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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Dec 20. 2022

브런치 공모전은 물 건너 갔나봐요

은근한 열정 파는데 어디 없나요

붕어빵 노점의 비닐포장을 걷고 들어가자 안은 어묵과 붕어빵 열기로 따듯했다.     


“어묵 얼마예요?”

“세 개 이천 원이요.”

“하나만 먹을게요.”


그래 놓고 세 개 먹었다. 붕어빵은 두 개 천 원. 달달한 붕어빵과 짭짤한 어묵 국물 조합이 괜찮았다. 과외하는 학생들 주려고 팥 붕어 6개, 슈크림 6개를 싸 달라고 했다. 사장님이 붕어빵 두 개를 덤으로 줘서 다른 데는 세 개 이천 원이던데 서비스까지 주시면 어떡해요, 하면서 받아왔다.      


초밥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시간, 톡으로 붕어빵 사진을 보냈다.   

  

“내가 다 먹어버릴지 몰라.”

“슈크림 있어?”

“그것도 잡아 왔어.”     


<돈없이도>가 붕어빵 같으면 좋겠다. 붕어빵처럼 맛있고 따뜻한데 가격이 싸서 부담 없이 먹을(읽을) 수 있는 책.      



폭설 때문에 산행이 취소된 일요일, 도로가 꽁꽁 얼어서 집에서부터 40분을 걸어 월명산 등산로 초입에 도착했다. 눈 때문에 더 새파란 하늘, 가지마다 눈이 쌓인 소나무는 작년에도 보았지만 볼 때마다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꺼냈더니 꺼져있었다. 5년이 넘은 휴대폰은 기온이 떨어지면 자동 방전된다. 휴대폰을 일시불로 사는 것도, 할부나 다름없는 높은 요금제 약정도 부담스러워서 버티는 중이다. 5년 된 노트 8이 어떻게든 이번 겨울을 견뎌주기만 바라고 있다.      


기계치라 전자 기기(만큼은) 욕심이 없기도 하지만, 누린다는 기분이 들지 못할 바에 사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약정이 끝나지 않은, 아직 내 것이 되지 못한 휴대폰이 다칠까 봐 조심하기보다 오래된 내 휴대폰에 옷을 입혀주는 걸 택했다.      


괜히 돈 쓰고 불안을 가져올 물건은 아예 들이지 않기로 했다. 나갈 때도 없으면서 쇼핑앱에서 코트를 보다가 내가 또 왜 이러지 하고 집 나간 정신을 붙들어왔다. 삼 년 만에 만난 유 대장님의 늙었다는 말에 피부과 시술을 알아봐야 하나 싶다가도 ‘돈없이도’ 이장이 이러면 안 되지, 아무도 지우지 않은 책임감을 느꼈다.    

 

돈을 써서 좋을 때는 이런 거다. 온수에 샤워하기, 보일러 틀기, 차로 초밥이 데리러 가기, 등산화 사기. 30만 원 가까운 등산화는 비싸지만 안전과 직결되기에 새 등산화를 신고 산을 오르면서 잘 샀다고 생각했다.   

  

요즘 콩나물밥, 무밥, 굴밥을 연달아 먹었다. 평소보다 물만 조금 적게 잡아 전기밥솥에 쌀과 함께 콩나물, 무, 굴을 앉히면 되니까 만들기도 간단했다. 톳밥은 처음 도전해봤는데 밥에 찰기가 돌고 담백한 게 기대 이상이었다. 비빔장에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많이 넣었더니 매콤하니 입맛을 돌게 하는 별미였다. 

사진은 굴밥이지만, 톳밥을 추천드려요(비빔장이 같으면 비슷한 맛이 나요)

현대판 주막은 커피숍이다. 월명산을 내려오면서 <커피볶는 집>을 떠올렸다. 문을 열었을까, 하고 다가가는데 카페 밖 조명이 켜져 있는 걸 보고 반가움이 밀려들었다. 아이젠을 벗고 등산화에 묻은 눈을 깨끗하게 털고 카페를 들어갔다. 커피 향 섞인 훈훈한 공기에 단숨에 언 몸을 녹는 것 같았다.  


"가격이 오른 게 아니라 내렸네요?" 

“80프로가 단골손님인데 마음이 불편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내가 좀 덜 벌면 되지.”     


사장님은 오른 원두 가격 때문에 아메리카노를 4,500원으로 올렸다가 원래 가격(3,500원)으로 내렸다.     


“그래도 손해보고 장사할 수 없잖아요.”

“이 자리에서 십 년 장사했어요. 첫 해는 커피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원두 이것저것 사다가 실험을 해봤어요. 돈 생각했으면 못했지.”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가성비로 승부를 거는 커피 전문점,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많지만, <커피볶는 집>은 여기만의 소박하지만 특별한 커피맛과 분위기가 있었다. 당장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은근한 열정이 볶아낸 원두커피처럼.     

커피 원두를 사 왔는데 맛있어요


브런치 공모전은 아무래도 물 건너간 것 같아요. 발표가 내일(21일)인데 당선이라면 이미 연락 왔겠지 하는 생각이 오늘에서야 들지 뭐예요. 순진하기도 하지. 예상한 일이면서도 맥이 풀리네요. 기적이라도 바랐나 봐요. 은근한 열정 그런 거 파는데 어디 없나요.     


배지영 작가님이 전화 와서 한길문고에 <돈없이도>가 한 권밖에 없더라면서, 말했다.

“책이 이렇게 많이 나간다면 생각을 해봐야 해요.”

열 권씩 갖다 놓는 책을 두고 무슨 완판 행진하는 것처럼 말해서 내가 막 웃었다.     


붕어빵 같은 책 <돈없이도> 가격은 만 원입니다.(주문 한길문고 063-463-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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