받아들이며 살아가리라.





어릴  마음을 어여쁘게 녹인   편도  함께.



팔순이 되는 해에


김종길


연암이 말하듯 나이를 더해도

달라지지 않는 건

어릴 적 마음


어느덧 팔순이라는데 마음은

아직도 바닷가에서 노는

어린아이 같다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조개껍질이나 줍고

게 새끼랑 어울리다 보면,


갑자기 거센 파도가 덮쳐와

이 한 몸 나뭇잎인 양

쓸어갈 날 있으련만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에만 몰두하는

어린아이.


아직은 잔잔한 바다,

하늘에는 하나 둘

별이 돋기 시작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커다란 행복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