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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Nov 13. 2021

온수매트는 따뜻하지만

아침밥    

 

알람은 울렸지만 문틈으로 찬바람은 새어 들어오고 침대 위 온수매트는 따뜻하고 아... 이대로 계속 누워있고 싶다... 그러는 사이 알람을 7시 5분, 10분으로 늦추다가 15분이 다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아침밥은 뭐하지, 매일 장을 보는데도 막상 반찬을 하려면 마땅한 게 없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은 콘프레이크에 우유를 줘야겠다 하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오늘 파업으로 급식이 중단된다고 한 초밥이의 말이 생각났다. 점심에 빵을 먹는다는데 아침에도 밥을 못 먹으면... 에효, 김치볶음밥이라도 해야겠다. 우유 대신 김치를 꺼냈다.  

   

엄마의 번민의 결과인 줄 모르고 녀석은 오늘따라 더 잘 먹었다.


“맛있냐?”

“왜 이렇게 맛있어?”

“버터에 김치를 볶아서 그런가, 더 줄까?”

“더 있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알고리즘에 의해 엄마로 이어졌다. 내가 먹은 수많은 아침밥은 엄마가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은 마음을 떨쳐내고 지은 것이었구나.

  

“엄마, 아침에 갑자기 쌀쌀해져서 일어나는데 힘들지 않았어요? 나는 오늘따라 밥하기 싫어서 초밥이한테 콘프레이크에 우유 말아주려다가 오늘 학교에 파업으로 급식 대신 빵을 준다고 한 게 생각이 나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줬어요. 내가 먹었던 아침밥이 엄마의 고단함과 책임감으로 지은 밥이라는 걸 알았어요.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요."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생각날 때마다 마음을 전하는 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것밖에 없다.      




관계    

 

예전에는 학교나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렸지만 지금은 모임을 한다고 해서 선뜻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간의 경험으로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체념과 굳이 상대를 맞추는데 애쓰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작용해서다.     


혼자 산책하고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이 만족스럽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사람이 그립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저 편에는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다.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과 감정이 드니 두 세 사람 정도를 이삼일에 걸쳐 안부와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2, 3 피플, 2, 3 데이' 시스템이라고나 할까.     


가족이 친구라면 좋겠다. 머릿속에 구름처럼 떠다니는 생각을 던졌을 때 땅으로 끌어당기는 대답을 내놓는 사람이 배우자라면 좋겠다. 그런 부부라면 다채로운 대화로 지루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갈수록 대화의 농도는 깊어지고 서로에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과정이 부럽다. 나이가 들수록 익어가고 물들이는 관계는 삶의 기쁨이 아닐까.     


이슬아 작가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처음 읽을 때는 자유롭지만 책임감 있는 사람의 솔직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첫눈에 반한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듯 두번째로 읽었을 때는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어렸을 때 내가 학교에 가기 싫은 티를 내는 날이면 엄마는 얼마나 아프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럼 꼭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주었다. 끊고 나서 나를 꼭 안아주며 물었다. ‘오징어 넣고 부침개 부쳐 먹을까?’”    

 

이슬아 작가는 이 책이 “모녀가 함께 자라도록 도운 풍경을 묘사”하고 “서로에게 독립”하며 “무엇보다도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관계를 벗어나야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슬아 작가는 책에서 엄마를 “복희”, 아빠를 “웅이”로 호칭했다.      


“책받침에 복희 모습을 인쇄해 코팅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복희는 예뻤다”라고 할 만큼 미모와 재능이 있었던 엄마, 가정 형편 때문에 날개를 펼치지 못한 엄마를 아쉽게 그리기도 했지만, 세상에 딸과 이토록 특별한 관계를 만드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있을까 싶었다. 국어 선생님이나 승무원, 탤런트가 아니어도 딸과 ‘우정’을 나눈 엄마도 멋진 것이다.     

 

그런 관계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게 아닐까. 딸과의 우정을 나도 기대할 수 있을까.


나를 못 미덥게 보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는 없다. 학교를 결석하고 부침개를 부쳐먹는 추억을 간직한 친구는 얼마나 소중할까, 그런 따뜻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사람이 우리 엄마라면!   

  

가족 안에서 우정을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과는 조금은 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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