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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야

by 김준정

시험 첫날, 초밥이가 전날 초저녁부터 자기 시작하더니 내가 수업이 끝난 밤 10시에도 자고 있었지만, 너에게도 다 계획이 있겠지 하고 나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녀석이 박제된 것처럼 자고 있어서 깨웠다.


“어, 뭐야? 11시에 알람 맞췄는데 어떻게 된 거야?”


30여 년 전 나에게도 일어났던 일이 돌림노래처럼 이 아이에게 찾아왔고, 이 순간에도 나는 당사자가 내가 아니라 안도하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초밥이가 식탁에 프린트 뭉치를 펴고 뭔가 외우기 시작했고 나는 그 앞에 돈가스가 담긴 접시를 가만히 놓아주었다. 거실에는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떠다니고 금방이라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싸한 기운이 감돌았다.


“데려다줄게.”

나는 입은 자크로 채우고 차키만 챙기면 된다.

“차라리 이게 나아. 오늘 치는 건 괜찮거든. 내일이 중요해.”

그래, 우리에겐 내일이 있지. 멘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녀석이 어째 짠했다. 그날 초밥이는 숙면 덕분에 새로 태어난 것 같은 컨디션으로 학교에 갔다.


집에 돌아와 초밥이는 저번보다 오른 점수를 말하면서 생각보다 잘 봤다고 했다. 물론 이전에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점수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침에 엄마가 왜 이제까지 잤냐고 안 한 거 잘했지?”

“엄마가 왜 그런 말 하는데?”

그러게. 잠시 누웠을 뿐인데 눈 떠보니 시험날 아침인 사람이 제일 속상한데 내가 뭐라고.




질곡의 시험기간이 지나고 방학하는 날이 되었다. 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2학년 학부모님들께 안내드립니다. 오늘 방학식을 맞이하여 학기말 성적표를 아이들 편에 보내드립니다. 학부모님들께서는 열심히 노력한 아이들에게 따뜻한 격려 부탁드립니다.”

KakaoTalk_20220722_064043315.jpg 얼마나 놀랐으면


“엄마엄마엄마어맘마어아어머머머머멈마마마마마머멈머”

초밥이한테 카톡이 오더니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전교 19등 했어.”

“엥?”

“담임 선생님한테 나 몇 등했냐고 물어봤거든? 선생님이 ‘나인티? 나인틴?’이라고 해서 90등요? 했더니, 아니 19등, 그랬어.”

“어떻게 된 거야?”

“지필이 다가 아니라니까. 나 수행평가 진짜 잘 봤다고 했잖아.”

“대단하다. ”

“이게 나야.”


“네 인생에 아직 100점은 등장하지 않았어. 그지?”

이렇게 놀렸는데 맨날 무슨 모둠 발표를 제일 잘했다, 쪽지 시험 본다고 해서 밤을 새웠다, 초밥이가 이런 말을 했는데 진짜 열심히 했나 보다. 지필고사는 90점대 하나, 나머지는 50점에서 80점대의 자유분방한 점수를 받았는데 말이다. 수행평가는 변별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학교는 변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전교생 150명 중 19등은 백분위 상위 12퍼센트로 고교 등급제로 따지면 3등급에 해당된다. 거기다 중학생 절반이 특성화고 진학하는 걸 감안하면 두 배인 24퍼센트로 보는 게 맞다. 따라서 초밥이의 성적은 4등급. 자만하지 않도록 초밥이한테 이런 말을 했냐 하면, 설마.


“소진이가 전교 일등 했는데 걔 진짜 잘하나 봐. 그 정도로 잘하는지 몰랐는데.”

“왜 이래. 넌 매 순간 일등이었어. 시험에서 한 번 일등 한 게 아니라 모든 날 모든 순간 일등이었다고.”

초밥이가 나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KakaoTalk_20220722_063804908.jpg 네가 체육인이라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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