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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24. 2021

실패했지만 실패가 아닌

육구 종주. 2020. 09. 05

에어쿠션이 있는 운동화는 들어본 일이 있지만 워터쿠션은 처음이다. 빗물이 등산화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걸을 때마다 철벅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물의 양은 늘어났고 빗줄기는 거세졌다. 과연 오늘 육구 종주는 성공할 수 있을까?


희남이 삼촌과 윤과는 따로 산행을 가는 일도, 따로 연락을 하는 일도 처음이었다. 우리는 산악회에서 만난 사이로 그 전에는 각자 혼자 산을 다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육구 종주를 하자며 셋이 톡방을 만들어서 일주일 전부터 계획을 세웠다.


모처럼 혼자 산을 갈까 했었다. 다음 주면 산악회 산행을 하는데 또 같이 갈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다. 같이 가면 여러모로 준비하는데 부담이 줄고 비용도 절약되어서 좋지만 같이 가는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호젓하게 산길을 걷고 싶은데 막상 여러 명과 다녀와 보면 기분이 개운하지 못하고 심란해질 때가 있다.


오히려 삼사십 명이 가는 (내가 가는) 산악회는 그런 기분이 덜하다. 어느 정도 타인으로 인식하고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혼자 나설 때마다 서글픈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같이 갈만한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 했다가 어느 날은 혼자가 홀가분하고 좋지, 하는 두 가지 마음이 늘 교차한다. 


새벽 1시 30분에 덕유산 육십령에 도착했다. 윤은 군산부터 운전을 해서 피곤할 텐데도 소풍이라도 온 듯 신나 보였다. 옆에 있는 희남이 삼촌도 콧노래라도 흥얼거릴 표정이었다. 반면 나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육구 종주를 1박 2일로 한 번 해본 적은 있지만 당일로, 거기다 시작도 전에 비가 오는 날 하려고 하니 말이다. 


희남이 삼촌이 앞장서고 다음에 나, 마지막은 윤이 서서 걸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남이 삼촌을 잃을까, 길을 잃을까 걱정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초반에 오버 페이스 하면 끝에 힘들 거예요.”


윤이 뒤따라오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오버 페이스를 하는지 뭐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신발 속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신발은 측우기라도 된 양 시간당 빗물의 양을 정확히 재고 있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12월에 지리산 종주를 갔을 때, 신발 안에 물이 차기 시작해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갑자기 기온이 올라서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길을 걸은 데다 비까지 내렸다. 스패치(발목을 감싸는 등산장비)와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도 소용없었다. 급기야 늦은 오후가 되자 기온이 떨어져 발이 얼기 시작했고 동상은 이렇게 걸리는구나 싶었다. 일단 그날 목적지인 세석 대피소까지는 가야 했다. 대피소에 도착해서 발에 감각이 있는 것부터 확인하고서야 겨우 안도했다.


대피소 내부는 예약자로 꽉 찼고 모두들 젖은 옷을 널어서 말리느라 손바닥만 한 빈틈도 없는 상태였다. 가까스로 내 침상 위 난간에 바지와 티를 널고 젖은 내복 바람으로 밤을 보냈다.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배낭 커버(우천 시 배낭을 덮는 덮개)를 갖고 오지 않은 결정적 실수를 한 탓에 배낭에 있던 옷이 몽땅 젖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빌린 모포로 바람이 안 들어오게 아무리 여며도 한기가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꽁꽁 언 등산화에 발을 집어넣는 순간, 포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계획한 산행을 포기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리산 종주를 시작한 3일 째인 그날 나는 천왕봉이 아닌 거림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몸과 마음이 쳐질 대로 쳐진 채로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내려왔다. 그건 젖은 배낭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시 덕유산이다. 새벽 6시에 서봉에서 일출을 보고 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까 몸이 조금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출발 준비를 하며 양말을 벗어서 비틀어 물기를 짰다. 여분의 양말이 없어서 축축한 양말을 신고 여전히 축축한 등산화 속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마찬가지로 축축한 길을 걸었다.


산행 시작한 지 10시간이 넘어갔고 삿갓재를 지나가다 보니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벤치가 보였다. 그게 꼭 침대 같았는지 앉는다는 게 누워버렸다. “쉬다 오세요, 천천히 가고 있을게요.”하고 말하고 가는 윤을 쳐다보며 모로 누워있었다. 조금 후 산죽으로 사라진 윤이 되돌아왔다.

“뭐 두고 갔어요?”

윤은 내 배낭을 들더니 조금만 더 쉬다가 오라고 하고는 가버렸다.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러다 내가 폭탄(실력이 안되어서 산행을 방해하는 팀원)이 되겠다 싶었다.


내 배낭을 들고 오는 윤을 보고 기다리고 있던 희남이 삼촌은 자기가 들겠다며 배낭을 빼앗았고 윤은 괜찮다며 안 뺏기려고 했다. 내 배낭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니 의좋은 형제가 생각났다. 힘들기는 했지만 헬기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고 배낭 정도는 멜 수 있었지만 둘을 설득할 힘까지는 없었다. 결국 목적지인 구천동이 아닌 안성 탐방소로 탈출하기로 했다.


내 배낭을 메고 한참을 앞서 걷던 희남이 삼촌은 비가 다시 오자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나에게(배낭에 있는) 우의를 주기 위해서였다.  희남이 삼촌은 비를 맞으면서 한참을 기다려도 내가 나타나지 않자 나를 찾아 나선 거였다. 비 맞으면 감기 든다고 하면서.


그날 육구 종주는 실패했다. 그런데 어쩐지 실패가 아닌듯한 이 기분은 뭔지 모르겠다. 육십령에서 안성탐방지원센터까지 24km, 14시간을 걸었다. 


군산에 도착해서 삼겹살이라도 먹고 가자는 희남이 삼촌의 손에 이끌려 ‘아침밥상’이라는 식당에 갔다. 감각이 없는 다리를 끌며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노릇노릇 구워지는 삼겹살을 보고 있는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고기를 밥이랑 싸 먹어봐, 고기가 더 달다니까.”

희남이 삼촌이 시범을 보이며 말하자 윤도 거들었다.

“저도 중학교 때부터 이 맛을 알았잖아요.”

윤이 상추에 밥과 고기를 싼 쌈을 내 앞 접시에 놓아주었다.

“땀을 많이 흘렸을 때는 잘 먹어줘야 몸이 축나지 않아.”

멘트는 희남이 삼촌이 했다. 고기를 먹을 때 밥(탄수화물)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생각에 공깃밥을 시키지 않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각기 혼자 오래 길을 걸어왔던 사람들이 하는 배려는 부담스럽지 않고 따뜻했다. 예전에 혼자 종주를 포기하고 혼자 길을 내려섰던 그때와는 달랐다. 어쩐지 느긋해지는 게 삼겹살에 밥을 넣은 쌈을 연거푸 먹었다.  


(이 일은 '사서고생팀' 결성의 서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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