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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톤 Apr 02. 2023

04. 자'소설'의 가치

6개월 한정 신소재 공학 지망생

우습게도 면접 학원에서 제일 먼저 했던 건 진로를 정하는 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직업 말고, 면접관의 눈에 띌 만한 직업.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활용할 소재가 많은 직업. 내가 꽤 오랜 기간 선망해 온 '수학 교사'는 그 기준에 전혀 부합하지 못했다.


입시를 시작하기 전에도 주변 사람들은 단지 내 성적이 아깝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의료 계열을 추천했다(중학교 성적만으로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특히나 교사는 저출생 문제가 심화되는 와중에 전망이 좋은 직업은 아니었기 때문에 만류가 더욱 심했다. 친구가 체했을 때 손도 못 따주는 심약한 성격이라 의료 분야는 적성에 안 맞는다고 웃으며 대답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결국 나는 두 손을 들었다. 그래요. 교대나 사범대 안 가면 되잖아요. 별로 이타적인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교육 계열은 적성에 맞지 않았을 거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합리화했다.


근데 저 의대는 정말 못 가요. 성적은 둘째치고 피를 도저히 못 보겠어요. 그런 나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내밀어진 한 장의 카드는 '약대'였다. 그 순간 어릴 때부터 감기에 자주 걸려서 단골이 되었던 약국의 친절하고 다정하시던 약사 선생님이 떠올랐다. 막연하게나마 나도 그런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그 카드를 순순히 받아 들었다. 흥미나 적성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던 이 결정은 고등학교 진학 후의 내가 두고두고 지독하게 후회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진로 역시 면접에는 부합하지 못했다. 너무 흔하다는 게 이유였다. 도대체 그 학교는 어떤 학생을 원하는 건지, 입시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도 전에 기진맥진해 버린 나에게 면접 학원 선생님께서 제안하셨다.


너, 신소재 공학 쪽으로 준비해 볼래? 어때?

공대요? 게다가 신소재?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선택지였다. 혼란스러워하는 나와 달리 선생님께서는 자신만만하셨다. 성비 불균형이 점점 완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공대를 준비하는 여학생이 많지 않다는 점부터, 그중에서도 흔하지 않은 신소재 공학까지, 면접관에게 독특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나는 어떤 과목이든 뚜렷한 기호가 없었기 때문에 신소재 공학에도 크게 거부감은 없었다. 기술 가정 시간에 조금 들어봤던 것 같은데, 폴더블 디스플레이나 방수 소재가 사례로 있었던가.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던 그 시절의 나답게 고작 한 페이지 차지하고 있던 내용을 기억 속에서 더듬더듬 짚어봤다.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신소재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에 조금 설렜다. 그것도 누가 봐도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야에.


네, 그럼 그걸로 할게요.

그 길로 집에 가면서 도서관에 들러 책 한 권을 빌렸다.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을 법한 쉬운 난이도의 신소재 관련 책 한 권을.


용어가 어렵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술술 읽혔고, 의외로 재미도 있었다. 탑 다운, 바텀 업 같은 기초적인 기술 용어부터 그래핀, 풀러렌, 탄소나노튜브 등 다양한 소재들을 보며 어떻게 내 머릿속에 입력할지 고민했다. 결국 가장 나답고 미련한 방법을 선택했다. 책에서 한 가지 주제를 다루면, 그 내용을 정리해서 컴퓨터에 문서로 만들고, 인터넷에서 추가적인 자료를 찾아보고, 전부 다 복사해서 문서 파일에 추가했다. 신소재 공학은 한창 떠오르는 분야였고 연구가 무궁무진했기 때문에 그 정리 과정은 자소서를 쓰고 면접 준비가 막바지를 향해 갈 때도 계속되었다.


기초 과학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론적인 내용을 인터넷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웠기에, 아침 독서 시간에는 신소재 관련 책들을 붙잡고 졸지 않으려고 낑낑거렸다. 최근 연구 동향 파악을 위해 뉴스 기사들도 수시로 찾아보아야 했다. 선생님께서는 주제를 제시해 주셨을 뿐, 그 이후의 모든 과정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이렇게 공부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자료를 수집하는 중간중간에 정리된 내용들을 출력했고, 양면으로 100장이 족히 넘어가는 모든 자료를 '외웠다'.


정말이지 다 외웠다. 입자 크기가 10의 몇 승인지, 이 소재를 찾아낸 과학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까지 전부 다. 그때 암기를 너무 열심히 해서 뇌 용량이 부족해진 건지, 지금은 개념 한 페이지 외우는 것조차 진절머리가 나는데 그 시절의 나는 머리가 좋았던 건지 근성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없다. 내용을 정리하고, 출력하고, 형광펜을 치며 읽고, 말로 되풀이해서 달달 외우며 나를 신소재 사전에 가깝게 만들었다.


자소서에 필요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로 관련 내용은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수학 관련 내용, 사회 관련 내용, 자기 주도적 학습 등등. 이때는 내가 중학교 때 질문이 많은 학생이었던 점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늘 교과서 너머의 내용이 궁금했고, 포스트잇으로 표시해 둔 후 매일같이 전 과목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열댓 개가 넘는 질문을 했다. 그때 중학교 수준을 뛰어넘는 답변을 얻었던 내용들과, 또는 답변을 찾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질문들은 내가 직접 답안을 찾아보며 자소서를 쓰기 위한 소재를 마련했다. 그때 처음으로 논문이라는 것을 읽어봤고, 52페이지에 달하던 논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몇 번을 좌절하고 몇 번을 다시 부딪혔다. 결국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던 내용을 자소서 제출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습득해서 뒤늦게 추가하기도 했다.


나는 노베이스였기 때문에 이 과정이 상당히 고달프고 힘들었다. 남들과 달리 수학조차 선행학습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중학교 수준의 지식으로는 대학 논문이 이해될 리가 없었다. 특히나 수학은 계단식 학습을 거쳐야 하는 과목이기 때문에 더더욱 단기간에 습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문제 풀이는 차치하고 개념만이라도 익히자는 마음으로 수학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새벽에 어쩌다 잠이 조금 일찍 깨면 주섬주섬 이어폰을 꺼내서 강의를 듣고 다시 아침까지 잘 정도로,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데도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외부적 압력은 전혀 없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나에게 노력을 강요하지 않았고, 나는 목표하는 고등학교에 대한 대단한 애정도 없었으면서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굳이 말하자면 동기보다는 관성 때문이었다. 살면서 언제나 1등이었는데 여기서는 노베이스니까 내 자리를 찾으러 가는 것뿐이었다.  당시 내가 습관적으로 하던 말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것이었고,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지켜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면접 학원 선생님께서는 점점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나 홀로 고군분투하며 준비해 온 소재들은 꽤 수준이 높았고, 나름 글쓰기에 자신감이 있었던 만큼 자기소개서의 구조나 형식도 괜찮았기에 초안부터 평이 좋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자'소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 자소서에 적혀있던 그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진 건 면접이 반년도 남지 않은 때였다. 그리고 입시가 아니었다면 아마 영원히 시선을 두지 않았을 주제들이었다. 칭찬을 받아도, 성장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느껴져도 매일 나 자신을 비웃고 자조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지내며 평생 물 위에서 뛰어놀던 발이 처음 모래밭을 밟아본 경험은 텁텁하고 까끌까끌했다.


그런 감정을 다 씻어내지 못한 채, 여름이 끝나기 전 대망의 면접 준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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