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5월 1일
처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일곱 살 때에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집 근처에 있던 세 곳의 피아노 학원을 들렀다. 이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아? 간단한 상담이 끝난 후 엄마가 나를 내려다봤을 때 나는 고민 없이 한 곳을 대답할 수 있었다. 그곳을 고른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슬리퍼가 예뻐서. 페달을 밟아야 하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특성상 모든 학원에는 실내용 슬리퍼가 구비되어 있었고, 특별할 것 없던 다른 곳과는 달리 딱 한 곳만 나비 모양의 보석 장식이 달려 있었다. 일곱 살 다운 천진한 선택에 엄마는 어이없어하면서도 그래, 거기가 선생님도 가장 상냥해 보이시더라, 하며 내 선택에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슬리퍼는 아주 작은 사이즈부터 아주 큰 사이즈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다만 사이즈가 다양한 만큼 각각의 수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씩 내 발이 두 개는 들어갈만한 아주아주 큰 슬리퍼를 신고 달랑거렸다. 남은 슬리퍼가 그것밖에 없어서. 피아노 의자 위에 앉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너무나도 큰 슬리퍼는 땅 위로 툭툭 떨어졌다. 그럴 때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야, 슬리퍼 나랑 바꿔 신어, 하고.
그 애는 나와 같은 아파트에서 오 년 정도 살았다. 나는 11층, 그 애는 5층. 소꿉친구라고 말할 만큼 친하지는 않았고, 같은 피아노 학원을 다녔기에 마주치면 가끔 이야기하는 정도의 사이였다. 그 애는 나랑 키도 발 크기도 엇비슷했고, 그래서 나에게 큰 슬리퍼는 그 애에게도 잘 맞지 않았을 텐데, 늘 그렇게도 딱 맞는 자신의 슬리퍼를 양보해 주었다. 발 길이도 발볼도 발등 높이도 맞지 않는 신발을 대신 신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무 재질의 업라이트 피아노 앞에서 그 애는 반년 넘게 마리오 카트 ost만 쳤다. 한 시간 내내, 언제나 그 곡만. 그래서 그런지 다른 곡은 단 한 곡도 못 치면서 그 곡만은 수준급으로 잘 쳤다. 열정 없이 성실했던 나는 반대로 클래식 악보집에 있던 대부분의 곡을 어느 정도는 다 칠 줄 알았지만 완벽하게 칠 수 있는 곡은 한 곡도 없었다. 우리 중에 피아노를 더 잘 쳤던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한 시간의 피아노 수업 중 40분 정도 개인 연습을 하고 나면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슨의 시작을 알리는 청아한 목소리. 레슨 순서는 언제나 내가 먼저이고 그 애가 다음이었다. 그렇게 내 연주가 시작되면 순서를 기다리던 그 애는 내 뒤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만화책을 읽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익숙하고도 익숙한 마리오카트 ost가 연습시간 내내 들려오지 않았다. 내 뒤 대기석에 앉아 다리를 흔들던 그 애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발보다 두 사이즈는 큰 거대한 슬리퍼를 질질 끌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나는 레슨을 받으면서도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는 동안 내 옆에서 선생님은 진동하는 휴대폰을 들어 올렸고, 나는 그 통화가 내 궁금증의 답이 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여보세요. 네 어머니. 아이고, 저런.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어머니. 두 손으로 받은 전화를 끊은 선생님께서는 나의 시선을 읽어냈다는 듯이 묻지도 않은 질문의 대답을 한 줄기의 숨과 함께 뱉어내셨다. 그 애 기다리는 거지. 어떡하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오늘은 학원 못 온다네.
열 살보다도 어렸던 나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는 발음만으로도 머리를 댕 하니 울리는 무거운 언어였다. 순간적으로 반감이 들었다. 이게 이렇게 쉽게 들어도 되는 소식인가? 그 애는 이 사실을 과연 나에게 알리고 싶었을까? 그리고 집에 가는 내내 고민했다. 그 애를 학원에서 마주칠 다음 주 화요일에 나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하지?
사흘이 지나고 1층 엘리베이터 앞 계단에 앉아있던 그 애를 만났다. 말을 고르기 전에 말을 건네야 하는 타이밍이 찾아와 버린 것이다. 나는 차가운 계단 난간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한참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책가방이 없네.“
그 애는 흠칫 놀란 듯 나를 올려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툭 떨어뜨려 정면을 봤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인 한쪽 다리를 끝없이 진동하며.
“응, 오늘 학교 안 갔어. 왜 안 갔는지는 비밀.”
“... 잘 다녀왔어?”
“나 여행 다녀온 거 아닌데.”
“알아.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잘 다녀왔어?”
“뭐야, 네가 어떻게 알아.”
“어쩌다 보니 들었어. 내가 괜히 물어봤나?“
“물어봤어? 나 어디 갔냐고? 네가?”
그때 그 목소리에 묻어 있던 감정은 뭐였을까. 성가심? 당황스러움? 역시 괜히 아는 척했나 싶어 나는 황급히 스스로에게 뒤로 감기 버튼을 눌렀다.
“그게 아니라, 너한테. 방금 괜히 질문했나 싶어서.“
그 애는 오래도록 답이 없었고 차가운 난간에 닿은 내 여름의 맨 팔은 점점 저려왔다. 그날의 그 대화는 나에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러니까 질문을 하면 답이 돌아와야 되는데, 끝없이 서로에게 질문만 던지는 이런 대화는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서.
“괜찮지는 않을 거 같아서 괜찮냐고 하는 대신 그렇게 물어본 거였어. 미안.”
적막의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나는 별 영양가 없는 사과를 꺼냈다. 그러자 그 애는 됐다는 듯이 뜬금없는 문장으로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오늘 놀이터에 요구르트 아주머니 오셨냐. 안 오셨어? 그럼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어야겠다.
그 애는 일주일 뒤부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피아노 학원에 나왔고 여전히 마리오카트 ost를 쳤다. 우리의 사이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가끔 인사하고 가끔 신발을 바꿔 신고, 질길 정도로 한결같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 애는 이사를 갔고 우리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이로 아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그날의 대화를 두고두고 후회했다. 인간관계에서 실수한 적도 실패한 적도 아주 많지만 그 대화가 유독 영원히 남을 실패작처럼 느껴졌다. 아직까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이럴 때 내가 어떤 말을 건네야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지. 당시에는 세상의 전부 같았던 엄마에게도 이것만큼은 물어보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그 죽음을 더는 요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If I were in your shoes. 내가 너의 입장이라면. 이 문장이 이렇게 해석된다는 건 중학생 때 처음 배웠다. 왜 하필 신발일까 생각하다 그 애 생각이 났다. 나는 그때 네 불편한 신발을 대신 신어준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아직도 네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 걸까, 하는 마음에.
그때의 고민을 끝내지 못한 채로 십여 년이 지났고 위로가 필요한 비슷한 순간을 맞닥뜨렸다. 재수를 하던 스무 살 시절에 자주 연락하던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모의고사를 앞둔 어느 시점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공부하느라 바쁜가 보다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모의고사가 끝난 주말에 온 연락을 보고 나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답장이 늦어서 미안해. 있잖아, 우리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 너라면 분명 슬퍼할 걸 알아서 괜히 심란하게 만들까 봐 이제야 소식을 전해.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가장 힘들 텐데. 당장 말하지 그랬어, 라고 말하기에는 친구의 말이 정확했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크게 동요했고 친구에게 처음으로 쩔쩔맸다. 이어지는 말들을 보며 친구의 할아버지가 얼마나 오래도록 그리워질 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손녀딸의 기억 속에 이토록 멋있게 남을 할아버지라니. 내가 어떤 추모의 말을 건네야 그 기억에 오점을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아홉 살 때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해외 출장이 잦으셔서 몇 번 만나 뵙지 못했기에 사실 나는 그분의 존안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따금씩 해외에서 선물 택배를 보내주셨고 언제나 유쾌하고 활기찬 분이셨다는 점은 전해 들었다. 나만큼이나 무뚝뚝하고 조용한 외할머니조차 자주 웃음 짓게 만드실 정도로.
내가 만약 그때 충분히 슬퍼했다면
내 앞에서 한 번도 운 적 없는 엄마가
화장대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날 저녁에
무슨 말을 하지는 못해도 안아줄 수는 있었을지.
제사상을 물린 뒤에 약과나 집어먹는 철없는 딸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
그런 것들이 아주 많이 후회된다. 언제까지나.
그때 나는 할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보내주신 택배 속 거울을 몇 년이 지나도록 오래오래 간직하는 것으로 추모를 대신했다. 그리고 여전히 위로에는 별 소질이 없다. 내가 가져본 적 없는 슬픔이 묻은 사람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내 위로는 대부분 인용문이다.
겪어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난다는 게 가끔은 너무 잔인하지 않아?
그래서 가끔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들이 밀려올 때 그게 이전만큼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조금 있다. 내가 지금 이걸 겪으면 나중에, 아주 나중에라도 누군가 비슷한 일로 슬퍼할 때 공감해 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하지만 어설픈 감정들만 얼기설기 엮여있는 지금의 나로서는 그저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너보다 좁은 신발 속에 갇혀 적은 감정을 느낄 테지만 그럼에도 나의 전심이 전해지기를.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이 고민이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어주기를. 그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친구에게 보내던 스무 살의 봄은 여전히 나에게 어려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