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는 혼자서 부산 바다를 보러 갔다. 아무 계획도 없이 지도 위에 숙소 위치와 친구가 알려준 빵집들만 별모양으로 찍어둔 채 떠난 여행이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탈 때마다 사 먹던 주먹밥을 포장해서 달랑달랑 걸어가다 보니 여행의 시작이 실감 났다.
숙소가 광안리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며 통창 카페 2층에 앉아 청포도 에이드를 마셨다. 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시선을 늘어뜨려 아래를 바라보니 거리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가깝게 보였다. 그들의 옷차림과 표정과 행동과, 함께 걷는 사람과의 관계까지. 꽤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나를 올려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당연한 일방성에 그날따라 미시감을 느꼈다. 버스 속에서 행인을 바라볼 때에도 자주 느끼던 감정이었다. 내가 바라보는 나의 세상임에도, 그 속에 내가 없는 듯한 부재감은.
그날밤 침대에 앉아 로제 와인과 감자 샐러드를 먹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나 주문할 때랑 계산할 때 외에는 한 마디도 안 했구나? 혼자 떠나온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살아오던 삶이 갑자기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뒤집힌 기분이었다. 하루를 되짚어봐도 스스로에 대한 기억보다는 산타 모자를 쓴 배달원들과, 인형으로 가득히 장식된 부산 버스와, 검고 차가웠던 파도의 감촉과, 그렇게 보고들은 것들만이 떠올랐다.
사실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만나면 관찰자 시점을 자처할 때가 많았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는지, 각본집 읽듯 복기하게 되어 피곤했다. 비어있음은 있음의 가장 쓰라린 형식이라고 하지만 나는 내가 없는 이야기가 훨씬 더 편안한걸. 굳이 말을 얹지 않아도 이어지는 대화, 나를 주제로 올리지 않는 술자리처럼. 사진의 역설도 그런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내가 찍은 사진인데 그 속에 나만 없다는 거.
다 쓴 물티슈를 껍질 봉투에 그대로 다시 넣는 습관을 한 번에 알아본다거나,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던 와중에 내 립스틱 색깔을 물어온 손님이 있다거나, 그런 관심들을 받으면 대체로 기꺼웠지만 동시에 구석자리로 숨고 싶어졌다. 연필을 똑바로 잡지 못해 생긴 손가락의 굳은살이나, 립스틱이 지워진 혈색 없는 입술도 들킨 적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이번 여행 동안은 스위치를 꺼 버리듯이 나를 향하는 모든 눈꺼풀을 닫아버린 것만 같았다. 둘째 날 아침에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숙소 밖을 나설 수 있던 것도 그래서였다. 세수를 한 뒤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화장품 파우치를 집에 통째로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무언가 바를 수 있는 건 주머니에 챙겨 다니던 선크림과 립스틱이 전부였다. 동행이 있었다면 아마 저렴한 화장품이라도 사서 발랐을 텐데, 혼자였기에 맨얼굴 위로 목도리만 둘둘 두르고 나가기로 했다.
목폴라 니트에 목도리를 겹쳐 두른 것이 무색하게 날씨가 따스해서 한참을 걸어 다니다 3층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로 올라갔다. 어제 간 카페보다 층이 높아서 그런지 2층 발코니의 사람들도 까마득하게 보였고 말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세상에서 한 걸음 더 물러난 기분. 3층에는 나 혼자였기에 에어팟을 빼고 볼륨을 한 칸으로 켠 휴대폰 스피커를 귀에 댄 채 음악을 들었다.
그때 테이블 위에 커피와 함께 올려둔 냅킨 몇 장이 바람과 함께 날아갔다. 영상 9도의 날씨에 갑자기 찾아온 강풍이라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멀리 날아가지는 않고 2층을 향해 떨어졌다. 난간을 잡은 채 내려다보며 주우러 다녀와야 되나, 고민하던 차에 한 중년 남성분이 냅킨 자락을 쥐며 크게 외쳐주셨다.
잡-았-어-요-!
그 순간 막이 탁 깨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없던 나의 이야기를 유일하게 비집고 들어온 외침. 오늘자 나의 대사가 처음으로 시작될 순간. 감사하다고 외치자 그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한번 입 주위로 손을 모으셨다.
저희도- 올라가도- 될까요-?!
그럼요-! 하고 대답하자 가족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는 듯하더니 곧 와글와글 테라스로 올라오셨다. 2층까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냅킨이 떨어진 덕분에 3층도 올라올 수 있다는 걸 알았네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꽤 뜻밖이었다. 가볍게 한두 마디만 나누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바다를 바라봤지만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은, 나도 누군가에게는 관찰되는구나.
내 삶에도 결국에는 관찰자가 존재하고, 또 필요하고, 막상 나를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아마 외롭겠지. 친구들에게 기념품으로 선물하려 무의식중에 구입했던 바다소금향 섬유향수와, 메신저 창에 쌓여있던 크리스마스 인사들을 그제야 하나하나 꺼내 보았다.
여행을 떠나는 게 즐거운 건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어서라는 말이 그때 떠올랐다. 관찰자 시점이 즐거웠던 것도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주인공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만, 동시에 언제나 나는 나를 기다려주고 있으니까.
기차를 타고 다시 1인칭 주인공의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