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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우 Apr 04. 2023

갈매기살 1인분 12,000원

밥은 먹고 산다는 말... 그게 그렇게 힘든 거였어?

신용회복을 하면서도 가족들에게 최대한 안정된 생활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내와 맞벌이를 하는 동시에 내가 투잡을 뛰는 것이었다. 두 번째 직업인 방제회사 영업직에 관한 엊그제 일기이다.



4월이 시작되었다. 3월 실적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어서 겨우 100만 원 넘는 돈을 월급으로 확보했다. 영업계약직이라 따로 기본급은 없다. 월초의 영업팀 미팅은 전월의 우수사원 칭찬과 실적 부족러들의 눈칫밥을 먹는 시간으로 시작된다. 나는 약간의 눈치를 보면서 4월은 열심히 하겠다는 형식적인 대답으로 슬쩍 넘어갔다. 그래도 전반적인 전체 실적이 좋았는지 국장님의 표정이 밝다.

 


"오늘은 공지사항만 간단히 전달하고 고기 먹으러 갑시다!"



우리 국장님은 잘 먹여놓고 실적을 쪼으는 스타일이다. 일단 잘 먹인다. 


월요일 점심시간에 30여 명의 단체손님을 받는 식당 사장님은 복받으셨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은 우리 국장님의 식당선정 이유에는 절대 손해보지 않는 영업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계약이 성사될 듯한 유망업체 또는 최근 큰 계약건을 우리에게 안겨준 업체.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아마도 저번 주 대형 고깃집을 계약했으리라 짐작한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소소한 재미와 기대가 바로 다음 주 월요일 점심은 뭘까?이다. 출근은 일주일에 한 번 뿐이지만, 식사가 제공되지 않은 아파트 보안일과는 달리 출근하는 월요일만큼은 정말 맛있는 점심을 사주신다. 


오늘은 갈매기살을 먹으러 갔다.


"1인당 2인분씩 먼저 주문하고, 부족하면 더 시키고, 있다가 밥과 된장도, 콜라사이다도 시켜요!..  술은 안돼~~~"


 올해 들어 고깃집에서 먹는 두 번째 식사이다. 그중 한 번은 멀리서 일 때문에 찾아온 처재의 방문으로 가족단위 식사였다.



신용회복을 하면서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다른 외식보다도 더 인색하게 경계했던 곳이 바로 고깃집이다. 그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고깃집 얘기를 꺼낼 때는 자기 생일, 엄마 아빠생일이나 특별한 날을 기념할 때만 가는 막연한 희망으로 바뀌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와이프 또한 이번회식을 같이 했다.


"고기 참 맛있다. 다음에 애들 데리고 여기 한번 오자!"


3월 실적이 괜찮았던 와이프는 젓가락질이 힘차다. 아침까지만 해도 다이어트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은 먹이를 낚아채는 한 마리 갈매기와 닮았다.



장사를 할 때는 재료가 지천이니 밥 굶는 일은 없겠지 했었는데 사업을 접고 신용회복에 들어가니 진짜 쌀이 떨어지고 냉장고가 텅 비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창 먹을 나이인 초등학생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징징 데기가 일쑤였고 장을 봐도 가격표를 몇 번이고 확인하고 카트에 담곤 했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사정이 나아져 일주일에 치킨 한 마리 정도는 시켜 먹을 여유가 되었지만 그래도 한번 가면 10만 원이 넘어버리는 고깃집은 여전히 부담스럽기만 하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 집에 오면 냉장고 문부터 열어젖혔다. 그때 그 나이가 딱 지금의 우리 애들 나이다. 더 이상 아끼는 건 무리다라고 생각을 한 것이, 일을 더 하던지 다른 부분을 줄이더라도 애들 먹는 건 어떻게든 잘 먹이자 싶었다. 어쩌면 진짜 투잡을 생각한 것도 그래도 애들만큼은 잘 먹이기 위해서였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소크라테스가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은 과욕 과음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정말 생명유지를 위한 음식조차도 못 먹게 된다면 '먹기 위해 사는 삶'을 꿈꾸게 된다. 맛있는 음식의 가격표는 뒤로 한채, 먹고 싶은거 다 사 주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 아닐까.



신용회복 후 시작된 맞벌이라 오후 시간에 엄마가 집에 없는 것이 애들에게는 아직 낯설다. 집에 오면 항상 챙겨주던 간식은 사라지고 오후 3시 반만 되면 애들의 배고프다는 원성이 전화통으로 이어진다.



"애들 간식은 내가 신경 써볼게"


또래보다 작은 우리 아이들이 유독 신경 쓰여서일까, 와이프에게 간식은 내가 따로 챙겨 보겠다고 했다. 집에 오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빵, 샌드위치, 과자도 미리 준비하고 냉장고에 우유는 떨어지지 않게 신경을 쓰기로 말이다.


"우리 남편 이제 정말 아빠 같네? 그런 것도 챙기고?"


보릿고개도 아닌데 아빠의 사업실패로 인해 애들까지 배를 굶겨야 한다면, 부모로써 자괴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배고픔의 서러움은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는가.



"당신 든든히 먹었어?"

"어. 고기 3인분은 넘게 먹은 거 같은데? 공깃밥에 된장찌개까지..."


정말 원 없이 먹은 것 같았다. 와이프는 먹는 내내 말도 한마디 없었다. 메뉴판이 따로 보이지가 않아서 다 먹고 나오는 길에 사장님께 살짝 여쭈어 보았다.


"사장님 여기 갈매기살 1인분에 얼마예요?"

"만이천 원입니다."



대충 계산해 보니 1인당 4만 원씩은 먹은 것 같다. 전체적인 회식비는 1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 식당 사장님 표정이 그렇게 밝았구나. 내가 받은 3월 월급만큼 밥값이 나왔다.



나는 오늘 비록 살기 위해서 고기를 꾸역꾸역 삼켰지만, 우리 아이들은 즐겁게 먹고 배부르면 남기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게 못난 아빠의 마음이다.



'아빠가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이은우


10년간 회사생활 후 7년간 자영업자

코로나 이후 폐업 / 신용회복 2년차

슬기로운 신용회복기 극복 에세이

아프니까 사장이다 커뮤니티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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