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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Feb 11. 2023

군산의 분식, 유재석님 이거 꼭 먹어야 합니다

집밥과 분식의 경계, 매운잡채

군산에는 '매운잡채'라는 분식이 있다. 알고는 있었지만 먹어볼 생각은 못 하다가 TV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전국 간식 자랑'을 보고 먹고 싶어졌다. 군산에서 나고 자란 연언니한테 정보를 얻어보기로 했다.


"언니, 매운잡채 어디가 맛있어요?"

"공설시장이 제일 괜찮을 걸?"


"오늘 점심에 시간 돼요? 같이 먹으러 가요."

"부모님하고 만나기로 했어. 내가 밥 사드린다고 했거든."


"군산 토박이가 해주는 역사를 들으면서 먹고 싶었는데 아쉽네."

"그러게. 잘난 척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근데 거기 포장도 돼. 나는 가끔 포장해서 먹거든."

"지금 같이 가서 포장해오면 안 돼요?"


연언니가 부모님과 약속한 시간에서 한 시간 삼십 분 전이었지만, 언니가 좋다고 해서 함께 군산 공설시장으로 갔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군산 공설시장 안에 있는 '서비스 분식', 나는 사장님에게 매운잡채를 이 인분, 일 인분 따로 포장해달라고 했다. 가격은 일 인분에 오천원.


"우리도 조금만 먹고 갈까?"


여기까지 왔는데 안 먹고 가기는 서운해서 일 인분을 주문했다. 따뜻한 어묵 국물부터 나왔고 이삼 분 후에 매운잡채가 나왔다. 당면, 어묵, 시금치, 양파, 당근이 들어가 푸짐했다. 한 젓가락 먹어보니 탱글탱글한 당면에 감칠맛 나는 양념이 배어 있었다. 이름처럼 맵지는 않고 매콤한 정도.


집밥과 분식의 경계 '매운잡채'


"왜 여기만 장사가 잘 될까?"


주변에는 같은 메뉴의 식당이 많았다. 내 질문에 연언니가 말했다.


"여기만 손님이 많길래 지난번에는 옆 가게 할머니한테 샀잖아. 사실 맛은 비슷해. 양은 오히려 거기가 더 많아."


연언니는 예전에 공설시장 건물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매운잡채를 파는 노점이 많았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했다. 물건을 살 수 있는 데가 시장밖에 없던 시절의 활기는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매운잡채는 양념을 물과 함께 끓이다가 불린 당면을 넣고 익힌 후 야채를 넣어서 만든 요리다. 바쁘지만 제대로 한 끼를 먹고 싶은 누군가가 만든 것 같았다. 집밥과 분식의 경계. 잡채는 먹고 싶은데 시간은 없고, 이왕이면 얼큰한 국물도 자작해서 안주로도 손색없는 음식으로.


연언니와 나는 매운잡채 일 인분을 나눠서 먹고 김밥 한 줄을 주문하고, 급기야 미니족발까지 시켰다. 언니는 곧 부모님과 점심을 먹어야 하지만, 먹는 양이 많은 나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 원픽은 족발이다."

안 시켰으면 큰일 날뻔한 맛이었다.

"언니도 그냥 먹어. 맛있을 때 먹는 게 행복이야."


사실 언니네 부모님이 코로나에 감염되고 회복이 되었지만 입맛을 잃었다고 했다. 코로나 후유증인지 기력이 쇠하셔서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고 식사하신다니 듣는 내가 걱정되었다. 내가 오자고 했으니 계산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하려고 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간신히 결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럼 내가 떡국 사줄게."


언니가 유명한 곳이라며 안내한 떡집 입구에서 주인이 방금 쪄내 김에 나는 찰떡을 썰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왜 이렇게 신이 나는지 모르겠다. 언니가 떡도 사줘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뜨끈하고 쫀득한 식감이 그만이었다.


방금 나온 떡은 행복입니다


"행복은 방금 만든 떡 같은 거야. 식기 전에 맛봐야 하거든."

이런 소리도 했다. 생선 가게를 지나가다가 내가 박대를 쳐다보자 주인 할머니가 말했다.

"세 마리 덤으로 줄게. 가져가."

그러면서 할머니는 열 마리 이만 원인 박대를 네 마리나 더 주고, 내가 조기도 달라고 하니까 다섯 마리를 더 담아줬다.

"맛있게 해 먹어."

할머니가 등을 두드려주는데 공짜로 얻어오는 기분이었다. 대형마트에서는 사도 사도 부족한 것 같은데, 시장에서는 적은 돈을 쓰고도 많이 산 것 같다.


장 본 걸 손에 들고 다니면 이만하면 됐어, 더 사면 무리야 하는 신호가 오는데, 카트에 이것저것 담다 보면 이런 자각이 들지 않는다. 먹는 양은 정해져 있고 나 하나 필요한 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 광고에 이끌려서 만족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시장에서는 물건 말고도 덤, 고마움, 인사, 웃음이 오간다.


매운잡채는 예상되는 맛이었다. 집에 있는 당면으로 떡볶이처럼 만들면 대충 비슷한 맛이 날 것 같았다. 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먹었던 떡볶이, 쫄면도 마찬가지지만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맛이 있다. 아이들 몫을 포장하고 부모님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분식을 먹으면 발랄해지는 건 여전했다.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니까.


공짜 같은 조기와 박대


*오마이뉴스 기사로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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