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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바닷가에 놀다 갈까?

by 김준정

초밥이가 친구들과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소노벨 오션 플레이에 가는데 데려다 달라고 했다.


“수업 마치면 1시인데 그때 가도 돼?”

“애들한테 말해볼게.”

잠시 후,

“애들이 엄마 최고래. 올 때는 버스 타고 올게.”

“아냐. 엄마 선운산 올라갔다 데리러 가지 뭐.”

“진짜?”


다음날 아침, 긴급 톡이 와있었다.

“영지 아빠가 아침 8시 30분에 태워다 주시기로 했어! 혹시 군산에 올 때 엄마 선운산 천천히 갔다가 잠깐 들러서 우리 태워줄 수 있을까?”

혹시, 천천히, 잠깐, 태워줄 수 있을까, 평소 쓰지 않는 배려 넘치는 단어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거실에서 커피물을 올리는데 초밥이가 잠이 덜 깬 얼굴로 나왔다.

“엄마 카톡 봤어?”

“어, 갈게”

초밥이는 안심하고 다시 자러 들어갔다.



에버랜드 가던 날, 초밥이는 새벽부터 화장하면서 “완전 신나”를 외쳤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친구들과 내내 카톡 하며 킥킥댔다.

“애들 다와데. 놀러 간다니까 엄청 일찍 와.”

“우리도 진작 출발할 걸 그랬다.”

“아냐. 미리 가면 멋없어.”

참내.


학교 정문에 서울 나들이에 들뜬 아이들이 참새떼처럼 모여있었다. 초밥이가 내리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와, 함성을 질렀다. 나는 출발하지 않고 장난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친구와 함께라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정한 즐거움이 있는 순간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집에 복귀한 초밥이한테 “네가 나타나니까 애들이 함성을 지르더라”했더니, “다른 애들한테도 그래”라는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서비스는 확실하게.

나는 수박 한 덩이와 돗자리, 수건 6개를 챙겼다. 수영장 앞에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그동안 이름만 들어왔던 조직원들의 실체를 보는 순간. 아이들은 한 명씩 차에 타면서 일사불란하게 이름을 말했다. 어, 그래, 어서 와, 네가 00이구나, 반가워. 끝. 인사를 하고 나자 우리에게 더 이상 할 얘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정적을 깨는 한마디를 던졌다.


“온 김에 우리 바닷가에 놀다 갈까?”
“네!!!”

귀 찢어지는 줄 알았다. 곧장 군산에 갈 거라 예상했던 아이들은 나의 제안을 격하게 반겼고, 그 와중에 나의 동거인만 피곤하다며 집에 가자고 했다. 조직원 4명은 무슨 소리냐며 놀다 가자고 윽박질렀고, 초밥이를 뺀 모두는 바닷가를 가는데 일제히 합의했기에 나는 차를 변산 채석강으로 몰았다.


“초밥이는 외동인데 차가 왜 이렇게 크지?”

“그건 이모가 산악인이라 사람들하고 산에 가려고 산 거야. 얘(초밥)랑은 상관없어.”

하지만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산악인은 외로웠다. (내 차는 축제라는 이름을 가졌다)


씻고 나와서 바다에는 안 들어갈 거라고 했던 아이들은 하나둘 바다에 입수했고, 서로 빠뜨리고 모래에 묻고 난리였다. 장래희망이 개그맨인 아이가 첫 번째로 입수하자 나머지가 개그맨을 다시 물에 빠뜨리려고 하다가 자기들도 물에 빠지는 식이었다. 나는 돗자리에 앉아 조직원들의 휴대폰, 지갑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네 명이 근수가 꽤 나가는 한 명을 팔과 다리를 잡고 던지기를 하는데 힘이 달리는 것 같길래 한번 나서서 멀리 던져줬다.


KakaoTalk_20220810_101653642.jpg 파이팅 넘치는 까마귀 다섯 마리
KakaoTalk_20220810_101706365.jpg 수박 먹자
KakaoTalk_20220810_101720942.jpg 누군가를 파묻으려고 준비 중

돌아오는 차 안, 모두 곯아떨어져 무덤 같은 고요가 흘렀고 나는 아이돌 그룹 매니저처럼 한 명씩 집 앞에 내려줬다.


2주쯤 지나 나는 조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독서토론모임 해보면 어때요? 지난번처럼 초밥이가 반대하고 있지만, 막상 해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학원가는 시간이 매번 달라서 못해요. 죄송해요ㅠㅠ”

“주말에도 과외해서 못해요.”

“애들 다 하면 하려고 했는데 안 한다 해서 못해요.”


그 파이팅 넘치던 아이들은 쥐구멍을 찾는 생쥐 같은 답장을 보내왔다. 초밥이한테 친구들과 독서모임 하자고 했더니 당연히 반대해서 내가 직접 물어보겠다고 했고 그럼 자기는 절대 안 하겠다고 했다. 이미 예상한 난관앞에서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독서모임을 할 생각이다. 학교 근처 도서관에 장소 대여도 마쳤다. 책을 읽고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는 건 아이들은 물론 나한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 초밥이가 말했다.

“이렇게 희생만 하는 나무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비현실적이야. 소년은 이기적이고.”

“하지만 나무는 행복하다고 했는데?”

“어디?”

“나무는 소년에게 무언가 줄 때마다 ‘나무는 행복했습니다’라고 나와있잖아.”


중학교 2학년, 키 172cm인 초밥이가 고른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는 나무 같은 마음으로 이 책으로 토론하자고 했는데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을 발견했다. 돈, 집, 아내와 자식, 배를 가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말했던 소년이 노인이 되어서 말한 부분이다.


“이젠 나도 필요한 게 별로 없어. 그저 편안히 앉아서 쉴 곳이나 있었으면 좋겠어. 난 몹시 피곤하거든.”

“자, 앉아서 쉬기에는 늙은 나무 밑동이 그만이야. 얘야, 이리로 와서 앉으렴. 앉아서 쉬도록 해.”

소년은 그렇게 했습니다.


소년이 나무에서 놀던 시절처럼 마지막도 나무와 소년은 함께였고 그래서 행복했다. 문득 초밥이와 나의 지금이 소중하다는, 어떤 준비의 시간이 아니라 이것만으로 충분히 빛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귀한 건 내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걸 세상을 온통 헤매고 난 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깨닫게 되는 게 삶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결말을 알고 있다 해도 길을 떠날 수밖에 없고, 사랑하는 이를 외롭게 할 수밖에 없는 게 세상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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