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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r 25. 2021

애완견도 아닌 개가 입양이 되겠어요?

강아지는 임도 언덕배기에서 마치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엎드려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게 ‘삼천포’를  처음 본 모습이었다.


H와 내가 군산 구불길 3길을 가고 있었다. 최호장군 유지에서 출발해서 40분쯤 걸었을 때 고봉산으로 이어지는 그 임도가 나왔다. 인적이 드물어서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없었는데 땅에서 솟기라고 한 건지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는 도망가기는커녕 H가 쓰다듬어주자 옆으로 드러누워 허연 배를 내밀었다.

“개들은 나만 좋아한단 말이야”

나는 H가 강아지를 과하다 싶게 만져준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아지는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를, 아니 정확히 H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삼 십분 넘게 따라오는 강아지에게 그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훠이훠이 손으로 쫓고 발을 굴리며 겁을 줬지만 내가 보기에는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것 같았다. 양쪽으로 푸른 논이 펼쳐져 있는 한갓진 길에 H와 강아지가 걷는 모습이 정겨워 보이기는 했다.


“너 집이 어디야? 인마. 여기까지 따라오면 어떡해.”

“삼천포에 데리고 가라는 운명이 아닐까요?”


H는 근무하던 회사가 최근에 도산하는 바람에 실직을 하게 되었다. 충격이 채가시기도 전에 그는 바로 직장을 알아봐야 했다. 한 해 재수 끝에 대학을 들어가는 아들, 수원으로 학교를 입학하는 둘째의 대학 등록금과 방세를 마련해서였다. 경상남도 사천시 삼천포, 그가 다음 달부터 일을 시작하는 곳이었다.


“삼천포라고 불러요. 얘 이름.”

“부르긴 뭘 불러요. 지금도 책임져야 할 새끼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구만.”

자식 3명과 고양이 두 마리를 부양하고 있는 그에게 처음 보는 강아지마저 마구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삼천포는 오직 H의 발끝만 쫓았다


H는 강아지를 유기견 보호센터에 맡기면 어떻겠냐고 했다.

“유기견 보호센터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안락사 시킨다는데, 애완견도 아닌 얘가 입양이 되겠어요?”

나는 어디까지나 H를 도와주는 입장이라는 걸 그가 잊지않도록 말투에 신경을 쓰며 동네주민들한테 말해보자고 했다. 방법이 없는 H도 내 의견에 찬성을 했고 우리는 구불길 걷기는 제쳐두고 ‘삼천포의 가족 찾기’에 돌입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개 키우실 생각 있으세요? 이놈이 한 시간 전부터 따라와서요.”

처음 만난 세 명의 할머니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는) 합동 선서라도 하고 온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삼천포를 정말 집에라도 데리고 가야 하나 하는 불안이 엄습해오기 시작할 때 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운동하러 왔는데 따라와? 어이구 고놈 희한하네.”

할머니는 강아지를 쓰다듬기도 하고 (무게를 달듯) 들어보기도 했다. 예감이 좋았다.

“나는 키우는 개가 있고, 이 집에 놀러 왔는디 한번 물어보자고.”

 마실을 나왔다는 할머니가 첫 번째로 방문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할머니는 우리를 이끌고 다른 집으로 갔다.


“개 키워 볼텨?”

할머니는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도 없이 말했고 문을 열고 내다본 주인 할머니는 (당연하게 인사는 생략한 채) 말했다.

“암놈이여, 수놈이여? 암놈이면 새끼 배고 해서 안되아.”

앗! 수놈이면 된다고? 가슴속에 희망이 뭉클 끌어 올랐다. H에게 어서 까보라며 눈짓을 하자 그가 삼천포를 눕혀서 성별 확인에 들어갔다. 할머니와 나의 눈도 삼천포의 배 아래쪽으로 향했다. 암놈이냐, 수놈이냐로 한 생명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H는 말이 없었고, 나와 할머니는 그 침묵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암놈이면 어뗘?”

응원군 할머니가 나섰다. 할머니 잘한다, 맞아요. 중간에 성별이 바뀔 리는 없겠지만 삼천포가 비혼주의거나 동성애견일 수도 있잖아요.

“안되야. 나는 새끼 치고 하는 꼴 못 봐.”

(개) 성차별주의자 할머니도 주장을 꺽지 않았다.


결국 삼천포는 물만 얻어먹고 그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한 팀이 된 우리의 레이다망에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할머니가 많이 등장해서 헷갈릴 수 있는데 마을에서는 오직 할머니들밖에 볼 수 없었다)


“집이 개 키워 볼텨?”

“나 인자 개 안 키워.”

“낯짝도 좋아. 한번 봐 보라니께?”

응원군 할머니는 별로 변변치 못한 삼천포의 얼굴까지 칭찬했고 텃밭 할머니가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이를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밀어붙였다.

“밥 쪼게 갖고 나와봐.”


삼천포에게 밥을 주면 결정돼버리고 마는 걸까. 두 할머니는 밥을 갖고 나오느냐, 마느냐로 실랑이를 할때 H와 나는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H가 조금만 움직여도 생명줄 붙들 듯 따라붙던 삼천포도 담벼락 그늘에서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할머니 그럼 저희 갈게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냅다 소리치고 우리는 차를 향해 뛰었다.


삼천포와 H가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 힘들지 않기를 바랐다. 이전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나도 낯선 길을 가는 건 마찬가지다. 길을 계속 펼쳐져 있고 그저 걸어 나갈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다.

H의 그늘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삼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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