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first love
필기할 게 많은 수업을 듣다가 옆자리 친구가 화장실에 가면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 저라면 그냥 수업 끝나고 제 필기 보여줄 것 같거든요. 그게 제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선이었는데, 제 앞자리 사람은 다르더라고요. 본인 교재에는 대충대충 후다닥 날려쓰고 몸을 기울여 친구 교재에 직접 똑같이 필기를 해주던데, 그 뒷모습이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왜 저렇게 비효율적인 행동을, 대체 왜. 그래놓고 저는 어느 순간부터 수업은 안 듣고 그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집에 가서도 그 장면을 수없이 되감고 곱씹고. 그거 보고 반했어요, 걔한테.
호의가 몸에 밴 사람들을 좋아해요. 그것도 제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의 호의.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모두에게 친절하잖아요, 저한테만 특별하기를 바라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그 애는 조금 달랐어요. 저에게 호감과 호의를 동시에 준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프린트물을 넘길 때 받기 쉽도록 온몸을 돌려 건네주는 건 호의. 제가 맨 뒷자리에 앉은 날, 제 의자가 교실 뒤편 쓰레기통이랑 너무 가까운 것 같다며 쉬는 시간에 저 몰래 한 분단의 책상과 의자를 전부 앞으로 끌어당겨 놓은 건 호감.
세상은 절대 그냥이라는 단어로 침묵을 넘어가주지 않고, 그 애를 좋아하는 이유도 끊임없이 물어왔어요. 저는 늘 물음표가 어려웠지만 그때는 오히려 세상에게 질문을 되돌려줄 수 있었죠. 이런 사람이 저한테 좋아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제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 애가 그 애라서 좋아한다는 건 세상에게 댈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이유였어요.
그런데 읽다 보면 아시겠죠. 이미 한참 지난 이야기예요. 그 애에 대해 글은 꾸준하게 썼지만 아주 구체적으로 말해본 적은 없는데, 딱 한 번 친구에게 기억나는 대로 전부 들려준 적이 있어요. 와 이거 하이틴 드라마 같다. 이 말이 친구의 감상평. 하지만 저희는 하이틴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어리기도 했고, 뭐랄까, 채도가 조금 더 낮았어요. 저는 그 애 덕분에 산책을 좋아하게 됐는데 만약 미국 하이틴 영화처럼 차를 끌고 다닐 수 있었더라도,
저희는 아마 영원히 영원히 걸어 다녔을 것 같아요.
그 이후로도 좋아한 사람은 많아요. 호감 정도에서 끝난 건 수도 없이 많고, 짝사랑도 해봤고 연애도 해봤고. 하지만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애 외에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늘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그 애가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 제 팔을 살짝 잡아서 당겼다가 저를 잡았던 그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얼굴을 정말 많이 사랑했는데. 사랑 말고는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는데. 이제는 애틋한 감정보다는, 그냥, 제 과거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덕분에 나는 온몸을 돌려 프린트물을 건네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앞으로 다시는 되새기지 않을 거라는 다짐은 못하겠네요. 감정을 대부분 그 애에게 배웠어요. 마냥 좋아서 눈보라 치는 듯한 설렘도, 비 온 뒤의 구정물처럼 찰박이던 미련도. 그 감정들에 너무 오래 잠식되어 있는 건 그다지 편한 일이 아니었어서, 처음 찾아온 공백이 솔직히 말해서 조금 개운해요.
2년 좋아했고 4년 그리워했네요.
그 애는 저보다 빨리 떠났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