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림이는 입학원서를 쓰느라 친구들과 놀지도 못한다고 했다. 온라인 강의, 학원 숙제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기 싫다고 했다. 그때는 나림이가 안마를 해주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마냥 느긋한 기분으로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음야, 그래그래, 그럴 수도 있지, 거기가 시원해, 거기를 좀 세게 해 줄래?
“내일 수요일이잖아. 친구들하고 놀아.”
수요일은 수학 학원이 없는 날이었다.
“안돼, 원서 써야 돼.”
오… 대단한데? 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나림이 볼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는 거야? 안마하기 싫어서 그래? ”
나림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안마마저 할 수 있겠어?”
농담이다. 헤헤.
나림이는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 때문에 우는 거라고 했다.
“예은이하고 서진이 둘이서 카페 가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어. 나를 따돌리는 것 같아.”
하... 그것 때문이었구나. 내 생각에는 둘이 나림이를 빼놓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나림이는 자기가 바빠서 못 노니까 그런 거라고 했다.
“자기소개서랑 면접이라는 게 잠재력을 보려는 거지 완성된 인간을 뽑는 건 아니야, 초등학교 6학년에게 그런 걸 바랄 리가 없잖아. 감수성과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는 걸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그거라면 지금 쓴 걸로도 충분하다고 엄마는 생각하는데?”
“아빠는 아니래. 개인적인 가정사 얘기가 많은 건 안 좋다고 했어.”
“아빠는 조금 더 격식을 차린 글을 생각하나 봐. 엄마 생각에는 6학년이 그런 글을 쓰는 게 오히려 이상한데? 자기소개서는 개인적인 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무엇보다 네가 쓴 거잖아.”
아직 덜 쓴 부분은 초안을 쓰고 아빠 의견을 구하라고 했다. 며칠을 공들여 쓴 걸 아빠한테 소재부터 잘못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나림이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했을 거다.
“지평선 중학교 안 가도 괜찮아. 그렇게 부담되면 지원하지 말까?”
내가 말했다.
“아냐. 지평선 중학교 갈 거야, 가고 싶어.”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 딸이 어른이 되려고 하는구나…기특하고 대견한데 어째서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품어온 작고 소중한 것이 빠져나가려고 했다. 가슴 한구석이 휑하게 느껴졌다.
“간절히 이루고 싶은 게 생기면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우리 딸이 처음으로 그런 게 생겼나 보다.”
유치원생이라면 마냥 즐겁고 마음이 가벼울 텐데 아이는 앞으로 몇 번쯤 이런 순간을 만나게 될 테고 그때마다 고된 마음을 견뎌야 할 테다. 처음은 두렵지만 한고비씩 넘기면서 조금씩 수월해지기도 하겠지.
“혹시 떨어지더라도 경험이 되겠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할 경험. 네가 떨어져도 좋아. 네가 진포중 학생이든 지평선중 학생이든 엄마는 상관없어.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말 듣기 좋아.”
“무슨 말?”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죽고 싶다고. 죽어버리고 싶다고. 이 세상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그때 딸이 생각났다. 내가 죽으면 딸은 엄마를 잃게 된다. 엄마 없는 아이가 되어서 살아갈 딸을 생각하니 그냥 아무것도 되지 않고 엄마로 살아주자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도 좋지 않아? 그저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있어. 너와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