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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 국밥

아저씨의 호통

by 김준정

“여기 맞아?”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폐업한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장사 수완은 없어 보이던 부부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3년 만에 ‘평사리 국밥’을 다시 찾았다. 사서고생팀과 평사리공원-성제봉-최참판댁 코스로 산행을 하고 내가 “여기는 꼭 가야 된다”며 끌고 갔다.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길 아래로 계속 내려가다 보니 정말 마지막이다 싶은 곳에 매달리듯 평사리 국밥이 있었다.


3년 전에도 오늘처럼 늦은 오후였고 혼자 하동 성제봉 산행을 한 뒤였다. 지리산 종주를 함께 했던 대장님 카페에서 이 식당을 본 기억이 나서 들어왔고 한 잔에 천 원인 막걸리와 굴 국밥을 주문했다. 밥을 다 먹고도 나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자꾸만 시간을 늦추고 싶어서 일어서지 못했다.


그해 매화가 꽃망울을 틔우는 초봄부터 벚꽃이 만발한 5월까지 나는 매주 하동에 왔다. 지리산으로 둘러싸여 사시사철 포근한 그곳에 가면 누군가의 품속에 안기는 기분이 들었다. 지리산 기슭에 터를 잡은 예술가나 사람들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곳에서는 도시와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는 공방, 찻집, 식당, 빵집이 많다. 찻집인데 들어가 보면 “밭에 일하고 있으니 전화해요.”라고 써놓고 자리를 비운 주인이 있는가 하면 유럽 전통 가정의 방식으로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곳도 있다. 그런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산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해방감을 느꼈다.


결국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서 택시를 타면 나는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녁놀에 물든 섬진강이 그윽하게 펼쳐져 있는 그곳을 못내 떠나기가 아쉬워서다. 출근을 해야 하는 내일이 오는 게 반갑지 않았다.


주인아저씨가 주문을 받았다. 예의 고집 있어 보이는 눈빛은 여전했고 나는 그즈음 있었던 또 다른 일이 떠올랐다. 혼자 평사리 국밥을 갔다 온 이주 후쯤 산우 몇 명과 그곳에 다시 갔다. 산행이 끝날 시간을 어림잡아서 4시로 예약을 했는데 예상보다 산행이 길어져서 5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중간에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많이 처져서 챙기고 서둘러 내려오느라 그만 놓치고 말았다.


따라 오지 못했던 그는 코스가 너무 길고 힘들다고 하면서 이제 내가 공지하는 산행은 절대로 안 갈 거라고 했다. 전날 아침까지 술 마시느라 한 숨도 자지 않고 온 자기 탓을 하는 게 아니라 내 탓을 하는 그를 보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산행시간과 코스, 난이도를 카페에 자세하게 올려놓았는데 그는 읽어보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아무튼 산행은 끝났으니 나쁜 감정은 잊어버리자 하면서 식당에 들어섰는데 주인장 아저씨가 대번에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나, 장사 안 해도 되니까 안 팔아요.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말이야.”

순간 황당해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몸도 피곤하고 간신히 마음을 추슬렀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 화가 치밀었다.

“뭐라고요?”

내가 대거리를 막 하려고 하는데 H가 나를 말리면서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H는 주인아저씨에게 전화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다른 데 가자고 하는 나를 억지로 끌어서 자리에 앉혔다. 그때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지금은 뭐하나?).


그래도 나는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게 맞지만 손님이 안 오면 주인인 전화를 할 수도 있고, 기분 나쁘다고 손님한테 성질을 다 내면 장사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영업이 끝났다든지, 재료가 없다든지로 말로 돌려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역정을 내버리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상한 건 식당을 가지 않던 3년 동안도 나는 그 주인아저씨를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는 거다. 식당을 예약할 일이 있을 때는 시간을 꼼꼼히 계산했고 혹시 늦을 때는 미리 연락하는 걸 잊지 않았다(아저씨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주문할 때 주인이 망설이는 기색이 보이면 얼른 다른 걸로 바꾸는 것처럼 주인의 사정을 살피게 되었다.


그때 주인 부부는 반찬을 미리 담아 놓고 테이블 세팅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혼자 왔다 간 손님이 사람들이 데리고 다시 방문해주는 것이 고마워서 소홀함 없이 챙겨주고 싶어서 다른 손님을 돌려보낸 건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조금의 미안한 기색 없는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주인아저씨는 성이 나버린 거였다.


머릿속으로 그때 일을 떠올리며 나는 제육볶음과 부추전을 달라고 했다. 아저씨도 나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딱 손님과 식당 주인의 거리. 음식 맛은 여전했다. 담백하면서도 재료 본연의 맛이 나는. 짜지 않은데 간간하고 달지 않은데 달짝지근했다. 매실장아찌 하나까지 예사롭지 않은 맛이라 천천히 씹게 되는 곳이었다. 다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남이 삼촌이 식당 벽에 있는 “모든 음식에는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같은 글을 죄다 전라도 사투리로 읽어서 무슨 사투리 번역기냐고 놀리면서 막걸리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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