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가면 나는 아침 식사 전에 산책을 한다. 내가 17살이 되던 해 분양받은 29년 된 아파트를 나서면 오른쪽은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왼쪽은 대학교가 둘 다 걸어서 삼십 분 거리에 있다. 집을 나서면서 자, 오늘은 어느 시간으로 가볼까, 하는 기분으로 방향을 정한다. 오늘은 초등학교다. 무엇을 그렇게 달성하려고 했는지 이름도 '달성초등학교'
한 반에 60명, 학년당 10반, 3,600명이 다녔던 학교는 지금은 발명학교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고, 운동장과 본관 건물에 공사가림막이 쳐있었다.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니 근처에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교실이 모자라서 증축공사를 하는 거라고 했다. 시내 동성로와 가까우면서도 낙후된 지역이라 폐교 수순을 밟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재개발을 명목으로 아파트를 짓고 수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유사 이래 최초의 번성기를 맞이할 모양이다.
내가 살았던 5층짜리 광명아파트는 29층짜리 오페라트루엘로 바뀌었다. 당시 오천만 원이던 아파트가 7억이 되었다며 아빠는 그때 사서 가지고 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지만, 나는 집과 오페라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아했다. 오페라트루웰의 웅장한 정문은 주변 풍경과 도무지 동화되지 않았다.
예전 남자친구의 친구, 지역신문사를 다닌다던 그 사람은 내가 이 동네 출신이라고 하자 ‘대구의 말레지아’ 같은 곳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주 농담 소재로 삼고는 했지만, 이런 건 내가 하는 건 괜찮지만 남이 하는 건 또 못 참지 않나.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운사이 내가 남자친구에게 “쟤 뭐냐”라고 했더니 뭐가 문제냐는 식의 반응을 하길래 그날로 남자친구를 정리해 버렸다. 정확히는 남자사람친구에서 남자친구의 경계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는 찰나 일신문고를 지났다. 일신문고는 예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주고 있어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하긴 재개발이 되면 일신문고도 사라지거나 지금과 다른 모습이겠지. ‘오페라디포’가 될지도.
다음은 내가 다녔던 동네에서 유일했던 미술학원이 있던 곳이다. 미술학원은 없어졌지만 건물은 예전 그대로였다. 또 하나의 일이 떠올랐다.
5학년때 학교에서 전국미술대회 준비반을 개설한 일이 있었다. 담당 선생님은 젊은 여자선생님으로 이전에 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반대표로 뽑힌 아이들이 한 달 정도 일주일에 두 번 한 교실에 모여 그림을 그렸다. 학년당 한 명만 전국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학교 대표를 선발하기 위한 반이었던 거다. 하지만 우리 학년이라면 대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미술학원 원장님 딸인 제갈 성을 쓰는 아이.
원장님 딸이니까 당연하지만 (뭐가 당연한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제갈의 그림은 한눈에도 노련함이 느껴졌다. 내 그림은 아이가 그린 거라면 제갈의 것은 어른의 그림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수박밭 그림은 저 멀리 작게 원두막이 있고 그 앞으로 수박에 주렁주렁 열려있었는데 앞으로 올수록 수박의 크기가 커졌다. 그게 원근법이라는 걸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는 수박밭 앞에서 충격을 받았다. 수박은 초록뿐 아니라 노란색, 주황, 빨강을 조금씩 섞어 칠해서 화사하고 싱그러웠다.
한편 나는 가족들과 계곡에서 고기 잡는 그림을 그렸는데, 누워있는지 서있는지 알 수 없는 평면법을 사용했다. 그림 속 나는 고기를 몰고 아빠가 뜰채 반도를 들어 올렸다. 내내 송사리만 잡히다가 커다란 장어가 잡혀서 나는 뱀인 줄 알고 혼비백산했는데 아빠가 장어라며 좋아했다. 이렇게 굵은 장어는 돈으로 살 수도 없다면서 아빠는 커다란 행운을 낚은 것처럼 행복해했고, 나는 장어와 뱀이 뭐가 다르다는 건지 여전히 징그러웠지만, 흥분해서 팔짝팔짝 뛰었다. 아주 특별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만 같았다.
그물 안에 꿈틀거리는 장어, 나는 놀라는 표정, 아빠는 반도를 추켜올리며 기뻐하는 표정을 그렸다. 그날을 상세히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하늘과 물빛, 돌 색깔, 아빠가 입었던 옷, 나는 머리를 어떻게 묶었는지, 텐트 모양과 색을 하나하나 되짚어갔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5학년 대표로 내가 뽑힌 것이다. 기쁘기보다 얼떨떨했다. 제갈이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거나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미술대회가 있던 날,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대표 6명을 데리고 대회가 열리는 공원에 갔다. 가는 길에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제갈이 아니라 왜 나인지.
"네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었어."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이야기가 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야기가 있으면 뭐가 좋다는 건지. 나는 가족들과 피서 간 그림이 수박밭보다 소재가 좋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대회에서도 피서 간 그림을 그렸다. 정확히는 피서 간 그림을 따라 그렸다.
처음 그릴 때는 대표로 뽑힐 욕심 없이 기억을 도화지에 옮겼다. 그건 내 안에서 그날이 재창조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그릴 때는 미술선생님이 잘 그렸다고 했을 만한 부분을 찾아 선생님의 시선으로 그렸다. 내가 그렸지만 내 그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