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정 Mar 19. 2022

엄마의 급발진

수업이 끝난 시간은 밤 10시 20분, 뭘 좀 먹어야겠다 싶어서 김치찌개와 낮에 먹다 남긴 떡볶이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평소 이 시간에는 뭘 먹겠냐고 물어도 괜찮다며 방에서 나오지 않는 초밥이가 그날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격하게 말을 쏟아냈다.     


“병원 이름 얘기하니까 택시 기사 아저씨가 안다길래 나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지.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여기 맞는데, 하면서 헤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위치를 알려줬더니 왜 진작 말 안했냐고 되려 화내는 거 있지.”   

  

초밥이가 가려고 했던 곳은 우리 아파트에서 사거리만 건너면 바로 있는 이비인후과 병원이었다.     


“거기를 택시 타고 갔다고?”

“백신 예약 시간이 4시라서 어쩔 수 없었어.”


코로나 3차 백신 예약을 4시에 했는데 학교에서 3시 45분에 집에 도착해서 허겁지겁 달려 나간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해는 된다만 기본요금밖에 안 나오는 데를 두고 멀리까지 가느라 기름값을 버린 기사님한테 미안한 건 어쩔 수 없구나.     


초밥이 입장에서는 자기가 착각해놓고 승객 탓을 하는 기사님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금방 내릴 건데 휴대폰 보느라 어디 가는지도 모르는 녀석의 무신경함과 위험천만한 행동에 나는 불쑥 화가 났다.      

나도 그만할 때는 어른들한테 훈계를 들으면 그 자리에서는 말은 못 하고 속에서 반발심이 일었지. 그래, 일단 녀석의 마음을 달래주고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자라는 생각은 오후 3시부터 그때까지 내리 설명만 해온 나에게 무리였다. 초밥이의 항변을 듣는 중에도 개켜야 하는 빨래, 보미의 빈 밥그릇, 응아 같은, 초밥이한테는 보이지 않고 오직 내 눈에만 보이는 일거리 때문에 짜증이 치밀었다.     


“낼 얘기하자.”

싹둑, 내가 말을 잘라버리자 초밥이는 쌩, 찬바람을 일으키며 제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거실에서 어쩔 수 없었어를 중얼거리며 고요를 반찬삼아 밥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새로 태어난 것처럼 일어나 밥을 차렸다.

“어제는 엄마가 미안했어.”

잘못했을 때는 바로 사과하고,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다가 나의 철칙이다.

“아냐.”

초밥이는 앞으로 사생활을 나한테 얘기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제 우리는 공적인 사이가 되는 거냐고 내가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엄마가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어. 미안하지만 우리 내일 다시 얘기하면 안 될까?”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약 올리는 거냐며 녀석은 더 화냈을 것 같다) 아무튼 갑자기 짜증을 내는 나의 몹쓸 버릇은 고쳐야 했다.



   

설 연휴에 대구를 갔을 때다. 초밥이가 동성로에 가고 싶다고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코로나 감염되면 큰일 난다고 조심하기로 하고 나선 길이었다. 초밥이가 몰래 94 마스크를 덴탈 마스크로 바꾸고(사진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검색해둔 카페에서 사진만 찍겠다고 사정해서 갔더니 마스크를 벗고 사진 찍는 걸 보고 나는 로켓처럼 출입문으로 돌진해서 나가버렸다.     

 

한참을 가다가 뒤돌아봤을 때 초밥이가 허둥지둥 따라오고 있었고 그 모습에 약간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 집에 도착하자 초밥이가 잘못했다고 했지만 나는 내일 당장 집에 가자고 했고 초밥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운할 거라며 나를 달랬다.      


사실 내가 짜증이 난 건 초밥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빠가 운영하다 지금은 오빠가 맡고 있는 공장의 일감이 줄어서 직원을 모두 내보냈는데 최근에 반짝 주문이 늘어서 부모님이 석 달 동안 하루도 안 쉬고 일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온 이틀 동안도 계속 공장에서 일을 한 것 때문이었다. 70대인 부모님이 저렇게 무리를 하다가 큰일이 날 것 같아 걱정되기도 했고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했다. 

  

한 마디만 해도 말다툼이 될 테지만 초밥이는 어떤 말대답도 하지 않고 엄마 원하는 거 해주겠다며 예정대로 이틀 더 있다가 가자고 했다. 부끄럽지만 그날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딸이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이런 사람이 내 딸이어서 다행이어서 그냥 눈물이 흘렀다. 무조건 엄마를 받아주는 딸에게 감동받았고 무언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화를 낼 때는 두려울 때라고, 겁이 나서 지르는 비명과 같다고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화를 내기보다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알고 있다. 나조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 일을 우리 딸이 해줬다.     


우리는 한 가지 이유로 화내지 않는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받아주고 내가 최악일 때조차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그 든든한 힘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에 대한 기대가 큰 나는 그동안 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아왔다. 깊은 우정과 사랑을 쌓을 기회, 나를 들여보고 넓힐 기회. 나는 그저 얕은 경험만 하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나의 기대가 상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딸을 통해 처음 알았고, 무엇보다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먼저라는 걸 배웠다.     


기본 정서가 불안정하고 내재된 화가 많은 나는 평소에는 이성으로 누르지만 한 번씩 부조합이 일어나는 게 아닌지, 나의 도발 원인을 꼽아봤다. 언젠가 초밥이는 엄마가 급발진하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 괜찮다고(봐준다고)했지만, 나는 앞으로도 잘못할 때마다 사과하고 반성하는 일만큼은 열심히 생각이다. 한참 모자란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만든 요리도 열심히


매거진의 이전글 학생들 다시 가출 같은 거 하지 마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