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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n 30. 2023

왜 보고 싶지 않았을까

초밥이가 내년부터 아빠와 함께 살 집을 정했다고 했다. 초밥이가 입학할 고등학교와 아빠의 직장을 고려해서 골랐다고.     


초밥: 엄마 나 없는 거 괜찮아?

나: 어떨 것 같아? 시원한 게 클 것 같아, 섭섭한 게 클 것 같아?
초밥: 섭섭한 거?

나: 넌 어때?

초밥: 엄마 생각하면 서운하지.

나: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가 커? 아님 엄마를 포함해서 정든 곳을 떠나는 아쉬움이 커?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초밥: 당연히 기대가 크지.

나: 그래. 그러면 됐다.

(하지만 왠지 괘씸하기도 하고 약 오르는 것 같아서)

나: 두 개 비중이 몇 대 몇이야? 기대 9, 아쉬움 1?

초밥: 에이, 그 정도는 아니고. 7대 3 정도?
나: 아니지? 7.5대 2.5지?

초밥: 7대 3이야.


나: 혹시 말이야. 엄마가 일부러 괜찮은 척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
초밥: 아니, 진짜 좋아하는 것 같은데?    


너도 애를 낳아봐야 에미 심정을 알겠지. 초밥이는 내가 자기를 걱정하지 않아서 안심이 된다고 했다. 나도 초밥이가 앞으로의 일을 고대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극복한 기분이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각자 원하는 곳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은.   



얼마 전에 초밥이가 아빠와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초밥이가 없는 동안 아침밥을 안 해도 되니까 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먹기 위해 같은 시간에 음식을 만드는 나를 보고 뭐 똑같네 했다. 빨래도 한 번 했고, 청소도 평소처럼 했다. 한 가지 달랐던 건 수박을 사려다가 아참, 수박돼지가 없지, 하고 사지 않았던 것밖에 없다.     


하루는 자려다가 걱정되어서 “안전해?” 톡을 하기는 했지만, 보고 싶지는 않았다. 보기 싫다는 게 아니라 그립지는 않았다. 안전하기만 하다면 초밥이가 일주일 더 있다가 오면 더 반가울 것 같았다.    

  

초밥이가 돌아오던 날도 기다리려고 했는데 잠이 들고 말았다. 밤 11시쯤 삑삑삑삑, 현관번호키 누르는 소리와 보미가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초밥이가 내 침대에 와서 눕는 것 같았다.


나: 왔어?

초밥: 어, 완전 피곤해.

더 물어보고 싶었는데, 잠에 취해서 말이 안 나왔다. 초밥이는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오랜만에 초밥이를 만났다.  

   

초밥: 엄마 나 보고 싶었어?

나: 어? 보고 싶었냐고? 그건...

초밥: 전에는 주말에 아빠한테만 가도 보고 싶다고 했잖아.

나: 그러게. 그때는 심심해서 그랬나?    

재활용쓰레기가 늘어나는 걸 봤을 때와 빨래를 널 때 담당인 초밥이가 생각났었지만,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초밥이에게 내가 기대와 아쉬움이 몇 대 몇이냐고 묻는데서 알 수 있듯이 나에게는 집요한 면이 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의 작은 행동과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빈약한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걸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두다가 풍선처럼 부풀어서 터져버리고는 했다.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내 뜻대로 하려는 내 마음이 나를 괴롭힌다는 걸 알지 못했다.


남편과 별거를 하면서 비로소 남자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늘 누군가를 원망하고 그러면서도 기다려왔던 것 같은데, 처음으로 혼자 온전한 상태가 되기 위해 애를 썼던 것 같다. 이전에 내가 했던 선택, 감정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게 정말 나의 선택이고 나의 감정이었을까. 나에게 주입된 기준이 누군가를 선택하게 하고 어떤 감정을 강요했던 건 아닐까. 정작 나에게 필요하고 편안한 사람은 내가 원한다고 믿었던 사람과 다르지 않을까.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라면 초밥이가 나와 지내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거다. 그렇게 하려고 들면 못할 것도 없다. 아빠와 지내면 어떻겠냐고 초밥이가 물어왔을 때, 속마음은 딸과 떨어지는 일이 두려우면서도 그럴듯한 이유를 대서 반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밥이가 원하는 것 같고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닥칠 거라고,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리 왔지만, 받아들이자고 내 마음을 다독였다. 내 마음보다 네가 원하는 걸 하는 게 좋으니까. 그게 사랑이라는 걸 네가 알려줬으니까 나도 노력해 보는 거다.      


내 옆에 두고 싶고, 보고 싶을 때 보려고 하는 건 집착이다. 사랑해서 힘든 게 아니라 집착 때문에 힘든 거다. 집착은 내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스스로를 괴롭혔던 시간을 지나 너를 만나 사랑을 연습한 것 같다. 

   

혼자는 충만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가끔은 그게 버거울 때도 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에서 간간이 떠있는 구름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그저 구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신비로운 세계와 만나고 있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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