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후일담들
1. Recipes for rainy days
이 글이 나에게 조금쯤 특별한 이유는 비영리 단체 측에서 홈페이지에 기고하고 싶다며 연락을 준 유일한 수필이기 때문이다. 글을 쓴 지 일 년이 조금 안 된 스무 살에 처음으로 받아 본 기고 제안. 세상 어디에서도 내 자리를 찾을 수 없던 나이에 그 메일이 너무나도 기뻐서 독서실 휴게공간에 앉아 내내 내 글을 다시 읽었다.
여전히 나는 비 오는 날들을 지겨워한다. 그러면서도 물에 깔린 장미 꽃잎들을 발견하면 꼭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다. 어제는 사진첩을 넘겨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는데, 내가 저 글을 쓸 당시에 표지 사진으로 찍은 사진과 똑같은 구도로 올해에도 꽃잎들을 찍어서였다. 영원하지 못할 것들을 좋아하고 슬퍼하는 장마철의 연례행사. 그런 스스로가 가끔씩 좀 바보 같다고 느껴진다.
어제의 새벽에는 곧 나를 떠날 사람에게 편지를 한 장 썼다.
거기는 날씨가 어때?
여기는 아직 비가 와.
2. 말말말
근래에 쓴 글 중에서는 가장 애정이 가는 글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의 전공은 교육학이었는데, 나는 일 년만 겨우 채우고 전과를 했다. 그건 모처럼 영원이라는 시간을 걸고 후회하지 않을 만한 선택이었다.
그 결단의 중심에는 <말말말>의 주인공이자 내게 처음으로 존경이라는 단어를 들려준 학생이 서 있다. 그 애와 있을 때 특별히 내가 더 어른스럽다거나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입장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장난을 말려야 할 법한 상황에서 나는 결국 마주 보고 웃어버리니까. 역으로 내가 배운다고 느낄 때도 많이 있고.
교사라는 위치는 아무래도 정석과 표준을 알려주어야 할 때가 많다. 수업시간에 바른 자세로 앉아 경청해야 하고, 친구들과 서로 배려하며 친하게 지내야 하고. 하지만 나는 교양 수업에 무단으로 두 번 빠지고도 A+ 학점을 받아봤고, 살면서 처음으로 싸워본 친구와 오히려 더 돈독하게 지내고 있고, 그런 식으로 경계를 밟고 사는 사람이라서, 교사가 된다면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애매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대학에 온 이후로 만나는 사람들은 어찌 되었든 나와 공통점이 하나씩은 있었다. 같은 전공이라든가, 같은 취미를 가졌다든가, 그러한 접점이 없다면 만날 기회가 드물었다. 그래서 그 애는 내가 순전한 우연으로 만난 몇 안 되는 인간관계이자 그중에서 꽤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살면서 평생을 부러워한 투명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가족 외식 때문에 한 시간만 수업하고 일찍 간다던 날에 그 애는 교실을 나서기 전 내 책상을 짚고 다짜고짜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고 해주세요.
오늘이 생일이었구나. 생일 축하해- 라고 앵무새처럼 따라 말했을 뿐인데도 그 애는 아주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말이 선물이라도 된다는 듯이. 나라면 엎드려 절 받기 식의 말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못할 텐데.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서도 알아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사람이지. 엎드려서 절을 받았을 때 내내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고. 네- 하고 씩 웃으며 걸어 나가는 구김 없는 태도는 그 애가 나에게 가르쳐주는 뒷모습이다.
이런 것도 어쩌면 우정의 한 종류가 될 수 있겠지. 그 애 덕분에 나는 나의 일을 좋아한다.
3. 분실물 찾기
최근에도 목걸이를 한 번 잃어버린 적이 있다. 스무 살 생일 때 부모님께서 사 주신 금 목걸이. 내가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 중 가장 비싼 것이라 재수생활을 할 당시에는 차도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이걸 팔면 집 밖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종종 헤아려보았다. 그렇게 가출을 상상하면서도 집으로 향하는 버스 위에 매번 얌전히 오르긴 했지만.
요즘에는 나의 일상에 이렇다 할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부모님은 2년 넘게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모르시고 그 정도의 거리감이 집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난데없이 목걸이가 나보다 먼저 집을 나가버릴 줄이야. 가방에 넣어둔 줄 알았던 목걸이가 보이지 않아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차분히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아까 필라테스 수업받을 때 넣어 두었고, 집에 오기 전에 가방을 뒤적거려서 자켓을 꺼냈으니까, 그때 떨어뜨렸나 보다. 지금 시간은 아홉 시 사십 분. 체육 센터가 문을 닫는 시간은 열 시 정각.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는 우산을 들고 슬리퍼를 신은 채 체육 센터로 뛰어나갔다.
뒤에서는 엄마가 언젠가의 그 사람과 똑같은 말을 외쳤다. 잃어버렸어도 괜찮아! 나는 청개구리처럼 살 수밖에 없는 건지 조금도 괜찮지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신 선물이라서? 아니면 쉽게 사고 버릴 수 없는 고가의 물건이라서? 사실 평소에는 그렇게 아끼는 목걸이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파우치도 아닌 가방 속에 대충 던져 넣었지. 잃어버리기 전에 소중함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스무 살에 가출을 꿈꾸던 내가 불현듯 떠올랐다.
우리는 사라지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도 하나 봐.
체육센터 로비와 강의실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목걸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떡하지. 정말 어떡하지. 내 파리한 얼굴을 보고 직원분은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폐장 시간에도 문을 잠그지 않고 기다려주셨다. 정말 잃어버렸나 보네, 체념하면서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동안 한 청소원 분이 다가와 잃어버린 것이 있냐며 물어보셨다. 반지 모양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인데요.. 하는 순간 그분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혹시 이거예요? 하고 물으며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셨다. 이거 맞아요. 결국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속없이 울었고 그분은 많이 놀랐나 봐요, 하고 가만히 내 등을 쓸어 주셨다. 찾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따 데스크에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내가 갖고 있길 잘했네.
로비로 내려가니 체육센터 문 밖에 우산을 쓴 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어쩐지 그제야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4. 귀족 학교를 아시나요
졸업한 뒤로 고등학교에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주 간 편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씩 꼬박꼬박. 다만 그건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을 뵈러 간 것이지, 나는 늘 모교라는 공간에 매스꺼움을 느꼈다. 세상에는 의외로 전체를 빠짐없이 싫어할만한 대상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학교를 통해 배웠다.
늘 혼자 가던 학교에 그날은 친구와 함께 갔다. 후배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 싶다고 말하자 나의 옛 담임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장난식으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비싼 거 사줄 테니까, 애들한테는 그냥 저렴한 거 사줘. 인원수도 많은데. 그러면서 우리에게 끌레도르 아이스크림을 쥐여주시는 선생님과 학교를 천천히 산책하며 그래도, 올해에도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수학 시간에 깜짝 등장한 아이스크림을 보며 후배들은 얼굴에 형광등을 켠 듯 기뻐했다. 선생님은 모의고사를 앞둔 후배들에게 짧은 응원을 전해달라며 잠시 자리를 비켜주셨다. 미리 준비한 말은 없었지만 언젠가 해 보고 싶은 말은 있었기에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재수까지 하고서도 여러분이 선망할 만한 학교에 가지 못했어요. 방황도 진짜 많이 했고, 수능까지 반년도 안 남았을 때 선택 과목 바꾸고 그럴 정도로. 대학 가서도 결국 전과했고, 실패한 것들 투성이라 정말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없이 살았는데,
그런데도 저는 제 지금의 삶에 만족해요.
여전히 내세울만한 성공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 웃을 일만 생기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혹여 그렇지 못하더라도 너무 오래 슬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학교가 당장은 세상의 전부 같지만 그 밖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까.
모두가 원하던 바를 이룬다면 정말 좋겠지. 그렇지만 나를 바라보는 저 눈동자들 중 몇몇은 겨울의 초입에 결국 울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자랑스러운 졸업생들만 만나왔을 그들에게 나라는 반례를 하나쯤 보여주고 싶었다. 나 같은 사람도 어떻게든 잘 살고 있다고.
그날 나와 같이 학교에 갔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다니고 있다. 나는 그 친구와 눈에 띄는 학벌 차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렇다 할 자격지심을 느낀 적이 없고, 오늘 역시도 내 대학 이름을 말하며 딱히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이것도 하나의 성장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고등학생 때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어서,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나아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발버둥 쳤는데. 그날 나는 내가 나인 것에 떳떳했다.
말을 마쳤을 때 아, 너무 꼰대 같았나, 하는 옅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럼에도 후배들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박수를 쳐 주었고, 어느새 교실로 돌아오신 선생님도 따뜻한 연락을 남겨 주셨다. 아이들이 많이 공감하고 격려받고 있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으며, 당신께서도 감동적으로 들었다고.
교실에서 나온 뒤 어쩐지 요란해진 마음에 혼자서 천천히 비 오는 학교를 걸었다. 혼자 있고 싶어서 헤매던 곳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정말이지 숨겨지고 싶었는데. 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창 건물을 그렇게도 저주했는데. 학교가 이제는 그저 너무도 작아 보였다.
정문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에 이르자 눈이 오던 열아홉 살의 겨울이 떠올랐다. 함박눈이 내리던 세 시의 일요일. 통창 앞에 선 채 망설이던 내게 당장 나가자며 팔을 잡아끌던 친구. 쌀포대를 썰매 삼아 신나게 언덕을 내려가던 친구들. 결국 쌀포대는 제자리에 남고 본인만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던 그 풍경. 그걸 보며 깔깔거릴 때만큼은 눈이 그렇게도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오늘은 그저 하염없이 그 눈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하염없이
그 흰 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