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통화를 끝내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by 김준정

아빠의 낮은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있었다.

“네가 그래 혼자 있으니 아빠 마음이 편하겠나?”


우리는 코로나, 아빠의 건강, 운동 얘기를 나누었는데 결국 아빠 입에서 그 말이 나오고 말았다. 연휴 동안 딸은 아빠에게 갔고 나는 혼자 있었다.

“아빠 걱정하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죄송해요.”

지난날의 나처럼 고집스러운 말로 아빠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너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싶지마는 아빠 입장에서 딸이 자기편 하나 없이 평생 혼자 살 거라고 생각하면 어째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나.”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전에는 불쑥 전화를 해서 평온한 나를 들쑤시는 아빠 때문에 화가 났다. 당사자인 내가 더 힘든 줄 뻔히 알면서도 자기 마음 불편하다고 나한테 넋두리하는 아빠가 미웠다. 생각해보면 아빠는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하거나 달래준 적이 없다. 자식 사랑이 각별한 분이지만 아빠는 자식보다 본인이 괴로워서 분통을 터뜨릴 뿐이었다.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을 때 화를 내는 아빠를.

“무릎에 흉터 생기면 나중에 치마도 못 입고 우짤라카노!”

먼저 아프지 않냐고, 괜찮냐고 하는 게 아니라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서 나는 무릎에 피가 나는 것보다 아빠가 더 무서웠다.


치마를 입어야 하니까 무릎에 흉터가 생기면 안 되고, 그게 아빠를 화나게 하는 일이니까 조심해야 한다, 그게 내가 이해한 전부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어떤 일로 기뻐서 아빠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다가 아빠가 보는 앞에서 크게 넘어졌다. 순간 아빠가 화를 낼까 봐 무서워서 울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던 기억이 난다.

"조심해야 된다꼬 아빠가 몇 번을 말했노, 우야노 이거 흉지만 우짤라카노. 인자 치마는 다 입었다, 이래 다리가 험해가 치마 입어 노만 얼마나 보기 싫을 끼고.”


그놈의 치마. 놀다 보면 넘어지는 게 당연하고 그러면서 크는 건데. 오빠한테는 하지 않는 치마 얘기를 아빠는 오래도록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넘어진 사실을 아빠에게 숨기고 말하지 않는 것이.

아빠는 왜 넘어진 어린 딸을 안아주지 못했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흉터에만 연연하고 마음속 상처는 몰라준 걸까? 어째서 아빠는 내가 혼자지만 애써서 딸을 키우고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는 나를 이토록 흔드는 걸까? 그까짓 치마 입지 않으면 그뿐이고 내가 치마를 입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아빠 멋대로 내가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입고 싶을 거라고 단정해 버리는 걸까.


모든 게 그런 식이었다. 시기마다 있는 수많은 돌부리에 넘어지면 괜찮다고,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왜 넘어졌느냐고, 넘어지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고, 네가 넘어지면 내가 이렇게 아프지 않냐고 아빠는 내내 그렇게 말해왔다.


그렇게 자란 딸이 이혼을 결심하고 혼자 사는 길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빠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무릎에 작은 상처를 감추었던 딸이 아빠 앞에 혼자 살겠다고 말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지 아빠는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중간에 몇 번이고 되돌아가고 주저앉고 울기를 수없이 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걸 아빠는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나는 더 이상 아빠를 무서워했던 어린 딸이 아니다. 이제 넘어지면 내가 일어서면 된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건 왜일까. 이제 늙어서 소리쳐도 하나도 무섭지 않은 아빠가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그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 내 무릎에 상처도 못 보던 아빠. 아빠에게 커다란 상처를 줬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자식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부모는 이렇게 자식을 힘들게 한다. 능력 없고 칠칠치 못한 자식은 감당할 수 없는 부모의 커다란 사랑이 버겁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부모가 원망스럽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더 아플 부모 때문에 외롭다. 아빠와 통화를 끝내고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몰라서 못 풀겠는데요 VS 모르니까 풀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