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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y 26. 2021

영웅 따위는 바라지 않습니다만

최근에 나는 예전에 쓴 글을 고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돼, 제대로 주제를 파고들어야 해라는 마음과 다른 한편에서는 그냥 이 정도도 괜찮을 거야, 하는 안주하려는 마음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기분이다. 이런 생각으로 고치다 보면 글은 이리저리 기운 누더기가 된다. 완전히 새로운 글을 쓴다고 생각하고 뛰어들어야 하는데 써 논 글이 아깝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나만 알고 있는 그 얘기를 나만 할 수 있는데 내가 할 수 없는 상황.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글을 쓰고 다듬는 일은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는 일이다. 요즘에 나는 그 힘겨움에 자주 기권을 하고 복사해놓은 원래의 글로 조용히 되돌려놓고 경기장(노트북)을 빠져나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었다.      


이번에 눈에 띄었던 건 정교하게 다듬어진 문장과 단어였다. 어느 것 하나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었고 그런 진지한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작가가 안내해주는 숲을 걷는 기분이었고 그 길에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놓칠 수가 없었다.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나오는 주인공은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될 만큼 비슷한 캐릭터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이 십 대 후반에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여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어보면 되풀이된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읽을 때마다 새로웠다. 마치 매년 찾아오는 봄이 지겹지 않은 것처럼.     


세 개의 소설 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50여 편의 소설과 에세이가 하나의 나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소설에 필요 없는 단어, 문장이 없듯 그의 소설들을 모아 보면 왜 이때 이 소설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하루키 스스로가 늘 새로워지기 위해 글을 써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소설을 완성할 때마다 하루키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고, 그래서 매번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그는 다양하게 변주되는 삶 속에서 제대로 된 의미를 길어 올리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를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새로워지는 기회를 얻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과거의 경험이 시간이 흐를수록 다르게 해석되는 것은 마치 밑그림을 그려놓고 조금씩 채색을 해가는 과정같다. 어떤 색이 칠해지는지는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다르고 그래도 살아가고 뭐라도 해봐야 하는 이유는 지금의 이 그림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에게 느끼는 것은 무서우리만치 조용하고 상냥하며 맑은 애정이지만 미도리에게서 느끼는 내 감정은 (중략) 땅을 밟고 서서 걷고 숨 쉬고 고동치는 무엇입니다”라고 레이코 씨에게 고백한다. 레이코 씨는 와타나베가 미도리한테 끌리는 마음은 “날씨 좋은 날 노를 저어 호수로 나아가 하늘도 푸르고 호수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라고 한다. “사랑에 빠지면 거기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것도 성실의 또 다른 형태”라고.     


나오코와 요양원에서 가족처럼 지내는 레이코 씨지만, 그녀는 그런 관계를 넘는 조언을 해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가장 소중한 것과도 이별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숙한 인간이었다. 결국 와타나베는 “불완전한 산 자의 세상에서 나는 나오코에 대해 최선을 다했어”라고 하며 미도리에게 전화를 건다. 나오코는 죽었지만 자신은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마지막 부분을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와타나베는 지금도 어디엔가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여전히 일요일이면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면서. 마치 숲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소설에서 이런 생동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위대한 캐츠비>를 꺼내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펼쳐 그 부분을 집중해서 읽곤 했는데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말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도 그렇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이런 걸 누가 읽어줄까, 하는 마음이 들 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 페이지가 펼쳐서 읽는다. 그냥 서문을 다시 읽는 것만으로도 다시 조그만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의 에세이('고양이가 기뻐하는 비디오테이프' 같은)를 읽다 보면,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이야기지만 정성 들여보자는, 대단한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반 보씩이라도 걸어보자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다음 반 보를 걸을 힘이 생길테니까. 한번 리듬을 만들어놓으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고 말하는 그는 그렇게 매일 달리기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5월부터 보연 언니와 채움 선생님들과 함께 발달장애인과 미술작업을 하는 일을 시작했다. 오늘은 홍선생님이 ‘나의 영웅 그리기’를 제안을 했고 뽀빠이,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온갖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가운데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그렸다. 매일 성실하게 글을 쓰는 작가야말로 현재 나에게 최고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실을 하루키 선생님이 안다면 “영웅 따위는 바라지 않습니다만”이라고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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