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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11. 2022

3년 만에 찾아간 그곳

단단한 행복이 있는 섬 '돈 없이도'11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생모차렐라 치즈로 만든 피자에 신선한 샐러드를 은파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야외 테라스에서 즐길 수 있는 곳, <파라디소 페르두또>에 갔다.     


매장 전체에 흐르는 음악이 음식과 묘하게 어울렸다. 애견을 동반한 부부, 연인, 모녀, 동성 친구들 모임 손님들이 각자 배역을 맡은 배우 같았다. 살다 보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순간이 있다. 해가 저무는 주말 저녁, 음악 선율이 호수 위를 흐르는 그날이 그랬다. 여러 가지 재료로 하나의 요리가 탄생하듯,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어우러졌다. 부드럽게 뺨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까지 완벽했다.     


마르게리따 피자는 생토마토, 치즈밖에 없었지만 깜짝 놀랄 만큼 신선하고 풍미가 좋았다. 질 좋은 올리브유와 레몬즙으로 맛을 낸 연어샐러드를 흑맥주와 함께 먹었다. 후식으로 주문한 티라미슈는 파라디소에서 만든 것으로 뜨거운 커피와 환상적으로 어울렸다.    

 

파라디소 사장님을 아는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사장은 수익 중 일부만 가지고, 나머지는 직원들에게 돌아가는데 매출이 오를수록 직원에게 배당금이 크다고 했다. 직원들의 과하지 않은 친절과 세심한 서비스의 이유가 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손님들의 테이블 안내를 하는 직원은 빈자리가 있어도 주방 상황을 보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손님이 줄을 서있어도 부산스럽지 않았다. 손님들이 많아도 독립성이 유지되는 파라디소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음식, 직원 복지, 음악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활기는 식욕을 북돋을 딱 그 만큼이었다.


파라디소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봉골레 스파게티가 17,000원, 샐러드와 피자는 2만 원이 넘는다. 이것이 내가 이곳에 3년 만에 온 이유가 되겠다.   


전에는 11시쯤 파라디소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고 책을 읽다가 출근하기도 했다. 작은 도시에서는 아는 사람과 마주칠 때가 자주 있는데 동행 없이 혼자 다니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멋있다고(사실은 특이하다고) 했었다. 학원을 폐업하고 두 번쯤 왔는데 어찌나 마음이 불편하던지 파라디소를 내 삶에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파라디소를 오지 않는 동안 나는 달콤하고 매력적인 것들을 대하는 나만의 태도가 생겼다. 그 속에 빠지기보다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이 장소를 좋아했던 이유가 직원, 손님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자유롭게 함께 하는 분위기’때문이었다는 걸 알았다.


파라디소만의 분위기가 음식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한 가지로 만족스러울 수 없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하던 순간, 퇴근 후의 헛헛함은 멋진 식사로 채울 수 없었다. 일과 일상이 하나로 이어질 때, 합일감이 생길 때 만족이 찾아오는 게 아닐까. 내 삶을 이루는 요소가 조금씩 부족하더라도 한 방향을 향한다면, 그 길이 내가 원하는 곳이라면 이만하면 괜찮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흑맥주 한 모금에 "돈이 좋긴 좋다"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건 왜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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