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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에 삶은 계란이 빠질 수 없지

by 김준정

예은과 서진이가 나림이를 따돌린 것이 맞았다. 주말에 나림이가 놀자고 했는데 둘 다 가족들과 어디를 간다고 하고 만나서 논 것을 나림이가 알게 되었다. 짐작이 의심으로 바뀌고 사실로 밝혀지는 과정에서 나림이는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다.


“어디야? 뭐? 오늘 아침에 나랑 만나서 학교 가기로 했잖아.”

예은이는 나림이와의 약속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나림이는 순간 표정이 굳어버렸고 그렇게 학교를 갔다.


“엄마, 예은이랑 서진이 아침에 둘이 만나서 학교로 왔어. 서진이는 엄마가 태워준다고 나한테 그래 놓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림이가 말했다. 그 외에 자기를 따돌리는 정황을 몇 가지 격하게 말하더니 벌떡 일어나서 제 방으로 들어 가버렸다. 애초에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속에 찬 분을 그렇게라도 터뜨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혼자 있고 싶겠지. 어떻게 해도 나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


2주 동안 나림이는 의기소침한 게 내가 뭘 물어도 시큰둥했다. 방에 자꾸 틀어박혀 있어서 말을 걸려면 딸의 닫힌 방문 앞에 서야 했다.

“배 안 고파? 떡볶이 먹을래?”

“괜찮아.”

나림이가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냄새 풍기면 먹을지 몰라서 문을 열어놨더니 당장 이런 소리가 날아들어 왔다.

“방문 닫고 나가.”

두 번째로 많이 하는 말이다.


수행이 따로 없다, 득도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를 중얼거리며 떡볶이를 만들었다. 예상대로 식탁을 차리고 있으니 녀석이 나타났다.

“계란도 있어?”

떡뽂이에 빠질 수 없는 삶은 계란. 정량은 4개, 정정당당하게 2개씩이다.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녀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계단 두 개를 먼저 먹어치운 딸에게 계란 하나를 줬다. 나림이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냥 넣어둬, 아니 먹어둬. 하는 표정으로 딸을 보고 씩 웃어줬다.

뺏어먹기만 했지 웬만해서는 먹는 걸 양보하는 일이 없는 엄마의 선심에 감동한 나림이가 말했다.

“안마 안 한다.”

밤마다 안마를 구걸하면 딸에게 이런 소리는 듣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시 학교 가는 날이 되었다. (이제 학교는 매일 가는 게 아니라는 게 상식이 되었다)

“엄마, 나 그 애들한테 따지지 않는 게 좋겠지?”

“이야, 초등학교 6학년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니. 넌 역시 진화된 인간이야.”

엄마는 지금도 따지는 인간이다, 넌 정말 대단한 아이다, 마구 추켜세워 줬다. 다른 날보다 긴 하루를 보내게 될 딸에게 기운을 북돋아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나만 빼놓는 걸 눈앞에서 봐야 하고 나를 지켜보는 다른 애들의 눈도 의식해서 애써 괜찮은 척하는 일에 얼마나 기운을 써야 할지.

“엄마가 학교 찾아갈까? 너 대신 따져줄까?”

“엄마가 학교를 왜 가?”


결국 아이의 몫이다. 몇 번쯤 친구들에게 소외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때마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될 거다. 자기의 잘못을 발견하고 후회하는 시간도 있을 테고 어떤 경우는 내가 아니라 상대의 문제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는 날도 있을 거다. 어떤 경우든 가까웠던 사람과 멀어진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고 아무리 반복해도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겠지. 그러면서도 상처 주고 상처 받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진짜 용기라는 것도 알게 되고.


상처 받기가 두려워 문을 닫고 혼자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자신을 병들게 하는 일인지 딸이 알게 되는 날이 올까? 그때쯤 딸은 어떤 일을 겪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그때를 위해 지금의 한 걸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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