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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y 19. 2022

알바 추천상품에서 발견한 건

세희는 고 3이 되자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생기면 대학 가려고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책 읽으면서 찾아보려고 해요.”

세희는 이렇게 말하고 과외를 그만뒀다.      


몇 달 뒤 세희가 소식을 알려왔다. 원하는 학과를 찾아서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선생님 덕분에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혼자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세희는 학원에서 수업하던 학생이었다. 학원에서 하던 방식(지식 전달)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과외를 시작하면서 ‘추동력’을 키우는 훈련을 생각했다. 앞으로 사교육은 교과보다 학습에 필요한 비인지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훈련은 학원을 폐업하고 소속감없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필요했다. 꾸준히 습작하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과 자기 관리가 필요했다. <긍정의 힘>, <회복탄력성>, <공부머리 독서법>,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등의 책을 읽으며 방법을 찾아나갔다.      


‘새필밤감’은 새벽에 필사하고 밤에 감사일기를 쓰는 것으로 내가 붙인 이름인데 <노인과 바다>, <이방인> 같은 문학 작품을 매일 한 페이지씩 필사하고, 밤에는 하루 다섯 가지 감사한 일을 적는 거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의 저자 김유진 변호사가 만든 스케줄러 ‘타임 투 플랜’으로 하루를 관리했다. 타임 투 플랜은 전날 밤에 내일의 계획을 세우는 건데 리허설 효과가 있어서 다음 날 자연스럽게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잠들기 전, 계획대로 했는지 점검하고 다음 날 스케줄을 짰다. 며칠 빼먹어도 일계표라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는 필사 책, 감사노트, 타임 투 플랜을 세희에게 차례차례 선물했다. 나한테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세희에게도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필사한 인증사진을 주고받았고, 어느 시점부터 세희도 나도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세희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권했지만, 세희처럼 꾸준히 하는 학생은 없었고 몇몇 학생은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이 변화하고자 할 때 나는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아무리 탁월한 방법도 소용없었다. 어리다고 생각이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 가지 훈련을 일 년 했을 때, 세희는 스스로 할 수 있겠다는, 대학을 조금 늦게 가거나 가지 않아도 괜찮고, 배우고 싶은 의지가 있고 나를 관리할 수 있다면 남들과 다른 방식이라도 상관없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동안 사교육을 하면서 성공사례를 생각하다가 세희를 떠올렸다. 명문대 입학이나 남이 부러워하는 직업보다 나를 중심에 놓고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     



얼마 전 뉴스에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이 ‘알바 추천상품’으로 그림과 간단 후기를 상품과 함께 진열한 일이 소개되었다. 재치 있는 문구와 귀여운 그림 때문에 알바 추천 상품이 궁금해서 찾는 손님이 늘었고 매출이 상승되었다.     


화제가 된 직원은 인터뷰에서 또래보다 취업이 늦었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집에서 무기력한 생활을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인근 편의점과 비교해 근무하는 편의점에만 판매하는 상품을 찾고, 차별화할 방법을 고민했다. 여기서 나는 누구나 현재에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딸이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겉으로는 응원한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공부를 못해서 한 선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얼마 전 한 지인이 말했다. 불안한 미래에 자녀가 다수가 가는 길을 가고 좋다는 대학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도 이해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길이고 다른 길도 지지받았으면 좋겠다.


좋다는 대학, 직업을 바라는 마음이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소외하거나 단골 음식점, 세탁소, 마트 주인, 아파트 경비원, 분리수거 업체 사장님처럼 선량하고 성실한 이웃들을 무의식 중에 배제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건 지쳐도 일을 쉬지 못하는 나의 소외로 이어진다. 


과외를 하는 윤이는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조리학과가 있는 특성화고로 전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윤이가 인생에서 수학을 접는데 내가 일조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리사를 꿈꾸는 아들이 저녁밥을 차리는 이야기, <소년의 레시피>를 쓴 배지영 작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전학이나 자격증보다 매일 요리하고 기록하는 게 중요해요. 기록이 쌓이면 마음이 단단해지고 우뚝 설 수 있어요.”     


배지영 작가는 블로그, SNS, 노트에 사진과 레시피를 기록하는 걸 권했다. 나는 배 작가에게 윤이 이름으로 사인을 부탁해 <소년의 레시피>를 윤이에게 선물했다. “끝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 빠지는 경험이 중요해”라는 배 작가의 말도 전했다. 


내가 열심히 해도 거대한 흐름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 시대, 정도만 가기보다 옆길로 새서 관심 가는 분야의 경험을 소소하게 이어가면, 언젠가 일로 확장될지 모른다. 그나저나 과외만 했다 하면 수학을 접겠다, 대학을 안 가겠다고 하니 나도 부지런히 다른 길을 흘끔거려봐야겠다.

나를 중심에 놓고 찾은 길
"작은 일도 특별하게 해보자"고 한 이지우님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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