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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Sep 08. 2022

오랜 연인 같은 책

오늘 소감 01

한눈에 반한 책이 있다. 우연히 서점에서 고른 책이었는데, 단숨에 읽고 처음으로 나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한 것도 열 번 넘고,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해 다시 산 것만 세 권이다.

     

책을 읽은 사람들 중에 작가가 자신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며 ‘마치 내가 쓴 책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나도 그랬다. 내가 유일한 것처럼 이 책은 다른 어떤 책과 구별되는 특별함이 있었다.     


내가 독립 출판한 <엄마의 원피스>를 읽은 막내 이모는 “너무 솔직하게 썼다”라고 했다. 솔직해서 좋다고 하지 않은 걸로 봐서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를 했다는 뜻 같았다. 글을 쓰면서 이런 것까지 공개해도 될까 하는 고민은 지금도 여전히 하지만, 필요한 내용이라면 과감하게 드러내야 독자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곱게 화장한 글보다 작가 민낯을 보여주는 글을 좋아한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이 책을 열 번 가까이 읽었는데 그때마다 감흥을 받은 건 아니다. 세 번째는 실망했고, 네 번째부터는 뭐가 나를 빠지게 했는지 찾는 심정으로 읽었다. 이건 첫눈에 반했지만 차츰 알아가면서 실망하고, 익숙해진 연인의 얼굴에서 예전의 강렬했던 감정을 찾는 마음과 비슷했다.     


“다시 남자를 만난다는 게 너무 두려워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연락을 해서 조심스레 나를 만난 것이었단다. 남자는 결코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니 절대로 마음 주지 않고 이용만 하리라 다짐하면서.”  

   

예전에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자만심에 찬 여성이 자기가 주도하는 편한 관계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상대에게 사전 동의를 구한다면 문제없을 것 같기도 했고, (물론 감정은 약속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결국 누군가는 상처받고, 파괴적인 결말을 맞고 말겠지만) 안전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번에 읽을 때는 다른 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연인과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예의를 다해 인사하는 여자에게서 나는 누구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이 기어코 그 일을 해내고자 하는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떠나가는 남자는 여자에게서 “잠깐이지만 나를 원망하듯 쳐다보던 그 눈빛”을 보고 말았다. 말은 감정을 숨길 수 있지만 눈은 거짓을 말할 수 없다.    

 

나의 상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 이전에 받은 아픔을 보듬어달라는 건 얼마나 염치없는 짓인가. 그 또한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나는 할 수 있을까.      


티 없이 말간 얼굴을 가진 사람을 보면 아득해진다. 같이 웃는 것으로, 현재만 좋은 것으로 부족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과거 서툴렀던 서로를 만나야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상대의 과오에서 나를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같은 전철을 밟지 않는 게 아닐까.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인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의 한 구절이다. 사랑의 시작보다 ‘사랑의 지속’을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딸에게 무언가를 해줄 때 아깝거나 수고스러운 마음이 (가끔은 들지만) 대체로 들지 않고 내가 해준 음식을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 걸 보면 그걸로 보상받는 기분이다. 오히려 해주지 못할 때 죄책감이 든다. 빨래를 말릴 때 제습기와 선풍기를 틀어야 하는데 깜빡해서 딸이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교복을 입고 간 날, 내 마음은 하루 종일 꿉꿉했다.     


초밥이한테 라면을 끓여주는데 이런 말이 날아들었다.

“한 젓가락도 안 줄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내가 끓인 라면을 한 젓가락도 안 주겠다는 위협에도 조금도 화가 나지 않는 건 바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책에 나온 두 사람이 만난 시점은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다. 상대의 흉터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있을 때, 상대가 나보다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 걸 보는 걸로 충분할 때, 혼자서도 괜찮고 둘이어도 괜찮다 싶을 때가 좋은 타이밍이 아닐까.       


전에는 별생각 없이 읽었는데 조금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정신과 의사인 여자가 뺑소니를 목격했을 때 직업적 책임감에 대한 고민이 없는데서 타인의 죽음 앞에서 자기의 불행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검열에 시달리다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이 글이 얼마나 대단한 용기로 쓴 글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용기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소감.   

오랜 연인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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