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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an 11. 2023

아줌마 패션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

잃은 게 아니라 다른 기쁨을 보태가고 있어

초밥이한테 쇼핑몰 갈 생각 있냐고 했더니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듯 냉큼 옷을 챙겨 입었다. 쇼핑몰에 들어서면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무전으로 이 사실을 알린다.      


내가 괜찮은 숏패딩을 보고 전화했더니 초밥이가 왔다. 


“와, 아줌마 패션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 


듣고 보니 노티 나는 것 같기도 해서 나는 슬그머니 옷을 제자리에 걸었다. 

    

초밥이가 민트색 패딩을 골라서 걸쳤는데 김연아 느낌이 났다. 나도, 하고 입어봤더니 같은 옷, 다른 느낌에 좌절감만 맛봤다. 나는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채 조용히 초밥이 뒤를 따라갔다.     


“요즘 뜨는 브랜드야.”

한 매장 앞에서 초밥이가 말했고, 나는 가격표를 보고 더욱 침울해졌다. 

“세일은 안 하나요?”

부질없는 질문을 해봤다.
“저희는 연중 노세일 브랜드입니다.”

직원이 긍지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한테는 좀 안 좋은 브랜드네요. 하하.”     




‘엄마 미모 뛰어넘은 딸’이라는 제목 아래 기네스 펠트로와 딸의 사진이 있는 기사를 읽었다. 50세인 기네스 펠트로와 18세의 딸의 외모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세상에 기네스 펠트로라고요. 내가 왜 기네스 펠트로에게 동화되었는지 모르겠지만(그녀와 내가 무슨 공통점이 있다고)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건 할리우드를 이토록 가깝게 해 준다.     



“40세가 될 때만 해도 나이 드는 게 힘들었다. 50세가 될 때 완전히 내가 붕괴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기네스 펠트로는 50세가 되고 비로소 대중에게 ‘대상화’되는 일에서 벗어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평화로워졌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네스의 등을 두드려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기사를 더 찾아보니 기네스 펠트로의 옛 연인 브래드 피트가 한 말이 있었다.     


“지금 기네스와 친구로 지낼 수 있어서 기쁘다. 그리고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그렇지, 내 옆에 두고 싶은 사랑도 있지만, 나와 한 시절을 보낸 사람이 다른 곳에서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랑도 있지, 한 가지 사랑만 있는 건 아니야. 내가 다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여기는 군산, 맨투맨 티만 사고 뜨는 브랜드의 후리스는 다음에 사자고 하자 초밥이는 아무 말이 없었고 돌아오는 차 안은 냉기로 가득 찼다. 내 돈 쓰고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참기로 했다. 

 

얼른 집에 돌아가 내일 산에 가지고 갈 도시락을 싸야 했다. 새벽 2시에 일어나야 해서 빨리 자야 한다. 늘 그렇듯 취소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꾹 눌렀다. 

     

두부를 넣고 김치전을 부치고, 참치 주먹밥을 만들었다. 주먹밥은 내일 초밥이가 먹을 것까지 넉넉하게 했다.      

“지금 먹어도 돼?”

쇼핑몰을 나온 뒤로 처음 말을 거는 초밥.     

“뭐야? 완전 맛있어.”


낮에 무친 시금치를 잘게 썰어서 넣었는데 맛이 괜찮았나 보다. 밥을 더 푸고 참치캔도 하나 더 땄다. 이번에는 냉이나물과 파김치도 쫑쫑 썰어서 넣었다. 들기름과 김자반을 넣으면 뭐든 맛있게 되어 있다.     


원래 쇼핑몰을 간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등산복 브랜드가 50퍼센트 세일해서였다. 내 건 아무것도 사지 않고 초밥이 옷만 샀지만 괜찮다. 뜨는 브랜드도 다른 것으로 대체될 거라는 걸 알고 내가 늙어가는 건 아쉽지만 딸이 예쁜 걸 보는 뿌듯함도 있으니까.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뜨거움이 식은 후의 따뜻함과 나의 약한 부분을 끌어안는 시간도 소중하다는 걸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 잃은 게 아니라 다른 기쁨을 보태가고 있다는 사실도. 

멀게만 느껴지던 이들이 왜 이렇게 친근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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