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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톤 Sep 06. 2022

사람을 찾습니다

나의 무의식 속 그 사람

꿈을 자주 꾸는 편이 아니다. 꾸더라도 아침이 되면 잘 기억하지 못한다.


평소에는 내 주변 사람들이 등장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어제의 꿈은 무언가 달랐다. 모든 게 낯설었다.


우리 아파트와 옆 아파트 사이에 누군가 폭탄을 설치했다. 그걸 보자마자 나는 뒤로 돌아서서 달렸다.


'어차피 달려봤자 벗어나지 못할 텐데'


누군가 내 머릿속에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달렸다. 굉음과 함께 결국 폭탄은 터졌고 생각보다 그 파괴력이 엄청나지는 않았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고 112에 전화를 걸었다. 조금만 긴장해도 튀어나오는 수전증이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잠잠했다.


스무살 정도의 젊은 남자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경찰이었는지 누구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비현실적이지만 나는 신고를 마치고도 그와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었다.


그는 활발하면서도 요란하지 않았고, 적당한 위트와 센스가 있었다. 내가 낯선 사람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데도 어쩐지 친숙함을 주는 사람이었다.


부모님께서 헐레벌떡 달려오시더니 폭탄이 터진 것에 대한 전후사정을 물어보셨다. 전화를 끊지 않은 채 간단하게 대답하면서, 그가 전화기 너머에 계속 있어주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112'라는 숫자가 떠 있는 휴대전화 화면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다시 112에 전화한다 한들 다른 사람이 받을 수도 있는데. 그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나와 그 사이에 연결된 가느다란 전파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다. 부모님과 짧게 대화를 마친 후 나는 다시 휴대전화에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다행히 아직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그가 나에게 가지는 감정도 아마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임시 거처를 물색하고 있는 부모님을 따라 걸으며 나는 통화를 계속했다. 방금 전 집에 그런 일이 생겼는데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건가? 부모님이 다시 나를 불렀다. 나는 휴대전화에 '잠시만요'라고 말하고 시선을 돌렸다. 부모님은 나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까 112에 신고했을 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궁금해하셨다.


순간 당황했다. 아마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감정을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그가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질 거라고. 우리는 실제로 이상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받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 대해 에둘러 설명했다. 그가 나에게 별 의미를 주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내 인생에서 기억되지도 않을 정도로 짧은 순간만을 차지한 사람인 것처럼 말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를 통해 내 말이 그에게 전부 들릴 거라는 것을. 그리고 내 말이 그에게 상처를 줄 거라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숙소에 도착했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힘주어 닫았다. 아직 통화는 끊기지 않았고, 휴대전화 화면 속 통화 시간은 차근차근 늘어나고 있었다.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대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솔직하게 한 말이 아니었어요. 나는, 난, 그냥...."


그는 나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분노나 원망은 담겨있지 않았지만 사무적인 태도가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그리고 그는,


통화를 끊었다.


처음 겪는 상실감이었다. 곧바로 112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생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제가, 사람 한 분을, 찾고, 있는데요,

아니, 아니요, 죄송합니다. 끊을게요.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와의 통화 시간은 고작 4분 12초경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딘가 먹먹했다. 꿈속에서의 감정에 깊이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그 사람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웠다. 그를 찾고 싶었다.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계속해서 그리고 있었다.


꿈은 억압된 기억을 나타내기도 하기에 그날의 무의식은 그저 지나쳐 버리기에는 무거웠다. 지나온 시간 중 어느 날의 내가 누군가를 많이 좋아했고, 그 감정을 억누르고 억눌러서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나는 많이 비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낸 목소리가 꿈이라는 형상으로 걸어 들어온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사람을 찾습니다. 유쾌한 성격, 차분한 목소리, 나이는 20대 초반, 직업은...


아마도 경찰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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