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값

첫 중고거래 일화

by 레톤

평소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는 내가 유일하게 눈을 반짝이는 대상이 있다면 쇼핑이다. 특히 옷 쇼핑. 방에 있는 옷장 세 개를 가득 채우고도 나는 꾸준히 한 달 소비의 절반 가량을 옷에 투자했다. 친구랑 와인을 마시러 가는 날에는 헨리넥 나시에 줄무늬 셔츠를 걸쳐 입고, 발표를 해야 하는 날에는 롱스커트 셋업에 워커를 신고. 옷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분이 달라지는 느낌이 좋았다. 이러한 선호도 유전이 되는 건지, 그저 취향껏 입는 나와 달리 안목까지 좋은 엄마는 쉰 살이 넘은 지금도 모델 같다는 칭찬을 종종 받을 정도의 패션 감각을 유지하고 계신다. 그래서인지 단 한 번도 내 옷 소비를 말리지 않던 엄마였는데, 신발이 점점 늘어나 신발장에 다 들어가지 않은 채 널브러지자 결국 한숨을 내쉬며 나를 불렀다. 이제 그만 살까, 하고 비적비적 눈치를 보자 엄마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새로 사도 되는데, 살 거면 이미 있는 옷 좀 버리고 사.


그만 사라는 게 아니라 버리고 사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을 머금은 채 옷장을 뒤적거려 보니 일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 버리기에는 조금 아까운데. 한두 번밖에 입지 않아 상태가 좋은 옷들이라 친구에게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갖다 주겠다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몇 분 뒤에 부드러운 거절이 휴대폰 화면을 밝혔다. 너랑 내 추구미가 너무 달라서 나한테는 안 어울릴걸. 그리고 이어서 도착한 새로운 제안. 교내 중고거래 게시판 있는데 거기에 올려보는 건 어때? 어차피 넌 수익이 아니라 처분 목적이니까, 싸게 올리면 금방 팔릴걸.


중고거래를 한 번도 안 해본 나는 결국 다음날 친구와 레몬에이드를 사이에 두고 앉아 머리를 맞댔다. 전공은 경제학이면서 이런 건 하나도 모른다고 핀잔하면서도 친구는 능숙하게 내가 가져 온 옷들을 하나하나 찍어 게시판에 올렸다. 실착용 횟수, 오염 여부, 구입 시기 등등 간단한 정보와 함께 전부 만 원 아래로 올렸더니 금방금방 판매되었다. 아싸, 커피값 벌었다, 하며 신기해하는 나에게 친구는 물건 전달도 직접 할 필요 없이 사물함에 넣어두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직거래였다면 부담스럽다며 차라리 버리는 걸 택했을 나에게는 그저 새롭고 편리한 세계가 펼쳐진 기분이었다.


한 벌 남은 것 같은데, 저건 안 올려? 친구가 마지막으로 가리킨 옷은 주홍색 니트 조끼였다. 저건 나한테 색깔이 안 어울려서 한 번 입고 아예 안 입었는데, 엄마가 예쁘다고 골라주셨던 옷이거든. 그래서 막상 팔려니까 기분이 좀 그렇네. 버리지는 못하겠고, 그냥 두기에는 옷장에서 부피만 차지해서 갖고 나온 건데. 소재나 마감 보는 눈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옷을 살 때 엄마한테 동행을 자주 부탁하곤 했다. 엄마는 특유의 안목으로 홍대 길거리에서도 질 좋고 핏이 예쁜 옷들을 쏙쏙 골라내셨고, 친구들은 이따금씩 쇼핑 갈 때 우리 엄마를 자기한테도 하루만 빌려달라고 농담을 했다. 어느 정도 경험치가 쌓인 지금은 대부분의 옷을 스스로 구입했기에 그 조끼는 엄마와 함께 옷가게를 누비던 마지막 기억의 조각이었다. 괜히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던 나는 결국 그 옷만은 갈색 종이봉투에 접어넣은 채 집으로 고스란히 다시 가져갔다.


다음날 아침 그 봉투를 발견한 엄마는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건 안 팔려서 가져온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엄마가 골라준 거잖아. 팔기 좀 그래서. 잠이 덜 깬 눈으로 살짝 눈치를 보던 나에게 엄마는 뭐야,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어?라고 말하며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팔아. 안 팔리면 버려도 되고. 내가 분명히 말했지만 우리 딸, 이제 옷장 한계치다. 새 옷 더 살 거면 뭐라도 버리고 사.


그래서 그 조끼는 친구 도움 없이 내가 혼자서 판매글을 올린 유일한 옷이 되었다. 역시나 금방 반응이 왔고, 구매처나 기장 등을 꼼꼼하게 물어보는 댓글이 달렸다. 하나하나 대답해주고 나니 몇 시간 뒤에 개인 메시지가 도착했다. 별생각 없이 메시지 알림 창을 연 나는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가격을 깎으려는 연락이었기 때문이다. 황당하게도 몇 천 원 단위가 아니라, 고작 천 원을.


이전에 단 댓글과 메시지의 말투를 보면 예의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말줄임표를 많이 써서 그런지 오히려 쩔쩔맨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도 공손한 말투로 가격 흥정을 하려 드는 거지? 이미 충분히 저렴하지 않나?


평소의 내 성격이라면 귀찮은 마음에 그냥 원하는 대로 깎아준 뒤 팔아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옷은 나에게 의미가 달랐다. 원가도 내가 올린 판매가도 비싸지 않은 옷이었지만 앞자리가 바뀌니 금액이 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런 불쾌한 기분으로 거래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결국 고민 끝에 최대한 공손한 어투로 거절 연락을 남겼다.


죄송하다며 조금만 더 고민해 보겠다던 구매자분은 두 시간쯤 뒤에 새로운 가격을 제안해 왔다. 정말 어이없게도 이번에는 내가 기재한 판매가에서 고작 몇 백 원을 내린 가격이었다. 무리한 부탁을 거듭 드려서 죄송하는 반복된 사과와 함께. 그렇게 죄송하면 부탁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결국 짜증이 차올라버린 나는 쿠션어를 거두고 건조하고 담담하게 답장을 보냈다. 이 옷은 개인적으로 좋은 기억이 담겨 있어서 이런 식으로 흥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 불쾌하다고. 나에게 가격 인하 의향이 없다는 점을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대충 화면을 끈 채로 엎어둔 휴대폰에 세 개의 메시지가 연이어 도착했다. 무례한 제안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금전적으로 조금 많이 힘든 상황인데, 너무 구매하고 싶은 마음에 경솔하게 행동한 것 같아요. 특유의 말줄임표가 사라진 대신 그 줄여진 말들을 하나하나 꺼내놓는 장문의 사과 문자였다. 모든 물건에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 가치를 깎으려는 의도는 정말로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몇 분의 간격을 둔 뒤 도착한 메시지에는 자신의 통장 잔고 금액이 적혀있었다. 내가 게시한 옷의 가격보다 아주 조금 부족한 정도였다. 그제야 왜 그렇게도 필사적으로 금액 조정을 시도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내 상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감수한 솔직함을 마주하자 당황스러움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투명한 진심이 어려 있는 사과에 대한 감상을 이런 순간에 느끼게 되다니.


그 메시지 간격 사이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망설임은 나에게 제대로 도착했기에 기분은 다 풀어진 상태로 답장 내용을 고민했다. 그냥 무료로 드릴까? 이미 나보다 이 옷을 아껴줄 사람을 찾은 것 같은데. 하지만 통장 잔고까지 공개한 사람 입장에서 그건 일종의 적선처럼 느껴질 것도 같았다. 그럼 그냥 가격을 깎아드릴까? 저렇게까지 말하는 사람한테 굳이 제값을 아득바득 받아내야 되나. 하지만 그건 내가 그렇게도 지키려 했던 옷의 가치를 다시 내리는 행동이 아닌가.


기분. 정말이지 그깟 기분 때문에. 나는 감정에 너무나도 잘 휘둘리는 사람이라 기분에 매겨지는 가치가 쓸데없이 값비쌌다. 남들이라면 가볍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을 나는 내 기분값을 챙기느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기분도 그만큼 나에게 중요했기에. 그리고 오지랖일지 모르지만, 이 분은 옷을 살 게 아니라 당장 내일의 식비를 걱정해야 될 것 같다는 약간의 위선 때문에.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생각을 정리해서 길게 답장을 보냈다. 다행히 구매자분은 내 의사와 그 이면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셨고 급여가 들어오면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씀을 남겨주셨다. 적은 급여이지만 판매자님의 소중한 옷의 가치를 지불할 능력은 충분히 생기니까요. 그동안 다른 분께서 구매하신다면 너무 아쉽겠지만요. 그 말을 보고 나는 판매글을 게시판에서 슬쩍 내려두었다. 다른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저 분의 급여일까지 기다려드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작지만 최선인 배려 같았다.


사흘 정도 뒤에 정말로 연락이 왔다. 글이 사라져서 팔린 줄 알았다던 구매자분의 말에 기다리고 있었다고 반갑게 대답할 수 있었다. 속전속결로 계좌번호와 사물함 위치 정보를 교환하며 거래를 마쳤고, 종이봉투에 포장된 옷과 함께 약간의 간식과 쪽지를 함께 넣었다. 정말, 고작 몇백 원 몇천 원 가지고 뭐 하는 짓이람. 지금 내가 마시는 아인슈페너 커피가 방금 입금된 돈보다 비쌀 것 같은데. 유난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거래로 기억될 것 같았다. 다음에는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조금 더 너그럽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사물함에 물건을 넣어둔 뒤 사진을 남기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안에 분홍색 봉투가 있을 텐데,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판매자님 드시라고 간식을 넣어두었어요. 불쾌한 상황이셨을 텐데 끝까지 배려해 주시고 대화로 잘 풀어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로 간식을 주고받으며 요란했던 거래가 산뜻하게 끝났다. 그분이 옷을 입으며 이 기억을 너무 오래 떠올리지는 않으시기를 바란다. 떠오르더라도 많이 나쁘게 회상되지는 않기를. 적어도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내 손을 떠난 그 조끼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주인을 찾아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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