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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23. 2021

넌 나랑 하지도 않잖아

  “내가 안 좋아하는 맛이야.”


보기만 하고 어떻게 맛을 알 수 있는 건지 초밥이가 쑥국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쑥향이 죽여준다며 신이 났던 나는 금세 의기소침해져서 물었다.


“볶음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까?”  

   

생고사리를 넣은 조기조림

지난주는 볶음밥이 평정했다. 브로콜리, 참치, 김치, 명란, 그날 손에 잡히는 대로 들어가는 것만 달랐지 죄다 볶음밥이었다. 이번에는 그간의 불성실을 만회하고자 쑥국과 고사리 조기조림을 만들었는데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반찬투정을 하는 아이에게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며 밥을 주지 않았다는 지인처럼 강경책을 써야 할지, 유일한 손님의 입맛을 맞추는 충실한 식당 주인이 되어야 할지 순간 고민했다.  

   

이전 글에서 말한 대로 초밥이는 우량아 선발 대회에 나가도 될 정도의 체급으로 태어나 감기약까지 맛있게 쪽쪽 빨던 녀석이었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밥을 안 먹어요”라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고 급식인이 되었을 때는 “과일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를 외치며 친구들이 먹지 않는 수박, 멜론을 식판에 수북이 쌓아놓고 ‘과일 돼지’로 입지를 다졌다. 그랬던 녀석이 하루에도 몇 번씩 몸무게를 재고 “내일 아침에 밥 주지 마, 안 먹을 거야”라고 할 줄은 몰랐다.      


2021년, 초밥이는 먹는 것은 빼고 신고, 쓰고, 메는, 몸에 걸치는, 오직 비주얼에 목숨 거는 인간으로 새로 태어났다. 초밥이네 반은 28명으로 여학생은 9명, 남학생이 19명이다. 이것이 변신의 이유였을까.

     

이도 저도 못하게 하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잖아. 널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상처를 주냐는 식의 죄책감을 심으려고.    

<2021 12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김지연 작가의 소설 <사랑하는 일>에서 은호가 아빠에게 하는 말이다. 주인공 은호가 동성애자임을 말하고부터 아빠는 “가족 역할극”에서 벗어난 딸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동성애라는 프레임을 통해서만 바라본다.     

나를 가슴 두근거리게 한 소설 <사랑하는 일>

상가 건물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이전까지 아파트에서 살았던 나는 엘리베이터 없이 장본 것을 들고 3층까지 올라가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한여름에 당시 네 살이던 초밥이와 하루에 몇 번씩 계단을 오르내렸던 기억 때문에 택배기사님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 생수를 배달한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빈약한 경험의 소유자인 내가 다 알 수 없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안다’가 아니라 ‘모른다’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쑥국에 들어간 쑥은 주말에 금성산에서 희남이 삼촌이 “이건 진짜여”라고 해서 뜯은 거였지만 초밥이가 그걸 알 리 없고, 생각해보면 나도 그 나이 때는 쑥국을 먹지 않았다. 초밥이는 학교에서 하는 건강검진이 미스코리아 출전 자격심사인 줄 아는지 아예 곡기를 끊어버렸다. 초밥이의 건강검진과 나의 쑥국은 이렇게나 달랐다.


저는요, 소문내고 싶어요. 점심으로 맛있는 우동을 먹어도 소문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중략) 저도 동네방네 소문내고 자랑하고 싶어요. 동네 사람들 다 모아놓고 잔치라도 열었으면 한다고요. 다들 그렇게 하면서 살잖아요. 근데 저희가 남들은 다 하는 그 잔치 열겠다는 것도 아니고요, 어디 광고하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거짓말 안 하고 살겠다는 거예요.


은호의 애인인 영지가 사람들에게 동성애라는 걸 알리지 말라는 은호 아빠에게 하는 말이다. 말을 하지 않는 건 숨기는 거고, 숨겨야 한다는 건 비참한 일이다. 글을 뭐 하러 쓰냐는 고민은 전업 작가들이 많이 하겠지만 가당치 않게도 나 같은 습작생도 자주 한다(고민할 자격이 있나, 생각하면 조금 우울해진다). 그러다 한 번에 내 마음에 훅 들어와 버린 소설을 만나면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아마도 <사랑하는 일>을 쓴 김지연 작가도 언젠가 이런 뜨거운 경험한 게 틀림없다고, 그래서 글 쓰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고 내 멋대로 믿어버렸다. 누군가가 펼쳐놓은 소설의 품 안에서 울고 위로받았던 사람은 이제 다른 이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펜을 들었을지 모른다. 그 품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기 때문에 계속 써나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대신해 아빠에게 말하는 이 대목이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심지어 영지가 똑똑해서 내 애인도 아니면서 뿌듯하기까지 했는데 소설 속 은호는 “야, 넌 나랑 하지도 않"잖아 라고 해서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가 빵 터져버렸다. 내가 이러고 있는 걸 옆에서 누가 보고 있었다면 무섭다고 도망갔을지 모르지만 책 보다가 울다가 웃는 건 내가 너무나 사랑해마지 않는 시간이다.  

     

“사랑하는데 굳이 섹스까지 해야 할까?”라고 하는 영지 때문에 은호는 고민한다. 우리는 달라 보이지만 결국 같은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내가 하는 고민이 다르지 않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사람을 구분 짓는 커다란 그 무엇보다 보이지 않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자잘한 것들 때문에 우리는 울고 웃는 게 아닐까.


나는 다시 볶음밥으로 돌아갔고 몰래 두부와 시금치를 넣었다가 “그냥 원래대로 하라”는 주문을 들어야 했다.

    

두부와 시금치를 넣은 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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