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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09. 2021

딱 보면 얼마짜리인지 아세요?

수박을 하나  골라 계산대에 내려놓자 사장님이 말했다.

"11,900원입니다.”

“딱 보면 얼마짜리인지 아세요?”

"그럼요, 크기가 다르잖아요."

“아니에요, 9,900원 중에서 가지고 왔어요. 그새 좀 자랐나 봐요.”     


하하하, 과일가게 사장님은 어처구니가 없지만 손님이라서 뭐라고 할 수도 없다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실없는 줄 알지만 가격표가 없는데도 척척 가격을 맞추는 사장님이 신기해서 그랬다.     


사장님이 수박 망을 꺼내려고 할 때다. 나는 “잠시만요!”를 외치고 장바구니에서 지난번에 쓰고 넣어둔 수박 망을  꺼냈다.      


“저 올여름에 이거 하나만 쓸 거거든요.”

아예, 하면서 사장님은 어이없지만 손님이어서 뭐라고 할 수 없다는 아까 그 웃음을 다시 터뜨렸다.

올여름 동안 사용할 수박 망

   

인터넷 쇼핑으로 탄산수 20병을 사고 죄책감이 들었다. 한 병에 350그램인 탄산수가 20병이면 7킬로그램. 그걸 트럭에 싣고 내려서 우리 집까지 배송하기까지 들고 내렸을 택배기사님을 생각하니 탄산이 목에 켁, 하고 걸리는 것 같았다. 늘어가는 빈병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싶었다.  


치즈를 올린 닭발을 딸과 나는 좋아한다. 지난번에 마트에 갔을 때 닭발을 사려고 했는데 온라인 구매를 한 것보다 비싸서 그냥 내려놨다. 다시 온라인 구매를 할까? 고민하다가 스티로폼 박스에 아이스팩과 함께 배달이 될 걸 상상하니 내키지 않었다. 아이스팩은 곧장 쓰레기통에 직행할 거고(아이스팩을 동사무소에서 가져가면 종량제봉투로 바꿔준다는 걸 몰랐을 때다), 스티로폼 박스는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식품을 살 때마다 이래도 되는 건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구매이력이 있는 인터넷 상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콩국수가 5개에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하는 걸 보고 나는 또다시 흔들렸다.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 내게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재료는 소소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간신히 참았지만 어떤 날에는 유혹에 넘어가고 말 거라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만이라도 쓰레기를 줄여보기로 마음먹었다. 비 오는 날 은행에 갔을 때 우산 비닐을 재사용했고 음료수는 대용량으로 구입했다. 인터넷 쇼핑보다는 집 근처 마트를 이용하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녔다.     


사서고생팀과 산을 갈 때 내 차로 이동을 하는데 나는 긴 컵 네 개를 항상 준비해서 커피를 마신다. 갑자기 커피를 사게 될 때를 대비해서 자동차 콘솔박스에 텀블러를 따로 하나 넣어두었다. 한 번은 텀블러가 없어서 일회용 컵에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게 되었는데 그 컵을 헹궈서 콘솔박스에 넣어두기도 했다. 일회용 컵을 아예 쓰지 않는 게 힘들다면 최대한 많이 쓰는 것도 방법이다 싶어서다.


5년 전 지리산 종주를 갔을 때 만난 대장님은 “종이컵, 나무젓가락은 상갓집 갔을 때나 쓰고 산에 올 때는 시에라 컵과 수저를 준비하라”고 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장님의 수저통을 보는데 간지가 흐르는 게 나도 산악인이 되려면 수저부터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알고보니 대장님은 폼생폼사여서 내 배낭을 보고 “그런 건 고사리 뜯으러 갈 때나 메고 다녀라”같은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배낭 각을 잡는 뽕(매트)로 일찍이 배낭각을 잡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폼나는 산악의 수저와 씨에라 컵


아무튼 산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일회용품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각성이 들었다. 나무젓가락, 종이컵이 다 나무로 만드는 게 아닌가. 산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대상을 헤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사랑한다는 건 아껴주고 보살피는 거다. 내 삶을 떠받치는 것들도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일회용품 사용은 갈수록 많아져서 무서울 정도다. 애호박을 하나씩 스티로폼에 싸고 랩을 씌운 걸 보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껍질을 벗긴 옥수수를 세 개씩 까서 스티로폼에 담아서 랩을 씌운 것도 그렇고.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마트에서 옥수수 한자루에 9,900원을 주고 사 왔다. 껍질을 까면서 세어보니 25개. 가끔 이렇게 운이 좋게 싸게 살 때가 있다. 그날 마트에서 싸게 나온 걸로 장을 보는 게 인터넷 쇼핑으로 이것저것 사는 것보다 저렴할 수 있다. 냉동식품을 온라인으로 사서 쟁여두었다가 버리게 된 적도 많았다. 그냥 먹고 싶을 때 바로 사 와서 먹는 게 정답이다. 딸과 나는 옥수수 25개를 삼일에 걸쳐서 알뜰하게 먹었다.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박스를 펴서 버리고, 세탁소에 비닐과 옷걸이를 되가져다주는 내가 좋다. 주변을 살필 수 있다는 건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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