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 1
0.
냉방병
나만 이 계절에 속하지 못했다는 감각
1.
영어 교양 수업의 마지막 날은 개인 발표 시간이었다. 연한 하늘색 눈을 가진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타이머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학생들이 발표하는 동안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서 알려달라고. 이따금씩 감기로 콜록거리면 다 나을 때까지 오늘은 좀 괜찮냐며 꾸준히 물어봐주시던 분이라 어떤 부탁이든 기꺼웠을 것 같다.
내가 시간을 재고 교수님께서 시간을 기록하고, 중간중간 시간이 비는 동안에는 영어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나는 단어와 단어 사이를 겨우 풀칠한 엉터리 영어로 간신히 대답할 뿐이었지만. 넉 달 동안 영어 실력이 크게 늘지 않았음에도 그 이상을 배웠다고 느꼈다. 이를테면 언젠가 특강이 있던 날, 외부 강사분이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자 이건 내 시간이 아니라 학생들의 시간이라며 조용히 웃으시던 뒷모습 같은 것. 내가 가치를 느끼는 건 그러한 순간들이었다.
대학 생활에 유일한 로망이 있다면 휴학을 하고 싶었다. 그냥 인생에 한 번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어서. 매 순간을 초침에 떠밀리듯 살아왔고 대학생이 된다고 해서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일상이 예상보다 즐겁다는 점, 특히 수업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은 약간의 충격이기까지 했다.
가장 좋아했던 수업은 그리스 신화에 관련된 불어불문학과 수업이었는데, 신과 인간의 사랑으로 잘 알려진 에로스와 프시케에 대해 배운 날이 있었다. 에로스를 의심하고 등불을 켜 그의 정체를 살핀 프시케에 대해 금기를 깬 어리석은 인간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으로 가르쳐주셨던 수업. 여러분은 사랑에서도 삶에서도 등불을 켜는 프시케가 되길 바랍니다, 라는 말씀으로 수업이 끝났고 그 말끝에 학생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순간 진심 어린 박수를 올해 과연 몇 번이나 쳐 봤을까 되짚어보았다. 입을 열지 못해서 박수를 치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하고.
그래서인지 기말 시험이 하나 둘 마무리되자 다가오는 종강이 아쉽다는 생각을 조금쯤 했다. 여름을 향해 흘러가는 이 카운트다운이 너무나도 속절없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2.
내가 가장 흐릿했던 시기에 친구는 자기 목숨을 담보로 걸어서라도 나를 붙잡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이 말에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걸려 있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지켜야 할 게 생겨버렸다. 지키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래서 더 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널 담보로 걸었으니까. 너는 내가 남긴 비극을 평생 그림자로 끌어안고 갈 사람이라는 걸 나는 잊어서는 안 됐다.
3.
내 글에 대해 전해 들은 감상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글로 100만큼을 보여주려면 1000 정도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참 대단하다는 칭찬.
그 말에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한 생각을 할 줄 알고 유형의 언어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 이미 글을 써버린 나는 계속 써도 괜찮은 사람인지 가끔씩 고민한다.
4.
이방인의 기분이 익숙했던 여름 동안 복도 끝 통창 앞에 서서 자주 노래를 들었다. 여름보다는 가을밤에 어울릴법한 노래를 듣던 날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고 그는 목재 가루가 날리는 복도 중간에 서서 줄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마주쳐서 얼굴 정도만 알던 사이였다. 나에게 말을 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의 첫마디는 노래 속으로 묻혀버렸고 나는 음악을 끄며 순간적으로 딸꾹질을 했다. 바라만 보던 사람과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그와의 시간을 뒤에서부터 세어보는 버릇이 있다. 서운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아직 사랑이냐고, 캔맥주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묻던 스무 살 때처럼.
하지만 이 모든 문장은 결국 과거형으로 쓰여졌기에
그 오월의 월요일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함으로써 완성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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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가늠하는 일은 늘 어렵지만
적어도 1과 0은 제 때에 맞추어 셀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