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모카에 연유 추가
작년 가을에는 대부분의 아침을 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마음 좀 추스르며 쉬라고들 했지만, 나는 그저 덮어두고 싶어 일부러 더 바쁘게 살았다. 학교에서는 22학점을 듣고, 재택근무와 수학 학원 조교 일에, 동아리 세 개까지. 덕분에 상념에 잡아먹힐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그때는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늘려야겠다거나 푹 잠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버틸 방법을 떠올려냈을 뿐. 이번에야말로 커피를 마셔봐야겠다는 이상한 다짐도 그래서 이어졌을 것이다.
카페인이 체질에 잘 맞지 않아 스무 살이 넘도록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비워본 적이 없었다. 반 잔 정도 마시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가끔은 손이 떨렸다. 그래서 졸릴 때에는 카페인이 소량 함유되어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아이스티를 마셨다. 그 소량이 정말 소량이라 고작 26mg이라는 사실은 아주 나중에 알았지만. 일 년 정도 매일 가던 카페의 직원분은,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문을 마치기도 전에 음료부터 내밀어주실 지경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기대를, 어제도 오늘도 왔으니 내일도 올 거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카페에 갔다. 플라시보 효과가 끝나버린 후에도 꾸준히 들렀던 걸 보면.
아이스티에 질린 이후로는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자주 마셨다. 당시 나는 점심시간 없는 3연강 시간표를 소화해내고 있었고, 그란데 사이즈의 프라푸치노는 아침과 점심을 한 번에 대체해 주기 좋은 음료였다. 휘핑을 잔뜩 올리고 캬라멜 시럽을 아홉 번 정도 추가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릴 정도로 달달하기도 했고. 나와 달리 깔끔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던 같은 과 언니는 등굣길에 종종 들르던 테이크아웃 카페 한 곳이 있었다. 학교 앞의 많고 많은 카페 중 그곳 원두가 제일 맛있다면서. 내가 한 달에 스무 번씩 가던 스타벅스를 벗어나 처음 카페인에 도전해 본 곳도 그 카페였다. 시험 일주일 전이던 금요일이자, 지하철 한 번 버스 한 번을 타고 굳이 굳이 학교 도서관까지 간 그날에. 비가 줄기차게 오는데도 문 밖으로 비죽비죽 줄이 튀어나온 걸 보면 정말 인기가 많나 보다 싶었다. 처음으로 키오스크 앞에 똑바로 마주 선 채 주문하기 버튼을 눌렀다.
커피 종류를 제대로 알 턱이 없었기에 무엇을 마실지 한참을 고민했다. 나한테는 바닐라 라떼도 쓰던데. 각설탕도 씹어먹을 정도로 단맛에 특화된 나의 미각은 반대로 쓴 맛에는 아주 취약했다. 문득 엄마가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시절 카페 모카만큼은 달달하다며 좋아하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기억에 떠밀려 버튼을 누르니 연유 추가 옵션이 나타났다. 원래 모카에 연유가 들어가나? 달면 달수록 좋지 뭐. 주문을 마치자 마침 음료를 받은 손님들이 가게 밖으로 우르르 빠져나갔고, 나는 카운터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등을 대고 섰다.
무심코 들여다본 건너편 주방에서는 한 분만이 커피를 내리고 계셨다. 사장님이실 텐데 꽤 젊어 보이셨고, 약간의 예민함이 감도는 날카로운 인상에 체크셔츠 차림. 그러고 보니 커피 내리는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 어느새 가만히 그 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사람이 끊임없이 밀려오는데도 조급한 기색 없이 차분하게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한 잔 한 잔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럼에도 여유로워 보인다거나 느리게 느껴지지는 않아서 그 모순적이고도 적당한 속도에 계속 눈길이 갔다. 사람에게서 어떻게 저런 분위기가 나오지, 하는 약간의 덜컹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어느 카페나 그러하듯 손님 열 명 중 아홉 명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주문했기에 굳이 내 번호표를 들여다보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따뜻한 카페 모카 나왔습니다, 라는 한 마디에 나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고 북적거리던 카페 안을 후다닥 빠져나왔다. 뜨거운 음료는 보통 뚜껑을 열어서 마시는 편이라 두어 걸음 걷다 잠시 멈춰 서서 한 모금을 마셨다. 연유가 들어간 그 따뜻한 카페 모카는 아주 맛있었다. 수혈받듯 마셔대던 자바칩 프라푸치노보다 훨씬 더.
그리고 그날 오후에는 처음으로 한 번도 졸지 않았다. 잠은 여전히 다섯 시간 내외를 겨우 잤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뒤늦게 카페인의 충실한 추종자가 된 것은 그날이 시작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침 열 시 반 수업에 들어가 언니에게 손을 흔들었다. 언니는 등을 살짝 기울여 입꼬리를 올리다 내 오른손을 보며 놀란 듯이 말했다. 뭐야, 프라푸치노가 아니네?
오늘은 커피 샀어. 언니 자주 가는 곳 있잖아, 거기서.
너 카페인 조금만 마셔도 힘들어하잖아. 괜찮아?
저번주 금요일에 모카 마셔봤는데 하나도 안 피곤하고 좋더라고. 이번에는 손도 안 떨렸어.
습관적으로 엄지를 들어 올리자 언니는 잠을 더 안 자는 것 같아서 진짜 큰일인데... 하며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곧이어 낮은 목소리로 비밀스럽게 덧붙여진 언니의 몇 마디. 아침에 가면 사람 붐비니까 웬만하면 사람 없는 시간에 가. 금요일 빼고는 알바생도 한 분 계셔서 바쁠 때는 그분이 커피 내려주시는데, 사장님 샷이 훨씬 맛있어. 같은 원두인데도 누가 내리냐에 따라 신기하게 차이가 나더라.
수업 전후 시간대는 항상 붐비지 않나? 그래도 기억해 두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언니는 방금 떠올랐다는 듯 몇 마디를 더 이어갔다. 아, 그리고 라떼 주문하면 라떼아트도 해주셔. 모카 질리면 한 번 마셔봐. 너야 뭐, 하나 맛 들리면 그것만 몇 달이고 마시는 거 알지만.
언니 말대로 나는 한 번 꽂히면 주변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성격이고, 다른 음료를 주문할 일이 없을 것 같아 별 생각은 없었다. 가격도 저렴하던데 라떼아트까지 해주시네, 하는 대단히 속물적인 감상만 남았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게 고작 이틀 전이었는데. 그곳에 매일 간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컵을 받으며 어쩐지 사장님이 살짝 웃으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항상 무표정하셨는데, 기분 탓이겠지.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하고 나와 뚜껑을 열어본 후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카페 모카를 주문했는데, 갈색 음료 위로 흰색 튤립 한 송이가 화사하게 그려져 있었다. 정교한 모양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나는 컵을 차마 입에 대지 못하고 그대로 뚜껑을 닫았다. 와,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마셔... 조심히 컵을 감싸 안고 종종걸음으로 도서관으로 들어간 뒤에는 사진부터 두어 장 찍었다. 우유 거품이 빠르게 사라져 가는 모습에 결국 홀짝이며 마셔버리고 말았지만. 그 사소한 이벤트만으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날 뒤로는 매일매일 커피 위로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대개 튤립 아니면 하트 모양이었는데 디테일은 늘 조금씩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쩌다 조금 찌그러진 모양으로 커다란 하트가 그려져 있으면 오늘은 실수하셨나 보네, 하고 조용히 웃을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아침마다 눈물을 툭툭 떨어뜨렸지만 이제는 그 헐거운 기분이 오래가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나는 꽤 오랫동안 늘 사장님이 직접 내려주신 커피만 마셨다. 하지만 하루는 바빠서 그런지 사장님은 주문만 받으시고 음료는 전부 알바생분이 만들고 계셨다. 언니가 말한 상황이 이거였구나. 내심 아쉬운 마음에 영수증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주방 쪽에서 주문서가 출력되는 소음과 함께 짧은 목소리가 들렸다.
주문 뭐 들어왔어, 모카야? 그건 내가 할게.
그 한 마디에 나는 헬륨 풍선을 날아가지 않도록 꽉 끌어안고 있는 초등학생의 기분이 되어버렸다. 자, 착각하지 말자. 저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모카라는 음료가 손이 많이 가는 메뉴일 수도 있고, 그냥 아무 의미 없이 그러신 걸 수도 있고. 그러니까 제발 김칫국 마시지 말자. 그러면서도 내 머릿속 한 편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섞여있을지 모른다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매일 오면서도 모카 주문하는 사람은 나 밖에 못 봤는데? 다른 음료는 커피류든 에이드류든 전부 알바생 분이 만들고 계신데?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던 사이 사장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말투로 주문하신 모카 드리겠습니다, 하고 컵홀더를 끼워 나에게 건네주셨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렇게 대답하며 문득 생각했다. 나 때문이든 아니든 그건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고. 전부 내 착각일 뿐이라도 그저 좋다고. 카페가 그 자리에 있고, 사장님이 계시고, 익숙한 맛의 커피를 받아 들고. 그러한 하루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반복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카페의 폐업 일정이 알려진 이후로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좋으면 문 닫기 전에 한 번은 제대로 말을 걸어보라고. 인스타라도 여쭤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주 드물게 손님이 나밖에 없는 한산한 시간대도 있었으니 사실 그동안 말을 붙이려면 붙일 기회는 꽤 있었다. 그러나 나는 번번이 그 기회들을 별 소득 없이 날려버렸고 딱히 후회하지도 않았다. 분명히 말하자면 연애 감정이 아니었기에. 옷 스타일도 내 취향이었고 조금 피곤해 보이던 인상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저 그뿐일 수도 있는 거였다. 사장님 치고 상당히 젊으신 편이긴 했지만 나랑 나이차이도 꽤 날 테고, 무엇보다 그의 일상에 진입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조금 웃긴 말이지만 사적인 관계가 되면 오히려 나의 이 작은 즐거움이 사라질 것 같았다. 혼자 착각하고 의미 부여하고 그러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는 이 시간이.
언젠가 날이 조금 더 추워진 이후 카페에 갔을 때는 라떼를 주문하며 텀블러를 건넨 손님이 있었다. 사장님은 텀블러를 받아 들더니 망설임 없이 따뜻한 물을 채웠고, 손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사장님, 저 라떼 주문했어요. 그러자 그는 아 라떼... 네 라떼 맞아요, 하고 더듬더듬 간신히 다음 문장을 완성했다. 날이 차서 잔이 차갑길래 예열을 좀 했어요.
그 문장에는 도대체 몇 번의 쉼표들이 들어갔을까.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모든 이유가 이 한 마디 안에 들어있지 않을까. 차다와 춥다, 잔과 텀블러, 예열하다와 데우다. 그 많은 선택지 중 모으고 모은 가느다랗고 흐릿한 단어들. 그러한 실 같은 분위기를 보고 듣는 것이 좋았고 그게 내 마음의 전부였다. 그래서 아주 수동적인 형태일지라도 두고두고 저 문장을 다시 꺼내보는 정도로 만족했다. 내가 개입되지 않고서도 충분히 아름다울 장면들. 나에게는 그런 게 너무 많아.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폐업 전날 작은 선물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아메리카노를 이제 어디서 마시냐며 슬퍼하는 언니와도 함께 갔고, 모카를 주문한 뒤 달달 떠는 나를 언니는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며 전해드렸는지, 사장님의 표정이 어떠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찾아온 폐업 당일날, 그날은 대부분의 메뉴가 재료 소진으로 주문할 수 없는 상태였고 카페 모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바닐라 라떼를 주문하자 키오스크 화면 위로 장문의 문장들이 가득 떠올랐다.
사장님께서 손님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감사의 메시지였다. 내용은 단정하고 고요했기에 마무리도 그 답다고 생각하던 중, 구체적으로 몇몇 손님들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맨 첫 줄에 내가 있었다.
이번에는 나만의 착각이라고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매일 카페 모카만 마시고 작은 선물을 남긴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데 내가 좋은 하루 되시라고 인사하던 건 나도 몰랐네. 그냥 말습관이었는데. 그가 남기고 간 엔딩 크레딧의 첫 번째 이름이 나였다는 것,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했다. 이렇게 완결됨으로써 좋은 이야기도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카페를 들락거리는 동안 나의 슬픔 역시도 함께 크레딧을 올렸다. 이제 나는 아침에 눈을 떠도 울지 않으니까. 요즈음에는 학교보다도 카페 갈 생각에 신나는 마음으로 하루를 기꺼이 맞이했으니까. credit에 to를 붙이면 상대에게 공로를 돌린다는 감사의 의미가 되듯이, 나 역시 일상의 회복에 대한 크레딧을 적는다면 사장님의 이름을 제일 먼저 올리고 싶었다.
마지막날 처음으로 주문한 바닐라 라떼에는 역시나 예쁘게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2년 전에 마신 바닐라 라떼와 달리 내 입맛에 쓰지 않았다. 그리고 다 마실 때까지 하트 모양이 뭉개지지 않은 채 바닥으로 그대로 가라앉았다. 모카를 마시면 순식간에 거품이 되어 망가져버렸는데 말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라떼도 좀 마셔볼걸. 그래도 음료가 바닥날 때까지 함께 남아있어 준 라떼아트 덕분에 외로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캬라멜 시럽을 세 펌프 정도만 추가하면 아메리카노도 충분히 마실 수 있다. 오히려 자바칩 프라푸치노는 입에도 안 댈 정도로 단 맛에 대한 내성이 조금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아주 혹시라도 또다시 카페 모카에 연유를 넣어주는 커피집을 만나게 된다면, 한여름이더라도 기꺼이 연유를 추가한 따뜻한 카페 모카를 주문할 의향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 눈에 익숙한 그 라떼아트를 불현듯 다시 마주쳐버릴지.
혹시, 어쩌면, 만약에를 되새기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