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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초밥

by 김준정

초밥이가 학교에 근처만 가도 말도 못 하게 냄새가 나는 아이가 있다고 했다. 어깨에 비듬이 눈처럼 내려있고 손톱은 검은색 프렌치 네일을 한 것처럼 때가 끼여있단다. 한 번은 그 아이와 나란히 앉아 로봇부품을 같이 사용해야 했는데 냄새를 참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고 했다.


급식시간, 깐족거리기로 유명한 A가 앞에 말한 아이에게 말했다.

“넌 여기 앉아, 옳지, 잘했어. 절대 이쪽으로 오지 마.”

A는 초밥이 옆에 찰싹 붙어 앉더니 주변 아이들은 물론 당사자까지 들릴만큼 큰 소리로 “쟤 냄새 완전 구리지 않냐? 완전 밥맛 떨어진다니까.”라고 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조롱한 것도 모자라 면전에 대고 무안 주는 A가 초밥이는 어이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발끈했다.

“너는 어떻게 사람을 대놓고 까냐? 나는 네가 더 구려.”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A는 잔뜩 억울한 얼굴로 17 다음 숫자를 말했고, 초밥이가 재연하는데 그 표정과 말투가 웃겨서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이건 글보다 영상이 어울리는 상황인데 아쉽다. 초반 프렌치 네일에 대한 상세한 묘사 덕분에 반전이 있는 이야기였다.


내가 영화 <그대가 조국> 봐야 한다고 하니까 초밥이가 아빠랑 봤다고 했다.

“그거 영화도 아니고 뭐야?”

“극영화가 아니고 다큐멘터리라 그래.”

“조국이 이름이라는 것도 중간에 알았어. 제목 보고 나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이야기인 줄 알았어.”


초밥이는 조국 아저씨가 영화배우인 줄 알았단다(그럴만하지). 멀티 플랙스 영화관이 아니라 광주의 한 오래된 영화관에서 관람했는데 영화관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환풍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공기는 탁하고 지붕은 낮고 의자는 불편했다고 불평 퍼레이드를 했다. 오랜만에 좁은 공간에 사람들과 밀집해 있는 데다 영화가 지루해서 결국 끝에 30분은 밖에 나와버렸단다.


“광주가 5.18 민주 항쟁이 있었던 도시잖아. 검찰의 표적 수사 같은 공권력으로 개인이 희생되는 일이 광주 시민들에게는 더 크게 와닿았을 거야. 그래서 시민들이 많이 관람했나 보다.”


초밥이 아버님이 그 영화를 보러 간 것도, 오래된 영화관을 찾은 이유도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묻히지 말아야 할 일을 영화로 기록했듯 잊지 않고 있다는 걸 서로 확인하는 일도 필요하다. 초밥이에게는 탁했던 공기 속에 분노와 결기가 섞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날이 있을 거다. 시간이 흘러 어떤 순간에 아빠가 왜 그 영화를 보자고 했고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왜 옛날 영화관이었는지 떠올리는 날이 있겠지. 초밥이가 투덜거렸다고 아빠한테 혼났다고 하지 않는 걸 봐서 초밥이 아버님도 그때를 기다린 것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초밥이 아버님이 <그대가 조국>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다고 했다.


서점 <봄날의 산책>에서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이 ‘작가와의 정담’의 작가로 초청되었는데 이번에도 나는 어김없이 질문했다(나는 강연에 가면 꼭 질문하는 사람이다).


“공부도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건데 미술, 체육을 못하면 재능이 없다고 하면서 영어, 수학을 못하면 노력이 부족하다고 하잖아요. 공부로 줄을 세우는 교육제도에서 자녀가 열등감을 가지지 않고 공부가 아닌 재능을 발견하고 키우게 하려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르치려 하지 말고 부모가 삶으로 보여주세요.”

김승환 교육감의 대답이었다.


부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자녀는 알고 있다. 공부 말고 다른 걸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해도 실제 부모의 진심은 자녀들은 귀신같이 안다. 그래서 부모님한테 물어보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할지 뻔하니까. 부모가 무엇을 높은 가치로 두는지 아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부모님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상처받는다.




4월에 초밥이가 한 학생을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 신고했고, 한 달 후 상대 학생이 초밥이를 학폭위에 신고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엄마로서 초밥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변호하고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게. 하지만 그렇게 해도 네가 하지 않은 일이 한 걸로 될 수도 있어. 살다 보면 그런 일은 종종 벌어지거든. 그것 때문에 네가 전교 부회장을 하지 못하게 되고 억울하더라도 처음에 신고한 걸 후회하지는 마. 너와 피해받은 다른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앞으로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다음에 누군가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네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건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피해 관련 학생, 가해 관련 학생 학부모로 학폭위에 출석하면서 이 경험이 나와 남한테 도움이 되도록 하자고 다짐했다.


아직 학폭위는 진행 중이고 아무것도 결론 나지 않았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심란하지만, 초밥이 아버님과 이번 일을 아이가 쉽게 생각해서도 안되지만, 겁먹지 않도록 분위기는 밝게 하자고 합의했다. 엄마, 아빠가 네 옆에 있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이 과정이 큰 공부가 될 거라고 (쉽지 않지만) 삶으로 보여주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대가 초밥’ 이라는 영화로 기록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결론이 나면 감독이 아닌 에미로서 글을 남길 생각이다. 다사다난한 하루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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