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말말

사과의 무게

by 레톤

평생을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아주 친한 사람 몇 명을 제외하면 나는 늘 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 스몰토크가 영원히 제출하지 못할 과제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는 내가 굳이 말을 얹지 않아도 대화가 이어진다는 편안함에 조용히 웃고만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중학생 때 학생회를 하던 시절 한 친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는 왜 그렇게 항상 말이 없어? 그 친구는 아마 몰랐겠지. 그 말이 말수 없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입을 다물게 하는 한 마디라는 걸.


스무 살 이후로 아르바이트를 이것저것 해보다 보니 그런 성향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화장품 가게 직원이나 쌀국수 서빙 알바로 일할 때에는 안 그래도 어려운 '말'이 '일'이 되니 손님이 저기요, 하고 부를 때마다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았다. 대체 왜 무슨 색깔의 립스틱을 살지 스스로 안 정하고 나한테 골라달라고 하는 거지. 대체 왜 쌀국수를 좋아하지도 않는 나에게 자기가 먹을 메뉴를 물어보지. 어린 시절에 뭐 하나 스스로 하는 것 없이 도라에몽한테 찡찡거리는 진구가 짜증 난다며 tv를 꺼버리던 내 성격답게 나는 퇴근시간이 되면 인류애가 바닥까지 하락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다지 무리한 요구도 아니었고, 정작 나조차도 어른스러운 성격도 독립적인 성격도 못 되면서.


그런 내가 유일하게 꾸준하게 일했던 곳은 수학학원이다. 처음 조교로 일하던 학원은 고등학생 대상이었고, 방학특강 때문에 매일 여덟 시간씩 함께 있으면서도 아이들은 서로 대화 한 마디 없이 조용했다. 나에게도 과묵한 건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말수 없기로는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나에게는 오히려 편안했다. 그 적막 속에서도 나름대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었기에. 이따금씩 아이들이 내 책상에 두고 가던 간식이나, 매일 적어내던 수업 일지에 나에 대해 남기던 글을 통해서. 그럴 때에는 나도 채점한 교재의 마지막 페이지에 눈웃음을 섞은 한 마디를 적어 돌려주곤 했다.


근무지를 옮기면서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수학학원에서 일하는 건 다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대다수인 학원이었는데, 어린아이들은 말이 많았다. 정말 많았다. 보조교사인 나는 문제를 풀어주는 시간보다 잡담을 들어주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 잡담은 이 글에 옮겨적으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의미 없는 이야기이거나 괜한 말장난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늘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써 왔는데, 반년쯤 지나니 반말을 쓰게 된 학생이 유일하게 딱 한 명 있었다. 배드민턴 라켓을 책가방에 꽂고 다니는 바가지머리 중학생. 처음에는 모르는 문제를 물어본 후 꼬박꼬박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던 그 애는 공부보다 낙서를 좋아하는 본색을 금세 드러냈다. 그 애의 하루가 어떠했는지 듣고 있자면 나마저도 중학생의 정신연령으로 되돌아가는 기분이라 어질어질했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을 하며 친구랑 투닥거리고, 쉬는 시간 10분 동안 매점으로 달려가 라면을 먹고 오고, 그런 유치하지만 찬란한 일상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애가 별의별 계기를 만들어 말을 걸어올 때마다 즐거운 감정도 분명 있었다. 친척 중에 제일 막내인 나에게 사촌동생이 생긴 기분이랄까. 그래서 퇴근길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종알거릴 때도 있었다. 세상에, 요즘 애들은 초등학생 때도 학잠을 입어. 요즘 애들은 친구끼리 더치페이할 때 동전 세는 게 아니라 계좌이체를 하더라니까. 나는 고등학생 때 체크카드 처음 만들었는데. 그럴 때면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세연아, 진정해. 너도 요즘애들이야. 너 만으로 스무 살밖에 안 됐어.


나는 누구랑 친해지고 싶어도 말 거는 게 제일 어렵던데. 나이 탓만 하기에는 중학생 때도 딱히 발랄한 성격이 아니긴 했다. 그럼 그냥 성격의 차이일까? 너는 내 나이가 되어도 아무 의미 없는 장난을 치며 웃어 보이는 성인이 될까?


이따금씩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하루는 퇴근길에 친구에게 무거운 전화를 걸었다. 나 요즘 걔랑 너무 놀아주는 거 같은데, 이러다 해고당하는 거 아니야? 심지어 나 중학교 문제 풀면서도 가끔 틀릴 때 있어. 고등학생 가르칠 때는 미리 준비를 어느 정도 해 가니까 오히려 안 틀렸는데, 요즘에는 아무 공부 없이 그냥 그때그때 풀어줘서 그런가 봐. 그 말을 듣던 친구는 도라에몽처럼 명쾌하게 내 고민을 대신 끝내주었다. 원래 엄한 건 원장님 몫이고 보조 교사는 좀 놀아줘야지 애들도 숨통이 트이지 않겠냐. 괜찮아, 수능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봤자 아직 중학생인데. 저번에 너한테 대타 맡기신 적도 있다며. 마음에 안 들었으면 진작에 자르셨겠지.


벚꽃이 필 때쯤 어김없이 내 생일은 돌아왔고 나는 스물한 살이 되는 초를 불었다. 4월의 어느 날에도 그 애는 내 옆자리에 앉아 문제는 안 풀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원장님은 그 낙서들을 발견할 때마다 지우라고 꾸짖으셨지만 사실 나는 그 애의 그림실력이 나만 보기 아깝다고 늘 생각했다. 그 애가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을 교과서 삽화인줄 착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잘 그렸으니까.


진지하게 미대 권유를 한 번쯤 해봐야 되나? 그럼 그렇게도 싫어하는 수학 문제들도 더는 안 풀어도 될 텐데. 하지만 내가 괜히 헛바람만 넣는 거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날 그 애가 그린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진녹색 크롭 맨투맨에 레이스 달린 트레이닝 바지를 입던 나. 내 신발을 내려다보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도 워커부츠 앞쪽 노란색 스티치까지 전부 그린 그 애의 그림을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중학생 남자애 눈썰미가 이 정도라고? 진짜 미술에 재능 있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수업 종료령이 울렸고 그 애는 무언가 한 줄을 더 끄적인 채 후다닥 가방을 챙기러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수학 보조 선생님께'


진지한 글씨체였지만 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장난치기 바쁘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도 하고 있었나. 너 존경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는 제대로 알고나 쓴 거야? 하고 물으니 그 애는 어느새 배드민턴 라켓을 대충 찔러 넣은 배낭을 메고 문가에 서 있었다. 내가 퇴근 준비를 마친 후 다가갈 때까지 가만히 그 문을 잡고 있던 그 애는 처음 보는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은 문제 풀다 틀리면 매번 사과하시잖아요. 저는 어른한테 사과받은 거 선생님이 처음이었어요."


말을 어려워하는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말이 있다면 감사와 사과였다. 어색한 사람한테 먼저 인사하는 건 어려워도 그 두 마디만큼은 습관처럼 배어 있어서 인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과에 있어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다.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읽다 보면 사과쟁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알랭이라는 인물은 쉽게 사과하는 것이 치명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에게 나를 비난하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이전에 다른 학원에서 일했을 때에도 내 태도에 대해 원장님께 한 마디 들은 적이 있었다. 애들 문제 풀어주다 틀린 정도로는 굳이 사과하지 마세요. 요즘 애들 꽤 영악해서 그렇게 굽히고 들어가면 선생님 만만하게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대로 사과하는 건 내가 쌀국수집에서 일할 때 배운 신념이자 예의였다. 주방 실수로 일행 두 명 중 한 명의 음식은 이미 나간 상태에서 나머지 1인분은 조리가 10여분 가량 더 늦어진 날이 있었다. 나는 서빙만 담당했지만 손님을 직접 상대하던 사람은 나이다 보니 사과하러 가려고 했는데, 그때 주방 실장님은 내 팔을 가볍게 잡고 본인이 직접 손님 테이블로 가서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제 실수로 음식이 늦게 나올 것 같아요. 다행히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 주셨고 실장님은 사과의 의미를 담은 새우튀김 두 개를 늦은 음식과 함께 본인이 직접 가져다 드렸다. 나에게 서빙을 맡기지 않고 직접.


그래서 내 말버릇을 구태여 고치지 않았는데, 그 애는 그 모습에서 어른을 엿봤구나.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지만 그때만큼은 조금 기뻤다. 그 애가 오래 잡아둔 유리문을 이어 잡고 나오며 생각했다. 그래도 너한테 어른들이 사과할만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 사과는 고작 수학문제 틀린 정도로만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는 뒷사람을 위해 오래도록 문을 잡아주는 이런 다정함만 어른들한테 배웠으면 좋겠다, 라고. 그날 다행히 사과뿐만 아니라 감사도 잊지 않은 채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던 것 같다. 퇴근 기다려줘서 고마워. 집 조심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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