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친구와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만났던 어느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입술을 다시 칠하고 있었다. 두툼한 파우치를 뒤적거리며 피부 화장부터 고치는 친구와 달리, 나는 립밤을 바르는 것으로 간단히 수정을 끝냈다. 연한 주황빛이 도는 하트 모양 케이스를 본 친구는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너 중학생 때도 이거 갖고 다녔잖아, 아직 같은 색 쓰네? 엄청 마음에 들었나 보다.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우리랑 같이 동아리 하던 친구 기억해? 걔가 내 피부색에 어울릴 거 같다고 추천해 줬는데, 그 이후로 그냥 쭉 썼어.
그 한 마디 때문에 몇 년째 같은 색만 쓰는 거야? 걔가 알면 진짜 좋아하겠다.
다른 립 찾아보기 귀찮기도 하고, 걔는 화장 잘하니까 믿었던 것도 있고. 그러자 친구는 자기 것도 좀 발라보라며 파우치를 내 앞에 우르르 엎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열다섯 살 축제날 처음 스스로 화장을 했을 때,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화장실로 끌고 가서 뭉친 섀도우를 펴 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끄집어내면 두고두고 놀림받을 게 뻔해서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렇듯 나는 화장에 있어 민감한 편이 아니다. 평소 메이크업에 소요되는 시간은 15분 남짓. 화장을 잘했던 적이 없지만 그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속쌍꺼풀 때문에 눈화장을 해도 잘 보이지 않지만, 망쳐도 티 나지 않으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볼에는 홍조끼가 살짝 있어서 블러셔 대용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대충 분홍빛을 띠는 건 똑같으니까.
내 인상을 제일 크게 좌지우지하는 건 립스틱이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얼굴 전체의 핏기와 혈색이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입술색이 지워지는 것에 심한 짜증을 느꼈다. 나는 늘 집 밖으로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색깔이 제일 마음에 드는데, 손대지 않아도 화장은 무너졌고 같은 제품을 다시 발라도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강박이 심할 때는 어느 정도였냐면
잘 보이고 싶은 저녁 약속이 있을 때는 낮에 외출하더라도 그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고작 립스틱이 지워질까 봐라는 이유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외적인 요소들을 말해보자면, 깨끗하고 흰 피부에 무쌍꺼풀. 핏줄이 두드러지는 손과 가는 뼈대. 나는 미인이 아니지만 스스로가 추구하는 기준에는 운 좋게도 대충 부합하는 편이었다. 수치적으로 쉽게 증명되는 체중에 있어서는 특히.
내가 제일 말랐을 당시는 158cm에 36kg. 어릴 때 키가 빠르게 자라기도 했고, 편식은 심한데 식욕이 별로 없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된 몸무게였다. 신발끈을 묶으려 허리를 숙이면 친구는 내 등뼈가 선명히 다 드러난다며 경악했고, 중학교 교복을 맞추러 갔을 때는 가장 작은 사이즈의 치마도 허리 위에서 빙빙 돌아갔다. 건강하기보다는 삐쩍 마른 느낌이었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러워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좋겠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시기였을 정도로.
그들이 원했던 건 정말로 내 신체조건이었을까? 아니면 음식을 먹을 때 칼로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생활습관이었을까. 어차피 먹는 양이 적으니까, 나는 달고 짜고 느끼한 고칼로리 음식들을 아무런 통제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배부름은 알아서 재깍재깍 찾아왔고 그때 숟가락을 놓으면 되니까. 가족들도 다들 타고난 소식가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건강하신 부모님과 달리 나는 소화기관이 매우 약했다.
적게 먹고 산뜻하게 지내면 편하겠지. 그렇지만 나의 경우 위장이 일정량 이상의 음식을 거부하는 것에 가까웠기에 별로 속 편한 생활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아침 7시에 빵 하나를 먹으면 자기 전까지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음식을 먹지 않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친구든 가족이든 끼니때마다 식사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고, 학교에 다니며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그걸 전부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의 나에게 식사는 생존활동도 즐거움도 아닌 사회생활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학교에 매점이 있던 중학생 때부터 억지로 먹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한창 성장기 청소년인 친구들은 등교시간부터 쉬는 시간마다 작은 간식거리를 나눠주었고, 점심 식사 후에는 매점에서 후식을 사 먹는 것이 당연한 일과였다. 그 모든 호의와 교류를 번번이 거절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선의였을 테고 나에게 강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덕분인지 때문인지 나는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고 체중 역시 올라갔다.
160cm에 44kg. 무겁다고 볼 수는 없지만 더 이상 대단하게 마른 건 아니었고, 나는 일 년 만에 8kg이 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구매한 치마 S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경험을 했다. 요즘 옷들이 상당히 작게 나오는 경우가 많고, 사이즈 구분보다 실측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옷이 작아서 반품해 본 적이 없었기에.
여전히 주변에서는 말랐다는 칭찬을 질리도록 해주었지만 나는 내 변화가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반증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를 통제 하에 온전히 두지 못했다는 죄책감. 앞으로는 이 속도로 살이 찌면 절대 안 된다는 두려움이 몰려왔고, 여전히 마른 것을 선망하는 주위 시선에도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종일 속이 더부룩하고
조금만 과식해도 호흡이 불편해지고
그럼에도 신체 리듬에 맞춰 마음대로 굶지도 못하는데
그런 게 좋아 보여? 정말?
키가 조금 더 크고 성장이 멈출 무렵 체중은 46kg 정도로 고정되었지만, 그때는 유지에 있어 부담감을 느낀 시작점이었다. 그동안 운이라고만 생각한 것들을 지켜내기도 해야 한다는 책임감. 조금만 삐끗해도 내 몸이 사정없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으로 나를 괴롭힌 건 피부 위로 올라오는 크고 작은 트러블이었다.
여름에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피부는 약해서 햇빛 화상을 자주 입었고, 시험기간처럼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에는 여드름이 조금 올라오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심한 정도는 아니었으나 우리 엄마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여드름이 나본 적 없는 축복받은 유전자의 소유자였기에, 너무 높은 기준의 비교대상이 바로 옆에 있었다. 그냥 손대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자연히 없어질 거라는 말이 내 위로 자주 쏟아져 내렸지만 엄마는 나랑 다르니까. 나에게는 그런 말들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나에게 어떤 습관이 숨어 있는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뜯었다.
얼굴에 올라온 거스러미들을.
당장 눈에 거슬리는 것을 치워버리는 게 좋은 해결책은 아니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칠게 올라온 각질들을 벗겨내고, 피와 진물로 범벅이 된 손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어쩐지 기분만은 개운했다.
특히 재수를 할 때 이 습관은 심해졌다. 슬슬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라앉으며 마스크 착용도 줄어들었고, 스터디카페 1인실에 앉아 있으면 주변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개념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때, 오답을 아무리 고쳐도 정답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나는 얼굴을 뜯으며 크고 작은 흉터를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50kg에 닿을락 말락 하던 고등학생 때의 체중을 43kg까지 안정시킨 것 역시 이 시기였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배고플 때만 밥을 먹으니 자연스레 살이 빠진 덕분에. 한 가지가 진정되면 다른 한 가지가 날뛰는 시소 같은 아이러니였다.
단순히 외모를 떠나서 삶 자체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기도 했다. 부모님께서 재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 주시긴 했지만,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지내던 시절과는 달리 내 기본적인 삶의 유지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지 직면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들이마시는 산소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도 확신이 없는데, 소비하는 음식과 물건은 셀 수 없이 다양했다. 공부만 하며 아무런 생산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행복의 감각을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아등바등 살아야 하지? 살아내서 이루고 싶은 것도 딱히 없어, 난.
대학에 간 이후로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뚜렷한 삶의 의지나 목표를 가져본 적이 없다. 얼굴을 뜯는 손가락질도 종종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하루는 무의식 중에 볼 위를 맴도는 손가락을 인지했음에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아 머리 아파. 피부과에 간들 이게 당장 나아질까? 일단은 컨실러로 가려야 하나. 내일 약속 있는데, 화장도 잘 못하면서 가릴 수는 있나. 그러니까 얼굴을 안 뜯으면 되잖아. 그러면 되는데 대체 왜.
한심함과 자괴감이 한꺼번에 밀려온 와중에, 겨우 용기를 내서 거울 앞으로 향했다. 그 속의 나는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너무 멀쩡해서.
손가락이 진물로 끈적해지도록, 얼굴을 파내고 뜯고 뜯었는데도 의외로 봐줄 만한 행색이었다. 물론 약간의 손톱자국은 남았으나 크게 색이 변하지도,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찬물로 세수를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는 멍하니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현실이 나의 상상만큼 최악이었던 적은 없었다. 옷 사이즈가 늘어났을지언정 입고 싶은 옷을 살이 신경 쓰여 입지 못한 적은 없었고, 피부에 남은 흔적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자연스레 재생되었다. 조금씩 흔들리더라도 가늘게 이어지는 항상성 자체가 삶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거울 속 내 모습과 함께 어렴풋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렇지만 이 글은 어떠한 성장 서사로도 남겨두고 싶지 않다. 그날 이후로 갑작스레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다든가, 인생을 향한 불타는 의지를 갖게 된 건 아니니까. 그저 힘없는 방향성을 한 가지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었을 뿐이다.
지워진 립스틱을 다시 바르는 건 여전히 성가시지만 그래도 덧바르려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도 삶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요즈음 내가 바르는 립스틱은 보랏빛을 띤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바라본 나는 주황색이 정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고, 괴상해 보이던 보라색을 막상 발라보니 기존 입술색과 어우러지며 아주 자연스러운 색깔이 나왔다. 2년 전 처음 구입한 그 립스틱을 단종될 때까지 썼으니 여섯 통은 족히 썼을 것이다.
외출 직전 나의 입술색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내 영광의 시절을 닮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색깔을 하루에 딱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서글프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