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주광성

빛을 피하는 성질

by 레톤

밴드부 합주를 갔던 아주 평범한 금요일 저녁이었다. 퇴근 시간대라 버스가 막히는 바람에 아슬히 뛰어간 것이 무색하게, 합주실 문을 열었을 때는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텅 빈 공기만이 가라앉아 있었다. 손목시계가 가리킨 시간은 일곱 시 일 분. 대체 이 사람들은 언제쯤 지각을 하지 않을까. 물이나 마시자는 생각에 가벼운 헛웃음과 함께 문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내 발목에 닿은 건 두 개의 커다란 회색 눈동자였다. 빛이 맺혔다 흘러갔다 조용히 깜빡이는, 갈색과 흰색 털이 뒤섞인 작은 생명체는 합주실 사장님께서 키우시는 강아지라고 했다. 나는 다음의 움직임을 결정하지 못한 채 잠시 얼어붙어 눈을 잘게 깜빡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강아지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일 자신이 있다. 복실거리는 포근한 외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려움 없이 달려드는 그들의 맑은 사랑이 늘 좋았다. 자신보다 몇 배는 높고 조금도 귀엽게 생기지 않은 인간에게 어떻게 온 마음을 줄 수 있는 건지. 처음 본 낯선 사람마저도 균일하게. 내가 어떤 형태여도 나를 반겨준다는, 사람에게도 기대하기 어려운 맹목성을 그들은 종족의 특성이라는 듯 당연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희한하게 나는 강아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무서워했다. 한 팔로 안을 수 있을 정도의 소형견이더라도 길에서 마주치면 늘 뻣뻣하게 굳었다. 왜일까. 애정하는 대상을 겁내는 게 가능한 마음인가? 그래서 그날도 나는 하반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내 다리에 기댄 강아지를 그저 빤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바라보다'라는 동사가 형용사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뭐랄까, 눈이 맞춰진다는 감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잠시 입을 뻐끔거리다 우리 보리 귀엽죠, 하고 내게 말을 걸어온 사장님께 고개를 돌려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예뻐요. 그런데 혹시... 제가 안 보이는 걸까요?


맞아요, 눈을 다쳐가지고. 그래도 사람 오면 좋다고 그렇게 뛰어 나가요. 사장님의 말처럼 시력을 잃은 회색 눈은 나를 쉼 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초점을 맞춰보려 노력해 보다 결국 그날만큼은 피하지 않고 자리에 잠시 쪼그려 앉았다. 이름이 보리라고 했지. 미세하게 떨리는 오른손을 뻗으며 내 눈 역시도 회색으로 보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거두지 못한 공포의 장막은 분명 탁한 빛을 띨 테니.


손가락에 엉겨 붙는 짧은 털은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인형보다 조금 푸석했다. 등을 쓰다듬어 보니 너무도 가느다란 뼈에 생기가 없어 조금은 섬뜩하게 느껴졌다. 부러질까 봐 무섭다는 말은 괜한 엄살이 아니었구나. 내가 건넨 서투른 인사를 보리는 어떠한 칭얼거림도 없이 반겨주었다.


있잖아, 보리야.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너는 나를 똑같이 봐주려나? 싫어하게 되더라도 비밀로만 해주라. 나는 무언가 마음에 들어차면 도저히 가까이를 못 가겠어. 그래서 네가 대단하고 신기하고 부러워.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좋아하는 것이 생길 때마다 나는

어쩐지 빛을 피하는 바퀴벌레의 기분을 느낀다.


내가 쓰는 글의 밑배경은 대부분 사랑이다. 그 대상은 사람인 경우가 많고, 단 한 번 만났던 사람부터 10년 지기 친구까지 다양하다. 애초에 마음에 드는 대상이 아니라면 언어의 형태가 될 때까지 오래도록 곱씹지 않으니. 요즘에도 잘근잘근 모서리를 씹고 있는 기억이 몇몇 있다. 그중 하나는 선물용 케이크를 사서 집에 가던 날 지하철에서 만난 여성분. 손잡이를 잡고 선 채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니 케이크 윗부분 장식이 떨어져 버렸고, 고민을 거듭하다 일회용 포크를 꺼내 들어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크림 자국이 조금 남긴 했지만 다행히 대충 성공. 그런데 포장을 어떻게 해야 하더라. 원래 리본이 어떤 모양이었지. 로딩이 덜 된 로봇의 자세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옆에 서 계시던 분이 "리본 묶어드릴까요?"하고 상냥하게 말을 걸어오셨다. 순식간에 야무진 손끝으로 리본을 꽉 매어주신 그분은 퇴근길 2호선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나 대신 케이크를 들어주겠다고까지 하셨다. 이런 순간들 덕분에 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아직은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낀다.


차라리 일회성 관계는 쉬운데 말이야. 장기적인 관계에서 나는 열정이 별로 오래가는 사람이 아니다. 쉽게 좋아하는 데에 비해 금방 질려했고 내 사랑에서는 언제나 불량식품 맛이 났다. 어릴 때 나는 혼자 남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 아이였는데, 대형 마트에 갔을 때 엄마가 카트를 두고 오겠다며 나를 의자에 앉혀 둔 10여분을 참지 못해 엉엉 울 정도로 공포가 심했다. 남겨지는 게 싫어서 그 방어기제로 빨리 떠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인간관계에서 먼저 식는 것도 끝을 맺는 것도 대부분 내쪽이었다. 그 한결같지 못함이 너무 싫었고 나는 점점 스스로에 대한 불신 속으로 파고들었다. 종국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시작도 전에 두려워졌다. 내가 저 사람을 상처 입힐 미래가 훤히 보이는 것만 같아서. 나의 하염없는 응시에 마침내 상대가 마주 봐주면 그제야 도망치고 싶어진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나는 그다지 사랑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니까.


취미마저도 원예, 베이킹, 드럼, 사진 등등 정말이지 금방 바뀌는 나였지만 평생 동안 좋아해 온 예외가 딱 한 가지 있었다. 글. 아마도 글. 틀림없이 글. 오랜 시간 나는 쓰는 사람은 아니었고 오로지 읽는 사람이었다. 글자를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않고 넘어간 날은 단 하루도 없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 내가 나를 조금씩 비워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내 머릿속은 늘 나사가 닳은 서랍처럼 덜그럭거리고 그런 스스로를 데리고 사는 게 버거워지는 순간은 자주 있으니까. 그렇게 만들어낸 공석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초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 무엇보다 글을 사랑했다.


동시에 언제나 선을 그어왔다. 이건 영원히 취미의 영역일 뿐이라고. 너무 많이 친해져 버리면 결국 늘 그래왔듯이 싫증을 내지 않을까? 문학의 울퉁불퉁한 단면들을 전부 알게 되더라도 쭉 좋아할 자신이 없었다. 이미 책 내에서도 장르 편식이 심한 편이고, 서평 쓰는 것도 귀찮아하고, 전부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데. 나만의 지독한 짝사랑으로 끝나도 괜찮으니 지금 정도의 마음만이라도 영원히 돌아서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는 나에게 절대로 최선을 줄 수 없었다. 숨어 살던 어둠에서 스스로를 끄집어낸 건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쓰면서부터 시작됐다.


죽음에 대한 상상을 멈출 수 없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던 때, 그때마저도 나는 매일매일 책을 읽었다. 글자에 체할 때까지 닥치는 대로. 해가 조금 흐릿해지면 청계천에 앉아 각종 새들을 바라보며 일기를 썼다. 그러다 보면 일단 하루만큼은 생명이 연장된 기분이었다.


그 일기들을 다듬어 내 책상 밖으로 꺼낸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독자가 생기니 관성처럼 계속 쓰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나의 쓸모를 발견했다. 글은 내가 나인채로 어두운 면까지 남김없이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였다. 내 불안정한 정신과 감정이 깨진 유리조각을 쥐고 있는 것처럼만 느껴졌는데. 무언가 쓸 때만큼은 감정의 밑바닥에서 좀먹어버린 곰팡이들마저도 전부 도움이 되었다. 들추고 싶지 않았던 추한 부분들에 솔직해질 때 누군가는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고, 반대로 나만 보기 아까운 기쁨들을 적을 때에도 함께 미소 지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타인의 글을 읽을 때 그러했듯이.


그래서 결국 나는 글에게 진지해지는 걸음을 주춤주춤 내밀고 있다. 브런치에 올린 글을 지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조금씩 덜 꺼리게 되었고 점점 더 진솔한 이야기들을 적는다. 올해 봄에는 국어국문학 복수전공을 시작했고 글쓰기 모임에 가입했다. 제일 좋아하는 것에는 절대로 가까이 가지 못해 암실에만 숨어있던 내가 조금씩 기어 나오고 있다. 여전히 덜덜 떨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산소를 아껴마시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이것마저 질려버리면 나는 정말로 못 살아.


글을 쓸 때 영감이 어디서 오는지 질문을 받으면 나는 접신한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다행히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쓰고 싶은 말이 불현듯 찾아온다. 대부분의 생물들이 빛을 따라 움직이는 양성 주광성을 갖듯이 꿈을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멋있지만, 나는 최소한 피하지는 않는 노력부터 천천히 해보고 있다.


결국 사랑이 공포를 이겼네. 언젠가 사람의 눈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동안 나는 여행조차도 가장 친한 친구와는 함께 가지 않으려고 피해왔다. 잠옷 차림으로 하나의 생활공간을 공유하다 보면 내가 그 애에게서 싫어하는 구석을 찾아내고 말까 봐. 그래서 5년째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여행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주절주절 솔직하게 말하고 말았다. 너한테는 선뜻 가자고 하기가 조심스러워. 여행 같이 갔다가 사이 틀어지는 경우들 꽤 많잖아. 나도 싸운 것까지는 아니어도 여행은 다시 같이 못 가겠다 싶었던 적이 있어서 너랑은 그렇게 되기 싫어. 그러자 친구는 나도 마찬가지야,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국내여행부터 천천히 같이 가볼래? 너는 휴양 좋아하고 나는 관광 좋아하고, 벌써 이런 부분부터 다르긴 하지만, 나도 국내는 여유롭게 다니는 거 좋아해. 그 말에 나는 결국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국어국문학 수업을 듣던 층에는 목조 디자인 강의가 함께 열렸고 나는 쉬는 시간에 이따금씩 자재들 사이에 걸터앉아 음악을 들었다. 나뭇가루와 함께 잠시 호흡하면 열린 창문 사이로 연한 라벤더 향이 섞여 들어왔다. 라벤더의 꽃말은 나에게 대답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대답을 들고 찾아가는 날까지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글이든 사람이든 내 모든 사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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