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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웃어주지 않을 때

by 김준정

“부모보다 유투버 말을 더 신뢰한다니까요.”

“잔소리하지 말래요. 검색하면 다 나온다면서.”


독서모임에서 중학생 아이를 둔 회원들끼리 잠시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는 시간을 가졌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허퉁한 회원의 눈동자가 지금 내 것과 같았고, 우리 집 애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 되는 순간이었다. 천사 같았던(과거형) 아이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 아이는 이제 마음속에만 있었다.


초밥이가 방과 후 수업을 하기 전 나는 아이스크림 열 개를 담은 비닐봉지를 학교 앞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고 전화로 가져가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짧은 다리의 초밥이와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스크림을 따려고 제자리 뛰기를 하는 모습을 나는 길 건너편에서 지켜봤다. 친구가 초밥이 다리를 잡고 손을 뻗어 드디어 아이스크림 내리기를 성공했을 때 나는 초밥이를 불렀고 녀석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기억나?”

된장찌개가 칼칼하다며 후루룩거리고 있는 초밥이한테 물었다.

“안 나는데.”

이런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물색없이 좋아하다 나만 상처받는다. 찌개는 초밥이 걸 먼저 뜨고, 땡초, 고춧가루를 넣고 먹었는데 어느새 초밥이는 매운 걸 시원하다고 한다. 순한 국물 같은 아이는 이제 없다.



화창한 주말, 나는 대야 오일장을 가자고 했지만 초밥이에게 간단하게 거절당하고 <서울괴담>을 보러 갔다. 너도 오일장 같은 곳은 가고 싶지 않겠지만, 엄마도 하지 않아도 될 공포를 경험하고 싶지 않거든.


영화 보기 전 신전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엄마 때도 떡볶이 있었어?”

얘는 무슨 내가 무슨 조선시대 사람인 줄 안다.

“내가 신전 떡볶이의 전신, 신천 떡볶이부터 먹어온 사람이거든.”

KakaoTalk_20220521_191725354.jpg 떡볶이 역사를 알려주는 중

이제야 떡볶이의 역사를 알려줄 때가 왔다며 대구 '마약 떡볶이'부터 예전 남자 친구가 나와 떡볶이를 먹으면 모자란다며 “네가 보통 여자들처럼 먹으면 진짜 날씬하겠다”라고 했을 때 내가 “보통 여자들처럼 먹을 수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라고 했던 일화까지, 떡볶이 국물만큼이나 가득한 추억을 초밥이에게 전했다.


오랜만에 초밥이와 영화관에 나란히 앉아있으니 좋긴 했다.

“애기들은 영화관에 오면 무섭다고 울거든. 근데 넌 한 번도 안 울었다?”

“그 얘기 백 번도 더했어.”

“무슨 본인한테 얘기하는 것도 안 되냐?”


영화는 10편의 단편으로 이어졌는데(당연히 좀비물도 있었다) 나중에는 끝이 안 날까 봐 무서웠다. 나는 눈감고 귀 막고 있느라 나중에 온몸이 뻐근했는데 초밥이는 재미있었단다. 내가 공포영화를 안 보는 이유는 혼자 있을 때 귀신이 나올 것 같아서인데 일주일 후 실제로 그 일은 일어나고 말았다.


새벽 4시, 등산 갈 준비를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을 때였다. 펄럭거리는 머리 사이로 가느다란 손이 들어오더니 왼쪽 어깨를 툭툭 치는 게 아닌가. 아아악, 나는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고 파우더룸 문틀에 하얀 얼굴에 눈썹이 없고 까만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밥이었다. 초밥이라는 걸 알고도 비명이 멈추질 않았다. 새벽 4시에 절대 일어날 리 없는 녀석이 거기 서있는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귀신이 입을 열었다.


"만원만 주고 가."

KakaoTalk_20220521_191352494.jpg 진짜 간 떨어질 뻔했거든

예전 우리 같았으면 몇 번이고 배를 잡고 웃었을 이 일로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게 될 줄 몰랐다. 어떤 순간에도 너와 농담을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네가 더 이상 웃어주지 않는 때가 오리라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이렇게 서운할 줄 알았더라면 널 더 많이 안아주고 웃겨주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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