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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n 12. 2023

내가 좋아하니까 괜찮아

“이 오빠가 내 첫 연애야.”
“지난번에도 그랬잖아.”

“걔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처음이라는 거였고, 이 오빠를 만나면서 진짜 연애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헤어지기를 잘했어. 그리고 결심했어. 성인이 될 때까지 연애 안 할 거야.”    

 

초밥이와 오랜만에 치킨집에서 회식을 했다. 내가 “우리 그동안 너무 소원했지?”라고 하자, 불쑥 초밥이가 이제 막 한 달간의 연애를 끝냈다고 고백했다.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까잖아. 들으면 기분 나쁘고, 나중에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난단 말이야.”

“안 할게. 얘기해 줘.”


“시험기간에 2주 정도 내가 거의 연락을 못했거든? 평소에도 내가 동아리, 학생부 때문에 바빠서 카톡을 잘 못하고 확인을 못했어. 그걸 오빠는 서운하다는 거야. 나도 미안하기는 한데, 만약 오빠가 자기 일 때문에 바쁘다면 나는 연락 잘 안 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도 괜찮아. 응원해 줄 수 있어. 근데 이 오빠는 아닌 거야. 장문의 카톡으로 따지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어. 바랄 수는 있는데 요구하는 게 이해가 안 돼.”

“바랄 수는 있지만 요구는 할 수 없다?”

“오빠는 시간이 남아도는데, 내가 바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면 자격지심 가질 것 같아서 안 했거든.”

“그 오빠는 왜 시간이 많은데?”

“체육학과 가려고 운동해.”

“체육학과도 경쟁률이 높은 대학은 내신을 보는데 공부 못하나 보네.”
“거봐. 엄마가 이러니까 내가 말 안 한 거야.”

“미안미안. 안 하게. 계속해.”

(자크로 입을 닫는 시늉)
 

“행복하려고 만나는데 힘들면 어떡하나. 남자는 한때고 내 미래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우선인데, 만날 때는 좋지만 집에 오면 시간이 아까웠어. 헤어지고 일주일은 공허했는데 이제 괜찮아. 헤어지기를 잘했어.”     


바랄 수는 있지만 요구는 할 수는 없다, 행복하려고 만난다, 나라면 응원해 줄 수 있다, 남자는 한때고 미래가 우선이다, 만날 때는 좋은데 돌아서면 시간이 아깝다.      


아... 넌 대체 몇 번째 생이냐... 그리고 나는 왜 그 오빠야한테 동화되는 거냐. 나는 조언은커녕 뜬금없는 회한에 잠겨 맥주만 들이켰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큰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나고, 후자는 초밥이다. 나는 연애가 시작되면 연락을 기다리고, 만날 날짜를 꼽는 게 힘들었다. 한 곳에 매여 주도권을 내준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어서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헤어질 이유를 모으고, 마침내 헤어지고 안심했다. 


겉으로 보이는 양상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행복하려고 만나는데 힘들면 어떡하나' 과거 내가 자주 했던 이 말이 초밥이 입에서 나왔을 때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초밥이와 나는 출발점이 다르다. 


초밥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빼빼로데이,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에 초밥이만 선물을 하고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에 친구들과 찜질방을 가는데도 남자친구는 게임한다고 오지 않아서, 내가 “너무 하는 거 아냐?”라고 했더니, 초밥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좋아하니까 괜찮아.”      


이게 12살에 할 수 있는 말인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나 있었던가. 그때 나는 초밥이와 내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초밥이가 친구와 다툰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친구 흉을 보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좋은 점도 많아”하면서 초밥이는 불편해한다. 그러면 나는 아차, 하고 듣기만 하다가 친구가 그런 행동을 했을 만한 이유를 초밥이와 같이 찾아본다. 그럴 때 나도 많이 배운다.


초밥이는 상대를 통해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가 없다. 그래서 상대가 바쁜 걸 받아들이고 응원할 수 있다.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이 초밥이의 시작이라면, 나는 오기 같은 거였다. 내가 숱한 연애를 하는 동안 한 번도 안정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가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걸 딸을 통해 알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 엄마도 그랬을 것 같아. 나는 엄마와 닮은 것 같아.”

(이 말에 한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가장 가까이 있는 어른이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뿐, 너와 나는 근본적으로 달라.”     


사실 초밥이 마음은 알 수 없다. 복잡한 내 마음은 나밖에 모르니까. 초밥이도 나름의 혼란과 나약함이 있겠지. 내가 깔까 봐 얼마쯤 편집한 이야기를 했을 테고. 그저 내가 바라는 대로 봤는지도. 나보다는 낫기를 바라는, 어쩔 수 없는 부모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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